잘 자라고 있다는 증거
처음 미동이 느껴졌을 땐, 그냥 많이 먹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딸내미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았다.
‘무엇이 그녀를 움직이게 만드는 걸까?’
내 생각과 마음가짐, 움직임 등 모든 센서들이 아기와 함께 연결되어 있으니 어찌 다를 수 있으랴? 엄마 몸속에서 10개월간 함께 있으면서 자라나는 아기를 다시 생각해 봐도 신비롭고 경이롭다. 이목구비나 성격이나 안목 같은 것도 엄마 아빠랑 닮은 부분도 많을 것이니, 유전자의 힘이란 이런 것이란 걸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처음 몇 달간은 남자아이처럼 힘차게 움직이고 해서 또 그런가 보다 했었는데, 막상 딸내미라고 생각하니 ‘우리 엄마도 참 힘드셨겠구나’ 하고 깨달았다. 내가 너무 활발해서 조금은 쉽지는 않았다던 친정 엄마의 말씀에 이렇게나 움직였겠구나 싶으니 상상이 되면서 되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딸내미도 나의 딸이니 아무렴 닮은 부분이 없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작은 태동에도 한 번씩 자다가 번쩍 눈이 떠지는 순간도 생기고, ‘오호, 지금은 배가 고플 시간이군’하면서 딸내미를 생각하며 간식을 챙겨 먹는 시간이 잦아졌다. 간식이라곤 스트레스받을 때나 급하게 혹은 배가 고플 때 대처하면서 먹던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건강한 체력을 위해 몸이 먼저 말을 하듯이 자연스레 무엇인가 챙겨 먹으러 주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소중한 생명체의 신비로움을 직접 몸소 겪고 있으니,
이 어찌 경이롭지 않으리오!
나만 생각하고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았다면 이렇게 잘 챙겨 먹지는 않았을 텐데, 그냥 평소처럼 항상 먹던 것처럼 혹은 늘 자던 것처럼 행동했을 텐데, 생활 속 습관이 아닌 아가랑 같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나에게 다그치면서 ‘가자!’하고 내 의지를 움직이고 있었다.
예민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기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들었다. 내가 받아들이는 부분 그대로 아기에게 전달이 되기 때문에 딸내미에게 여유로운 분위기를 전달하고 싶었다. 그래서 가만히 있지를 않던 나였는데, 갈수록 느긋해지고 차분해지면서 차 한 잔의 풍미를 진정으로 느낄 정도로 조용해졌다. 물론 친한 친구들을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할 때는 본모습 그대로의 모습이 나오지만 말이다.
왜 부자들이나 휴가를 즐기는 이들은 아무 생각 하지 않고 그 시간을 느긋하게 보낼 수 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이미 내 뱃속에는 사랑하는 아기가 자라고 있으니 이 보다 더 귀중하고 소중한 게 또 어디 있으랴?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내 마음은 그만큼 풍요로웠다. 황급히 무엇인가 준비하려는 엄마가 아니라 그저 이 임신기간 동안은 우리 딸을 위해 시간, 분석, 비교 등이라는 어려운 개념을 잠시 놓아두기로 했다.
물론 이제 아기가 태어나면 어떻게 방을 꾸미고 출산 준비물은 어떤 게 있는지 등 하나씩 마련해 놓아야 해서 머리를 굴려야 할 때가 가끔은 있었다. 그 외의 시간은 오로지 나와 아기에게 집중하면서 푸른 산에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 ‘청산유수’ 같은 마음으로 10달이 잘 풀려 나가길 바랐다.
나이 40살. 적지도 않은 나이에 아기를 갖게 되었으니 조금은 당황한 건 사실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아기를 만난 것도 인연이오, 이 나이의 나에게 아기가 미소 지으며 날아온 것도 ‘금상첨화’이니 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오늘따라 긍정적인 의미의 사자성어가 마구 나오는 걸 보면, 그때의 내 마음이 얼마나 경이로웠는지 알 수 있다. 다시 생각해 봐도 기적 같은 일이니 말이다.
그리하여 입덧 전쟁과 아기의 몸놀림의 체험을 잘 견뎌내고 있었고, 앞으로 어떤 상황들이 펼쳐질지 너무도 궁금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