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숙해진 화장실

이젠 친구 같은 공간

by 강현주



얼마나 자주 다녀갔을까?


평생 다녀왔던 횟수보다 더 많을 듯한, 화장실. 그렇게 친숙한 곳인 줄 임신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남자들이 대부분 화장실에서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신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기만했지 잘 몰랐었는데, 이제는 확실히 이해가 된다.


물론 임신이라는 무게로 배에 압력이 더해지면서 화장실로 자주 들락날락하는 거지만, 자주 가보니 익숙해지면서 자주 가도 거리낌이 없어졌다. 아가랑 함께 잠시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 작은 생각을 정리하거나 나의 마음과 아가의 움직임을 확인하게 되면서 집중이 잘됐다. 무엇을 그렇게 버리고 싶었는지 ‘화장실’이라는 공간은 또 다른 반짝임의 공간이 되어버렸다.


해우소


'해우소(解憂所)''근심을 푸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한자어로, 주로 사찰에서 화장실을 이르는 말. ‘해(解): 풀 해, 우(憂): 근심 우, 소(所): 곳 소’라는 뜻이 합쳐져서, 근심을 해소하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일상적인 공간인 화장실을 철학적으로 묘사한 곳으로 선조들의 깊은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사찰을 좋아하여 한국에 있을 땐 자주 절을 다녀오곤 했다. 그곳을 다녀오면 나도 모르게 작아져 있던 마음도 살포시 자동적으로 열리고 막혀있던 숨통도 ‘뻥’하고 뚫리는 기분이 드니 싫어할 수가 없었다. 집 주변에 있는 사찰을 가다 보니 절에 계시는 스님과 보살분들과도 자주 인사를 여쭙고 자연스레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것만 살펴봐도 나의 마음의 평안함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잘 안되던 날도 많았는데, 밴쿠버에 있다 보니 사찰을 가기엔 너무도 어렵고, 마음에 들지 않아서 뾰루뚱해 있는 나 자신과 한심탄해 하면서 울적한 날들도 많았다. 그런 날에는 우울함에 쌓여서 고독을 씹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때부터 왠지 화장실로 들어가고 싶어서 그 작은 공간에서 노여움을 삭히기 위해 노력을 했던 것. 기분 좋은 날도 있지만 나도 모르게 기분이 다운되면서 서글픔에 목이 메이기도 했으니, 그 상황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당황하는 내 모습에 나도 놀랐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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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아무 생각 없이 그 순간에 집중하면서 왠지 ‘명상’과도 같은 분위기를 즐긴 건 아닌지 싶다. 눈을 감고 나의 심장과 아가 심장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내가 이렇게 눈을 감고 있으면 아가도 편한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짧은 시간 동안 모든 것을 잊고 ‘지금 이 순간’을 관찰해 본다.


공기의 온도는 춥거나 덥지 않은지, 소음은 견딜 만 한지, 갈증이 나서 물이 필요한 건 아닌지, 배가 고파서 무엇인가 떠오르는 건 없는지 등등 나와 연결된 수많은 신경들과 소통을 해본다. 그에 따른 반응과 미세한 변화를 살펴보면서 얼마나 잘 인내하고 있는지 또 다른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다.


‘화장실’이라는 공간을 떠올리면서 이런 다양한 분위기를 다시 읽을 수 있고 그 시간 동안 내가 얼마만큼 신경 썼었는지 되새겨볼 수 있어서 좋다. 아가를 위한 엄마의 마음이라서 그런가, 진심 어린 사랑으로 든든한 엄마의 자리를 잘 지키기 위해 애썼던 나에게 칭찬해주고 싶다.


엄마든 아빠든 동생이든 누나든, 갑자기 어떤 역할이나 위치에 서게 되면 사람이라서 그 위치에 맞는 행동과 태도로 그 역할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각자의 역할분담이나 실행으로 인한 사랑 전파력은 감히 무엇과 견줄 수도 없고 숫자로 맞출 수도 없는 것.


그러니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아쉬워 말고 표현이 부족하다고 서러워 말며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다른 상황이나 다른 전달 방법 등을 이해해 주는 게 최선인 것 같다. 왜냐하면, 그 시기에 나도 모르게 남편이나 가족들에게 서운해지는 부분도 생기고 갑자기 기분의 격차가 심해지면서 나 자신도 가늠할 수 없는 수위까지 왔다 갔다 했으니, 임산부의 서러움을 어찌할지 몰라서 혼자 꿍해있었던 날들이 많았으니.


혹시나 지금 임산부들의 상황이 힘들거나 외롭거나 서러워서 목이 멘다면, 그것도 괜찮다. 모두 견뎌낼 수 있는 엄마의 자리이고 그 시간도 나와 아가를 위해 잘 만들어지고 있는 아름답고 소중한 순간이니, 모두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엄마’라서.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 오늘도 아자아자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