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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윤희 Oct 27. 2020

“그림책은 인생의 씨앗”… 어떤 씨앗을 품고 사나요

[책방지기 엄마의 그림책 이야기 18]

[책방지기 엄마의 그림책 이야기] 2020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만난 그림책 작가들


가을이 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어느덧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 지났다. 찬 바람이 코끝을 스칠 때마다 ‘더 늦기 전에 가을을 즐겨야 하는데…’하는 조바심이 나를 자극했다.


일하랴, 육아하랴 가을을 이대로 보내기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짧지만 알차게 ‘2020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가을을 즐겼다. 지난 16일부터 25일까지 ‘XYZ:얽힘’이란 주제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함께 한 이야기를 전해 본다. 그림책 작가에게 그림책은 무엇일까? 독자로서 두 작가를 만나 책으로 얽힌 가을처럼 깊고 풍성했던 북 토크 후기를 소개한다.



◇ “그림책은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필요한 책이에요”


공룡 사랑에 진심인 작가, 경혜원 작가의 그림책 이야기. ⓒ한림출판사


공룡 좋아하는 어린이들에게 인기 만점 책 「한 입만!」, 「내가 더 커!」, 「알 속으로 돌아가!」를 그리고 쓴 경혜원 작가를 만났다. 책방에서도 나는 공룡 좋아하는 어린이들에게 경혜원 작가의 책을 자신있게 건네곤 했다.


19일 오후 3시, 명동에 위치한 커뮤니티 ‘마실’에서 진행된 행사의 주제는 바로 ‘경혜원 작가의 그림책 이야기’. 책마다 짧게 적힌 작가 소개 글에서 알 수 있듯이 경혜원 작가는 공룡에 반해 그림책 주인공을 모두 공룡으로 그렸다. 경혜원 작가의 공룡 사랑은 각별하다. 심지어 소원 중 하나가 바로 공룡을 직접 보는 것이라고.


이날 경혜원 작가가 건넨 이야기의 주제는 바로 ‘책과 작가의 삶’. 그림책을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이야기의 소재를 얻는 일상까지, 그의 이야기에서 나는 책과 작가의 삶이 결코 동떨어질 수 없음을 알게 됐다. 경 작가는 실제 채워지지 않았던 뭔가를 집에서 학교를 오고 가는 길,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에 맘껏 상상하며 채워나갔다고. 그 시간이 작가가 되는 데 큰 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한 입만!」(경혜원 글과 그림, 한림출판사, 2017년). ⓒ한림출판사


「알 속으로 돌아가!」(경혜원 글과 그림, 한림출판사, 2020년). ⓒ한림출판사



실제로 「한 입만!」은 경혜원 작가가 어린 시절, 옆집 오빠와 직접 겪은 아이스크림 에피소드를 녹였다. 「알 속으로 돌아가!」는 교회에서 교사로 활동했을 때 만났던, 동생을 미워하던 어린이의 에피소드를 담은 그림책이다. 


경혜원 작가의 이야기는 비단 작가 혼자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누구에게나 친구가 먹던 간식이 너무 먹고 싶어 ‘한 입만!’을 외쳤던 어린 시절이 있을 것이고, 언니나 누나라면, 혹은 형이나 오빠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법한 동생에 대한 양면적 감정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감정들이 재치 있게 책마다 펼쳐진다.


그림책 작가에게 듣는 그림책 이야기의 매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작가는 횡단보도를 무서워하던 한 어린이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어린이는 횡단보도의 무늬를 자신이 좋아하는 공룡의 뼈라고 생각하고 난 후부터는 횡단보도를 무서워하지 않게 됐다고. 이렇게 경 작가는 독자와 연결될 때 감동하고, 특히 어린이들과 그림책으로 교감할 때 그림책 작가가 된 보람과 기쁨, 삶의 의미를 찾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그림책이란 무엇일까. 경혜원 작가는 그림책을 행운을 상징하는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Matryoshka)’에 비유했다. 큰 인형 안에서 작은 인형이 계속 나오는 마트료시카처럼 그림책은 몸집이 작았던 어린이 때부터 다 커버린 어른 모두에게 필요한 책이라고 말했다.


힘들 때마다 그림책을 읽으며, 나를 이루는 오리진(Origin)에 의미를 부여하며, 버릴 게 없는 인생의 씨앗 같은 존재가 바로 그림책이라고. 북 토크를 마치고 책방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처럼 변함없이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인생의 씨앗’을 뿌려주는, 행복한 그림 책방을 운영하자고 말이다.



◇ “그림책 작가는 ‘생각의 씨앗’을 선물하는 일꾼”


「위를 봐요!」 정진호 작가 북토크. ⓒ현암사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이후 도통 어린이 손님을 만나기 어려웠지만, 1단계로 조정되면서 조심스럽게 행사를 다시 시작하게 됐다. 우선 서울국제도서전 행사 중 하나인 ‘동네서점과 출판사가 함께 만드는 책 도시 산책’으로 독자들을 만났다. 오랜만에 독자들과 함께 한 북토크의 주인공은 바로, 2015년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 「위를 봐요!」 정진호 작가다.


수지는 차를 타고 가족 여행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사고가 나서 자동차는 바퀴를 잃었고, 수지는 다리를 잃었습니다. 수지는 매일매일 베란다에 나가서 아래를 내려다봅니다. 길에서는 사람들이 앞만 보며 걸어 다닙니다. 수지는 검정 머리만 보이는 사람들을 마치 개미 같다고 생각합니다. 길에서는 아이들과 강아지가 놀기도 하고, 비가 오면 우산들의 행렬이 생기기도 하지요.


수지는 묵묵히 그 모습들을 지켜보기만 합니다. 어느 날 수지는 마음속으로 힘껏 외칩니다. ‘내가 여기에 있어요. 아무라도 좋으니…… 위를 봐요!’ 수지의 외침을 듣기라도 한 듯, 기적처럼 한 아이가 고개를 들어 수지를 쳐다봅니다. 수지의 세상에는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 출판사 서평 중에서



「위를 봐요!」 표지. ⓒ은나팔


흑백의 거친 선과 면이 만나 만들어진 「위를 봐요!」(정진호 글과 그림, 은나팔, 2014년)는 실제 어린 시절을 병원에서 보낸 작가의 유년기가 담긴 그림책이다. 건축학도였던 그가 어떻게 그림책 작가가 되었는지 솔직 담백한 이야기와 「위를 봐요!」가 탄생하게 된 계기를 직접 들었던 시간. 마스크를 쓰고,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사람 간 사람 사이의 대화가 오고 가는 대면의 소중함을 알 수 있었다.


정진호 작가에게 건축가란 무엇일까. 또 그림책 작가는 어떤 의미일까? 그는 건축가가 보는 건물의 도면을 보면 삶의 도면이 보인다고 말했다. 건축가도 그림책 작가도 삶의 이야기꾼이지 않을까? 그가 작업한 「위를 봐요!」, 「별과 나」, 「벽」은 건축의 기본인 평면도, 단면도, 투시도에서 비롯한 건축가의 세 가지 시선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특히, 그는 자신이 작업한 그림책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생각의 씨앗'을 선물하는 매개체로 사랑받았으면 한다고. 그런 바람을 담아 책을 작업했다고 했다. 마치, 위를 바라본 친구가 수지의 세상에 새로운 풍경과 새로운 인연이란 씨앗을 선물한 것처럼.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누군가의 음악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공형성부전증으로 키가 1m도 채 되지 않지만, 좋아하는 음악을 독학으로 깨우쳐 프랑스 레종 도뇌르 훈장까지 받은 피아니스트, 바로 미셸 페트루치아니 (Michel Petrucciani)다.


나는 평소 그의 ‘Looking up’이라는 곡을 자주 듣는다. 경쾌한 리듬으로 나의 일상을 북돋는다. 「위를 봐요!」에서처럼 오늘 하루, 청명한 가을 하늘을 한번 바라보면 어떨까? 새로운 시각에서, 새로운 생각의 씨앗을 내게 선물하는 가을날이 되었으면 한다. 


*칼럼니스트 오윤희는 생일이 같은 2020년생 아들의 엄마입니다. 서울 도화동에서, 어른과 어린이 모두가 커피와 빵, 책방과 정원에서 행복한 삶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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