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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네 Mar 10. 2022

I. 오스트리아의 여제가
사랑한 아이

마리아 테레지아 폰 파라디스 | 제1편


인적이 드문 길에서 혼자, 혹은 가족들에게 기댄 채 눈을 감고 길을 걸어본 적이 있는가.

 

 눈을 감는 순간 빛의 잔상이 빠르게 섬멸하며 순식간에 어둠으로 들어서는 그 순간, 생소하고 낯선 감각이 온몸을 휘감게 된다. 내딛는 한 걸음마다 발 밑을 통해 전해져 오는 생생한 힘의 반사. 앞으로 나갈 때 피부를 휘감는 오소소한 공기의 흐름. 그리고 긴장한 그 미묘한 공기의 흐름과 발걸음이 오롯이 근육을 타고 올라와 머리에 전달되는 다양한 소리들. 


한마디로 시각을 차단하는 순간 뇌는 혼란에 빠지게 되지만 동시에 우리 몸에서 인지할 수 있는 모든 감각이 열리는 경험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 힘을 알게 된 한 음악가 또한 이 원리를 따라 자신의 생을 오롯이 음악에 바치게 된다. 




1759년에 그려진 오스트리아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 Maria Theresia의 초상


'짐의 뱃속에 아이가 없었다면 나 또한 바로 전쟁에 나섰을 것이다.'


티스푼에 고인 홍차 한 방울로 서서히 녹아버리는 설탕 과자와 같은 상황이었던 위태로운 오스트리아를 앞에 두고 합스부르크 왕조의 가장 파격적이고 위대한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 Maria Theresia가 외친 말이다. 이 위대한 여제는 자신의 예상보다 더 오랜 시간을 이끈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으로 점점 황폐해지고 쇠약해져 가는 오스트리아를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까. 분명 마음속 조용히 뜨거운 분노를 차가운 이성으로 변화시켜 자신의 위대한 조국에 다시 한번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켜 강성한 나라로 일으켜 세우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합스부르크의 여제는 오랜 전쟁으로 위축된 재정 확보를 위해 최초로 귀족과 성직자들에게 세금의 의무를, 그리고 전쟁의 아픔에서 겪은 경험으로 유럽 열강에 버금가는 군사 체제의 설립이라는, 말 그대로 오스트리아의 '개혁'을 일으킨 것이다. 


어느 누구보다 자신의 조국을 경애하는 합스부르크 왕조의 가장 파격적인 이 통치자의 행보는 이윽고 주변의 열강 속에서 새로운 강국으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전쟁으로 소진된 빈약한 국고는 다시 한번 풍요로 가득 차오르며, 주변 열강들에 못지않은 근대적인 군사 체제가 조직되었으며 오스트리아의 국민들은 교육의 기회를 가지며 훌륭한 인재들이 넘치기 시작한 것이다.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강국 속에서 약소했던 자신들의 조국이 점점 강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여제와 함께 옆에서 함께 개혁에 나선 신하들도 이러한 결과를 바라보며 환호를 외쳤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 놀라운 여제에게 마음을 열고 진심을 다해 보필하며 새로운 나라를 재구축하는데 전심을 다해 힘을 쏟아붓게 되지 않았을까. 위대한 오스트리아의 통치자를 보좌한 신하 중 상무장관이자 황실의 비서였던 조셉 안톤 폰 파라디스 Joseph Anton von Paradis 또한 전쟁의 아픔 속에서 다시 기지개를 켜는 오스트리아의 모습을 보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과 환희를 경험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형용할 수 없는 벅찬 환희는 초원의 풀들이 파릇파릇 자라고 이름 모를 형형색색의 들풀들이 향기를 머금는 1759년의 어느 봄날, 이제 막 태어난 자신의 사랑스러운 딸에게 여제의 존경을 담아서 오롯이 전달하기로 하였다. 


마리아 테레지아 폰 파라디스 Maria Theresia von Paradis라는 이름을 붙여주면서 말이다.





일생동안 많은 아이를 가질 정도로 아이들을 사랑한 마리아 테레지아는 자신의 이름을 가진 이 조그마하고 맑은 눈을 가진 아기 또한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 아기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오스트리아를 성공적인 개혁으로 다시 한 번 정상으로 이끈 위대한 마리아 테레지아가 겨우 조그마한 아이에게 애정으로 보듬어주어 모습을 지켜본 많은 이들은 서로의 입을 통하여 여제는 저 아이의 대모이지 않을까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실제로 폰 파라디스의 대모가 오스트리아의 여제인지 아닌지는 오늘날에도 일부 학자들은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며 확실하지 않지만 한 가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점은 폰 파라디스를 온화한 애정으로 지켜보았다는 것, 그것만큼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이다. 


여제의 사랑을 담뿍 받은 이 아기는 하루하루 성장하며 이윽고 모두를 놀라게 할 하나의 재능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이 살아온 이래로 인간과 함께하며 희로애락을 공유했던 '음악'이라는 재능을. 어린 아가의 두 맑은 눈은 건반 악기의 건반을 바라보며 이윽고 조막만 한 두 손을 뻗어 건반을 눌렀을 것이고 황실에서 노래하는 가수를 지긋이 바라보며 앳된 목소리로 멜로디를 따라 했을 것이다. 여제는 자신이 사랑하는 아이의 축복 같은 재능을 발견하고는 어떻게 이 축복을 키워줘야 할지 기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 기쁨도 잠시, 음악의 축복을 받으며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이 아이는, 세상을 인식하며 배워가는 세 살 밖에 되지 않았을 때, 자신의 인생 전반이 흔들리는 가장 큰 고통에 빠지게 되었다. 인간이 예술 활동을 할 때 필수적으로 필요한 감각 기관 중 하나인 시력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세상에 자신의 재능을 펼치기 전부터 큰 장벽 앞에 놓인 마리아가 어떻게 시력을 상실했는지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당시 어린아이들이 흔하게 걸린 열병에 걸려 시력을 상실했는지, 혹은 광범위한 망막의 손실을 입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마리아의 맑고 투영한 두 눈은 영원히 세상을 머금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 소식은 듣게 된 여왕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 아이에 대해 깊은 고민을 가지게 되었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는 더 이상 세상을 비출 수 없는 맑고 큰 두 눈을 가진 어린아이를 유심히 관찰하였다. 이 아이가 시력이라는 중요한 감각이 없음에도 인간의 감각이 큰 작용을 끼치는 음악이라는 학문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이 아이가 시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이 주신 큰 선물을 포기해야 할까. 이윽고 그는 더 이상 이 고민을 마음속에 간직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평소 아이들을 사랑한 마리아 테레지아는 지금까지 자신이 지켜본 많은 아이들 개개인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그리고 누구보다도 총명한 이 아이에게 신이 내려주신 축복 같은 귀한 재능을 믿기로 한 것이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자신의 결심을 굳힌 후 바로 실행해 나섰다. 이 귀한 아이에게 한시라도 더 빨리 이 아이의 가능성을 열어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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