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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네 Mar 12. 2022

II. 시력을 대신해 피어난
음악의 감각

마리아 테레지아 폰 파라디스 |  제2편

레오폴트 코젤루흐 Leopold Koželuch 라면 누구인가.

보헤미아 출신의 이 음악가는 비엔나로 이주하는 즉시 건반악기 연주자로서, 또한 작곡가와 교육가로서 명성을 얻어 모두의 신임을 받아 훗날 마리아 테레지아의 서거를 위한 칸타타를 작곡하였으며,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의 후임으로 오스트리아 왕실의 음악 감독이자 궁중 작곡가로 선정된 인물이 아니던가.


또한 안토니오 살리에리 Antonio Salieri는 어떠한가.

합스부르크 왕조의 충실한 신하이자 비엔나 내에서 공연되는 모든 이탈리아 오페라를 장악한 당대 최고의 거장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빈센초 리기니 Vincenzo Righini. 이탈리아의 볼로냐 출신의 이 작곡가 겸 가수가 비엔나로 이주한 훗날, 살리에리를 대신하여 임시로 궁정의 상임지휘자가 되어 그만의 화려하고 다채로운 오페라를 무대에 올린 사람이 아니던가.


마리아 테레지아는   사람을 유년시절의 폰 파라디스에게 붙여 코젤루흐에게는 건반악기를, 살리에리에게는 작곡과 노래를, 빈센초 리기니에게는  전문적으로 노래를 배울  있게 전폭적인 지원을 지지하기 시작하였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에게 닥친  커다란 장애는 저 조그마하고 안쓰러운 아이의 재능 앞에선 그저 한낱 작은  한 톨만 할 것이라 자부하였기 때문에.


여제의 바람대로 폰 파라디스는 자신의 장애와 상관없이 최고의 스승들의 밑에서 음악과 관련되었다면 무엇이라도 상관없이 해면이 물을 빨아들이듯 흡수하기 시작하였다. 노래를 부를 때는 화려하고 정교한 꾸밈음들이 매끄럽고 온화하게 흘러나오기 시작하며, 자신의 두 손으로 하프시코드와 이제 막 등장하기 시작한 피아노 포르테를 연주할 때는 재치 있고 세련된 즉흥 연주가 흘러넘쳐 청중들에게 놀라움의 경험을 안겨주게 되었다. 시간은 흘러 폰 파라디스가 11살이 된 1770년, 여제가 개최한 궁중 음악회에서 오르간의 반주에 맞춰 바로크의 거장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의 Giovanni Battista Pergolesi의 가장 경건하고 매혹적인 작품, '스타바테 마테르 Stabat Mater'의 소프라노 파트를 직접 부르게 되었을 때 이를 지켜본 마리아 테레지아는 어떤 심경이 들었을지는 우리는 알 수 없으나 장애를 이겨낸 파라디스의 모습에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깊은 감동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왼쪽부터 레오폴트 코젤루흐, 안토니오 살리에리, 빈센초 리기니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



당대의 오스트리아의 음악계를 이끈 스승들은 여제의 요청으로 그들의 특별한 제자가 될 폰 파라디스를 만나고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두 눈이 안 보이는 마리아 테레지아 폰 파라디스. 일반 사람들도 외적으로는 달콤하고 매혹적으로 보이는 예술의 이면에 도사리는 '창작'이라는 거대한 고통에 금세 지쳐 포기하는데 하물며 두 눈에 세상을 머금을 수 없는 이 아이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우리의 군주는 도대체 이 아이의 어디가 특별해서 이 아이를 당대 음악계를 이끄는 우리를 통해 사사하라는 요청을 하였을까. 아마 스승들은 반신반의한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위대한 거장들은 이윽고 이 의문을 철회한다.


어느 순간 파라디스는 어떠한 까닭인진 모르지만 한 번 들은 음악은 절대로 잊지 않고 그대로 모방할 정도로 놀라운 기억력을 가졌으며 하나의 음을 들으면 그대로 똑같이 따라 하는 정확한 청각을 지니고 있었다. 스승들은 이 아이가 과연 얼마큼의 레퍼토리들을 기억할 수 있을지 관찰하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 기악 협주곡 및 기악 독주곡, 그리고 성악 독주곡과 신성한 종교 작품까지 장르에 상관없이 약 60 여개의 레퍼토리를 오롯이 자신의 머릿속에 담아내어 그대로 연주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스승들은 이 특별한 제자의 놀라운 능력에 환호하였고 어떤 음악이든 듣는 순간 머리에 각인해 그대로 입으로, 그리고 두 손으로 모방한 이 사건은 커다란 소문이 되어 시각장애인 '마리아 테레지아 폰 파라디스'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은 높아져갔다.


마치 사람의 영역을 벗어난듯한 폰 파라디스의 이 놀라운 능력은 바로 시각의 부재로 몸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영역의 감각의 각성으로 인한 것이었다. 폰 파라디스와 같이 신이 시각을 뺏어간 대신 그 자리를 음악적 감각으로 빈자리를 채워준 경우는 유럽의 중세 시대부터 그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두 눈이 안 보이는 음유시인은 각 마을을 돌아다니며 세상사를 속속 밝히고 풍자하는 위풍당당한 현자의 모습으로 시와 소설과 같은 문학에 세세히 그려져 있으며 수세기 동안 두 눈이 안 보이는 음악가가 유럽의 거대한 교회를 웅대한 소리로 깨우는 오르간 주자로 고용되는 경우도 제법 되었다고 한다. 폰 파라디스 또한 본래 자신이 지니고 있던 음악적 재능이 자신의 기억에도 없는 어린 시절에 갑작스럽게 다가온 시력의 부재로 사그라질 뻔했지만 불행은 또 다른 복이 되어 음악적 감각이 무아지경으로 꽃 피우게 된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와, 이 놀라운 능력이 꽃 핀 아이의 소문이 오스트리아에 파다하게 퍼질 때 이 소문을 듣고 한 창백하고 빼빼 마른 소년은 그 소문의 중심인물인 폰 파라디스를 만나기로 결심한다. 때가 되어 새하얀 가발을 봉긋 세우고 조그마한 자신의 체구의 몸에 우아한 옷들로 한 껏 치장한 이 소년은 파라디스가 참가하는 한 살롱에 방문하였다. 피아노가 놓여있는 살롱의 그 중심에 악보조차 눈에 담지 못하는 자신의 또래 같은 여자 아이가 등장해 손가락을 건반에 올리는 순간 다채로운 피아노곡을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본 소년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모든 음악을 자신의 두 손 안에서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눈이 보이지 않은 여자 아이가 자신과 동등한 음악적 감각을 지니다니! 이후 남다른 음악적 감각을 보여준 마리아 폰 파라디스와 그보다 세 살 많은 음악의 신동, 음악의 천재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오래될 우정이 시작되었다.




한 편 세간에서는 흥미로운 소문이 하나 돌기 시작한다. 독일 출신의 한 의사가 자신만의 신비한 치료법으로 현대의 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환자들을 고쳐준다는 것이다. 물론 사교계에 자주 드나드는 모차르트 또한 이 의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모차르트에게 이 의사는 오스트리아에서 자신의 적극적인 후원자로서 자신의 놀라운 창작력을 유지시켜줄 수 있는 자원들을 안겨주었으니까. 모차르트의 도움으로 만났을지, 혹은 그가 직접 관심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불치병을 치료하는 기적의 의사, 프란츠 안톤 메스머 Franz Anton Mesmer는 1776년, 17살의 마리아 폰 파라디스의 이야기를 들은 즉시 이 독특한 이력을 가진 여성의 보이지 않는 두 눈을 치료하겠다는 원대한 결심을 다짐하였다. 아무도 따라 하지 못할 자신만의 독특한 치료법, ‘동물 자기 Animal magnetism’를 통해서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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