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테레지아 폰 파라디스 | 제5편
시끌벅적하고 활기찬 군중의 소리가 귀에 파고들며 햇빛의 냄새와 그 햇빛이 뜨겁게 내리쬐며 달궈진 땅의 냄새가 동시에 콧속으로 들어왔다. 1783년 8월, 마리아 테레지아 폰 파라디스는 항상 곁에서 자신을 지지해준 사랑하는 어머니와, 자신에게 새로운 음악 인생을 선사해준 각본가이자 필사가인 요한 리딩거와 함께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에 당도하였다. 비엔나와 다르게 잘츠부르크의 여름의 시원하고 청량한 바람이 마차 안으로 들어와 폰 파라디스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리딩거는 새하얀 왕관을 쓴 알프스와 가까운 도시라 비엔나와는 또 다르게 바람이 시원하지 않을까 웃으면서 어머니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폰 파라디스는 '새하얀'이라는 의미는 쉽게 다가오지 않았지만 그 어감에는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졌고 마치 클라리넷이라는 악기의 음색을 떠올리게 했다. 어머니와 리딩거의 이야기를 들으며 폰 파라디스는 생각을 이어나갔다. 모차르트의 집에 방문해볼까, 운이 좋으면 자주 가족을 만나러 여기에 방문하는 그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요한 리딩거가 제작해준 작곡판에 점점 손에 익은 폰 파라디스는 매일 저녁 잘츠부르크의 극장을 음악소리로 가득 채우는 연주회, 잘츠부르크의 동료 음악가들과 귀족들의 초대에 부응한 사교 활동, 그를 열광적으로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와중에도 틈틈이 자신만의 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리딩거는 파라디스가 한 땀 한 땀 조각해나가는 작곡판을 기반으로 열심히 악보로 옮기다 멈추고 지금까지 기록한 악보를 차근차근 읽어보기 시작했다. 비극적이고 애처로운 분위기의 도입부와 그 뒤를 풍부하게 채워주는 멜로디가 극적인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모양새였다. 과연 레오폴트 코젤루흐의 제자다웠다. 폰 파라디스는 그의 스승이 가르쳐준 자신의 스타일을 온전히 흡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자신의 찬란한 음악 세계를 고스란히 작품 속에 녹아내었다. 언젠간 그가 작곡한 이 작품들을 모아 출판하면 세간에 또 다른 충격을 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문득 하며 리딩거는 폰 파라디스가 새롭게 건넨 작곡판을 받아 거기에 표기된 다채로운 모양의 못의 머리가 표현하는 퍼즐을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항상 자신의 초대로 빈으로 찾아오는 모차르트에게 뜻밖의 놀라움을 선사해주고 싶은 폰 파라디스였지만 시간을 내어 찾아간 모차르트 가에 그는 없었다. 아마 그는 가장으로서 가족을 이끄는데도 바쁠 텐데 그 특유의 쾌활한 성격이 절대로 피해 갈 수 없는 비엔나의 화려한 저녁의 클럽과 무도회를 돌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 아무리 그라도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거야. 아쉬움을 달래며 마차에 다시 돌아온 폰 파라디스는 이윽고 모든 일정을 마치고 자신의 동행인들과 잘츠부르크 떠나게 되었다. 아쉬워하는 잘츠부르크의 시민들을 뒤로하고 폰 파라디스의 일행은 프랑크푸르트와 주변의 도시, 그리고 스위스로 이동해 연주 활동을 계속 이어나갔다.
두 눈이 보이지 않는 이 여성은 다양한 도시를 방문할수록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항상 푸른 잔디와 각종 꽃들의 향기가 만발한 쇤브룬 궁전과 언제나 자신을 반겨주는 포근한 자택, 그리고 다채로운 향신료의 향기가 가득 찬 각양각색의 살롱까지 비엔나는 다채로움으로 가득 찬 세상이었다. 근데 지금까지 거쳐온 다양한 도시는 자신이 상상하지 못한 또 다른 향기와 촉감, 그리고 비엔나와는 또 다른 음악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자신이 살던 거대한 세상이 알고 보니 작은 세상의 일부분이었다니. 스위스의 한 살롱에서 연주를 마친 후 열린 사교모임에서 귀족들이 자신의 음악을 칭찬하며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폰 파라디스는 새삼스럽게 다시 넓은 이 세상에 감탄하고 있을 때였다. 여기의 일정을 마친 후, 다음엔 어느 도시로 가실 예정일까요. 한 여성의 질문에 폰 파라디스는 생각을 멈추고, 잠시 골똘히 생각하는 척 연기를 펼치며 온화한 목소리로 이야기하였다. 파리로 갈 예정이랍니다.
한편 폰 파라디스가 향하는 유럽 최대의 도시, 파리에서는 두 눈이 먼 열 손가락의 마술사가 당도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고대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비롯하여 10개의 언어에 능통하며 루이 16세의 총애를 받는 이 언어학자는 어스름한 저녁에 자신의 방에서 지나온 추억을 회상하고 있었다. 1771년 어느 날. 슬슬 봄이 물러나고 여름이 다가오는 그 활기찬 날, 온 거리가 시끌벅적한 성 오비디우스의 축제 기간에 점심을 먹기 위해 카페를 향하는 그의 눈에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사건을 목격하였다.
귀가 들리지 않는 이들을 수호하는 성 오비디우스를 기리는 이날만큼은 항상 숨어 지내던 불구자들이 거리로 나와 자신들의 수호자를 축복하고 찬양하였다. 그 맹인들도 그러하였을 것이다. 군중들은 눈이 보이지 않은 자들을 위한 병원에서 일하는 맹인 호스피스들을 한 구석으로 몰아세워 조롱하고 있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이 불쌍한 이들은 군중이 시키는 대로 바보 모자 *Dunce cap:학교에서 벌로 쓰는 원추형의 커다란 모자를 착용하고 두꺼운 종이로 만든 우스꽝스러운 안경을 착용한 채 그들의 손에 억지로 악기를 쥐어주고는 연주해보라고 부추기고 있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그들은 두려움으로 몸을 떨며 어떻게 연주하는지도 모르는 악기를 어렵사리 연주하며 거리에는 비명 같은 불협화음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떻게 사람으로서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같은 사람을 저렇게 짓밟을 수 있는가. 그때부터 그는 베르사유의 세력가이자 가난한 청각장애인의 교육과 구원에 전념하기로 한 샤를 미셸 드 리피 Charles-Michel de l'Épée와 함께 프랑스의 장애인들의 처우를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지 밤을 새우며 열정적으로 의논하며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하였다. 이 사람이 바로 오늘날 시각장애인의 사도이자 수호자로 불리는 인물, 바로 발랑탱 아우이 Valentin Haüy 였다.
날카로운 바람과 함께 사각사각 내리는 눈들의 노랫소리들을 들으며 스위스에서 겨울을 보낸 마리아 테레지아 폰 파라디스는 어느 순간 발 밑에 보드랍게 밟히던 눈이 어느새 녹아내리고 이내 보드라운 새싹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1784년 3월의 어느 날, 드디어 프랑스 파리에 도착하게 되었다. 유럽의 가장 강대한 나라. 최신 유행을 선도하며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건축물이 우후죽순으로 건설되며 정치와 권력이 난무하는 가장 격동적인 도시. 그리고 가장 세련되고 혁신적인 음악 작품들이 한데 모여 어디든지 감상할 수 있는 도시. 폰 파라디스는 마차에서 내려 이 거대한 도시가 품은 거대한 야망에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오스트리아의 이 눈이 보이지 않는 여성이 유럽에서 가장 자존심이 높은 이 장대한 도시의 무대에 오르다니. 폰 파라디스는 벅찬 가슴을 안고 짐을 푸는 고용인들을 지나 벅찬 가슴을 진정시킬 피아노가 있는 저택으로 걸어 들어갔다.
훗날 부르봉 왕조의 몰락으로 루이 16세의 일가가 베르사유에서 추방당해 강제 이주를 당한 튈르리 궁전으로 향하는 마차 안으로 이제 막 돋기 시작한 각종 나무들의 풀내음이 가득 감돌기 시작하였다. 봄이 무르익기 시작하는 4월, 마리아 테레지아 폰 파라디스는 파리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공공 연주회, '콩세르 스피리튀엘 Concert Spirituel'에서 자신의 데뷔 연주회를 개최할 예정이었다. 부르봉 왕조가 베르사유로 옮긴 이후 텅 비어 버린 이 궁전은 파리의 각종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특히 정부에서 주최하는 음악회인 콩세르 스피리튀엘은 튈르리 궁전의 가장 화려한 중앙관 2층에서 정기적으로 개최되어 유럽의 음악계를 이끌어 나가는 음악가들의 실력을 뽐낼 수 있는 문화의 장으로 사용되었다.
이날만큼은 부유한 부르주아지, 귀족, 외국인 방문객 등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이 음악이라는 이름 아래에 동등한 음악적 경험을 누리는 이 음악회에 초청된 폰 파라디스는 과연 콩세르 스피리튀엘의 개최 이후로 가장 눈에 띄는 음악가였다. 남성도 아닌 여성이 자신이 직접 작곡한 작품을 들고 올라오는 것도 신기한데 그것도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각 장애인이라니. 한낮의 따뜻한 공기가 꽃향기를 잔뜩 머금어 코 끝을 간지럽히는 저녁 6시, 폰 파라디스는 무대에 앉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중앙에 놓인 피아노를 향해 걸어갔다. 눈이 보이지 않음에도 마치 눈이 보이는 사람처럼 그 앞에 능숙하게 앉은 폰 파라디스는 건반에 손을 올려 연주 준비를 마쳤다.
데뷔 연주회는 대성공이었다. 언론은 이 눈먼 여성의 정확하고 유창한 터치와 생생한 연주를 앞다투어 자신의 신문에 싣기 바빴고 이 경이로운 연주회에 함께 한 청중들을 그날 겪은 놀라운 기적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문내는데 여념이 없었다. 유럽에 떠도는 눈먼 피아니스트의 소문이 사실이었음을 지각한 대중들은 이 놀라운 여성이 더 많은 연주회를 개최해주기를 요청하기 시작하였으며 그와 동시에 이 여성과 마찬가지로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기적 같은 이 이야기에 열광적으로 환호하며 그를 칭송하기에 바빴다. 마리아 테레지아 폰 파라디스는 파리에서 즉각적인 성공을 거둔 이후로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정신없이 청중들의 부응에 맞춰 연주회를 개최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루는 폰 파라디스에게 궁전에서 전령사가 당도해 그에게 전령을 내리기도 하였다. 고귀하신 우리의 여왕, 마리 앙투아네트 Marie Antoinette께서 그대를 초대한다는 이야기를. 프랑스는 말 그대로 마리아 테레지아 폰 파라디스의 기적에 흠뻑 빠져있었다.
그날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프랑스의 사교계에서 요즘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자신이 중요한 손님으로 초대된 살롱에 방문하여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웃음꽃을 피워내는 중이었다. 항상 움츠려있는 이 시대의 시각장애인들과 다르게 당당하고 우아하게 사람들 앞에서 자신은 연극을 좋아하며 연기도 능숙하게 할 수 있다며 천연덕스럽게 고대의 이야기들을 연기와 함께 생생하게 사람들에게 구연하는 이 여성 앞으로 한 사람이 다가왔다. 마드모아젤, 괜찮으시다면 당신에게 조언을 구할 수 있을지요. 폰 파라디스는 이야기를 잠시 멈추고 그 목소리가 향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리아 테레지아 폰 파라디스의 인생에 또 다른 변화를 준, 발랑탱 아우이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