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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앰버 Dec 09. 2020

김치전이 날 울리네

내가 사랑하는 아빠

 나에게 ‘김치전’이란 아빠 손맛의 상징 같은 음식이다. 하교 후에 또는 늦게 일어난 일요일 아침에 집안에 기름 냄새가 꽉 차 돌아보면 아빠가 큰 팬을 거실 한가운데 두고 전을 부치고 있다. 어떤 날은 오징어가 들어간 파전이었지만 대개는 김치전이다. 빨간 것도 아니고 노란 것도 아니고 어떤 주황색을 띠고 있는 전인데, 평소보다 조금 노랗다면 그건 카레가루를 넣은 김치전. 다른 음식도 많이 했지만, 아빠다운 건 역시 김치전이었다. 아빠는 심심하면 전을 구웠다.  


 근데 손이 큰 아빠는 이 놈의 전을 정말 산, 같이는 아니고 탑 정도로 쌓아 올렸다. 냄새에 배고파진 내가 간을 본다고 털썩 주저앉은 내가 전을 뜯어먹기 시작해도, 그 전 굽는 속도를 못 따라잡아서 먹던 전 위에 뒤집다가 찢어진 전이 툭툭. 그렇게 몇 장을 먹어도 아빠는 이미 다른 접시를 가져와 또 쌓아 올리고 있다.  


 아빠는 직장생활보다는 사업을 해야 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성미에 맞지 않는 일은 오래 하질 못했다. 그건 내가 성인이 된 이후 자세히 알게 된 것이지만, 아빠는 부당한 일 앞에 목소리를 내다 못해 뛰쳐나오는 사람이었나 보다. 내막을 다 알진 못해도 이 노인네는 고집에 큰 목소리에 큰 눈으로 손해만 보고 살았을 거다. 그런 사람이 왜 또 다혈질이어서 그렇게 세상과 부대끼며 살았는지, 가족들에겐 왜 그렇게 화를 내며 살았는지.  


 아빠는 이 김치전으로 속상한 엄마도 달래고 나도 불러다 앉혀서 조물조물 먹게 만들고 종내에는 내 대학 졸업 날엔 친구들도 집으로 불러다가 삼겹살을 잔뜩 넣은 김치전을 부쳐서 먹였다. 친구 놈들은 아직도 이 김치전 이야기를 한다. 그때 기억에 웃으면서 야 느이 집엔 이런 김치전 없지? 하다 보면 결국엔 아빠라서 이걸 부쳐다 먹인 것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내 친구들을 보고 신나서 요리 팬을 꺼내 오던 아빠를 생각한다.  


 그 맛도 눈에 혀에 전부 선하다. 늙어가는 아빠가 떠나고 나면 남은 나에게 김치전은 어떤 요리가 될까. 밉고 미운 아빠인데도 같이 지낸 26년 동안 그렇게도 전을 부쳐다 먹인 게 고맙고 웃겨서 언젠간 남이 해준 김치전을 찢어먹다가 엉엉 울게 될 것 같다. 그 맛이 아니라고 투정을 부려도 간을 맞춰줄 아빠가 없어서 더 서럽게 울 것이다. 아빠를 김치전으로 기억하는 내가 더 엉망이어서 끝도 없이 울게 될 것이다. 미리 울고 있다. 김치전이 그립고 할아버지가 된 아빠가 벌써 그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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