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앰버 Dec 04. 2020

운전을 시작한 일에 대하여 (4)

새 차를 사려고 보니


거리에 자동차 광고엔 상당히 매혹적인 가격이 쓰여있었다. 작고 네모난 현수막이 전봇대에 매달려 펄럭이며 ‘코O도 월 16만 원’, ‘산O페 월 18만 원’이라고 말하는 걸 자주 봤다. 그래서 여태껏 ‘차가 엄청 비싸진 않지만 유지 비용이 많이 드는 물건’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 들어가 본 자동차 회사 견적 사이트에서 놀란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유지비용은 남편을 통해 알았지만, 차량 가격을 파악하는 일은 절대 쉽지 않았다.


차종을 어렵사리 정했다 해도, ‘트림’이라고 하는 차량 장비 레벨부터 ‘옵션’이라 하는 추가 기능을 넣는데 하나하나 다 별도의 금액이 붙었고 또 패키지 형태에서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분리할 수가 없었다. 이 옵션을 정하는 일은 거의 나와의 전쟁이었다.


당연히 선택하면 나에게 도움이 되고 또 ‘간지’라는 것이 폭발할 만한 것들이 사실은 다 이달의 나와 다음 달의 나와 내년의 내가 힘을 합쳐야 하는 옵션이었다니.


영업소를 방문해 견적을 받는 데에도 그 자리에서 곧장 결정하기엔 어려운 선택지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내 차엔 멋을 포기하고 필수적인 기능만을 위주로 선택하느라 첫 상담 이후에도 몇 번이나 영업소를 다시 방문해 재견적을 요청하고 전화로 또 변경을 했는지 모른다.


나로서는 너무 많은 선택 앞에서 혼란한 기분이었다. 나는 그냥 ‘이 차 주세요’ 하면 끝나는 일인 줄 알았는데, 같은 옵션을 두고도 영업사원 간에 제공하는 혜택이 또 달라 잘 비교해봐야 했다. 기업을 인수하는 일도 아닌데, 도대체 이 신경전 무엇.


수많은 견적서를 앞에 두고 간신히 옵션과 거래할 영업사원을 선택하고, 할인 적용 후 차량 대금과 할부이자를 포함한 월 납입대금을 조정하며 선수금 및 금융상품을 선택하고, 인수일자까지 조정하고 나서야 차량 계약이 끝났다. 새 차를 사겠단 결심을 하고 약 열흘 뒤에 벌어진 일이었다. 인수는 삼일 뒤.


계약하고 악수를 하고 나오는 길에도 난 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처음 겪는 너무 많은 선택지 앞에서 차를 포기할까도 잠시 고민했던 것 같은데, 어느새 계약이 끝나 있어...? 내가 운전을 한다고...?


 


작가의 이전글 운전을 시작한 일에 대하여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