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를 미루다 미루다 결국 제출해야 하는 수업의 전날 밤, 졸린 눈에 잠들기 직전의 뇌로 공학 수업의 과제를 작성할 때가 있었다. 과학적 논리로 이야기해야 하는데, 이미 내 몸은 꿈을 갈망하고 그 안에 천천히 가라앉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떤 도시의 특징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나는 그 도시에 대한 내 감상을 바탕으로 이 점이 좋다, 이 점이 싫다, 하고 평가하고 있었다. 녹지가 많아 걷고 싶은 길이고, 또 차로는 너무 넓어서 이동에 거부감이 들고, 보도가 넓어서 시원시원하지만 불법광고물이 많고 어쩌고저쩌고.
어렸을 때 담임 선생님께 검사받던 일기장에 내 일상 얘기가 귀찮으면 독후감과 자작시를 채워 넣었지만 언제나 에세이를 쓰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과학적 사고와 과학적 글쓰기를 선망했다. 논문 수준이 아니라면, 아마 근거 있는 글쓰기, 팩트 체크를 마친 글쓰기 정도로 볼 수 있을까.
내가 주로 쓰는 글과 원하는 글이 다르다는 점이 내가 나에 대해 가졌던 깊은 자기혐오의 다른 형태였을까. 목표는 늘 높은 곳을 지향해야 한다고 나를 채찍질하면서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나의 몸과 뇌를 괴롭혔다. 서른이 넘어 시작한 상담에서 선생님은 나에게 왜 스스로를 '달달 볶냐'라고 했고 나는 바로 그날 나를 평가하고 괴롭히는 일을 멈출 수 있었다. 이제는 스스로를 매 순간 평가하는 일을 그만뒀지만, 동시에 객관화도 내려놓은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나는 자기 확신이 없는 걸까.
그러나 스스로에 대한 하나의 확신이 있다면 글쓰기에 대한 열망, 이라기보다는 본능에 더 가까운 동기와 내 뿌리. 써야만, 토해야만 나오는 생각과 표현들이 있다는 것. 그런 나에게 글쓰기가 너무 멀리 있었다는 것. 나의 아이패드에 필요한 것은 펜슬이 아니라 그저 휴대성 좋은 키보드였다는 것을 나는 3년이 지나 깨달았고, 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기분이 남다르다.
아마 원했던 글 쓰는 순간과 내 망한 논문과 지나간 이야깃거리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만 내가 나의 자기혐오 하나를 깰 수 있는 순간은 알게 된 것 같다. 강화유리가 살짝 깨진 내 아이패드와 키보드 하나로 나는 팀장이 주절거리는 사무실에서도 나의 세계를 구축하는 경험을 하고 만 것이다. 방금 전까지는 이게 내 콘텐츠 부족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 역시 이제는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쉽게 글을 쓰고 이어나갈 수 있는 사람이다. 내가 맘먹으면 누구와도 영혼 없는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는 것처럼, 내 글도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