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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앰버 Dec 18. 2020

나의 글쓰기 돌이켜보기


과제를 미루다 미루다 결국 제출해야 하는 수업의 전날 밤, 졸린 눈에 잠들기 직전의 뇌로 공학 수업의 과제를 작성할 때가 있었다. 과학적 논리로 이야기해야 하는데, 이미 내 몸은 꿈을 갈망하고 그 안에 천천히 가라앉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떤 도시의 특징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나는 그 도시에 대한 내 감상을 바탕으로 이 점이 좋다, 이 점이 싫다, 하고 평가하고 있었다. 녹지가 많아 걷고 싶은 길이고, 또 차로는 너무 넓어서 이동에 거부감이 들고, 보도가 넓어서 시원시원하지만 불법광고물이 많고 어쩌고저쩌고.


어렸을 때 담임 선생님께 검사받던 일기장에 내 일상 얘기가 귀찮으면 독후감과 자작시를 채워 넣었지만 언제나 에세이를 쓰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과학적 사고와 과학적 글쓰기를 선망했다. 논문 수준이 아니라면, 아마 근거 있는 글쓰기, 팩트 체크를 마친 글쓰기 정도로 볼 수 있을까.


내가 주로 쓰는 글과 원하는 글이 다르다는 점이 내가 나에 대해 가졌던 깊은 자기혐오의 다른 형태였을까. 목표는 늘 높은 곳을 지향해야 한다고 나를 채찍질하면서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나의 몸과 뇌를 괴롭혔다. 서른이 넘어 시작한 상담에서 선생님은 나에게 왜 스스로를 '달달 볶냐'라고 했고 나는 바로 그날 나를 평가하고 괴롭히는 일을 멈출 수 있었다. 이제는 스스로를 매 순간 평가하는 일을 그만뒀지만, 동시에 객관화도 내려놓은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나는 자기 확신이 없는 걸까.


그러나 스스로에 대한 하나의 확신이 있다면 글쓰기에 대한 열망, 이라기보다는 본능에 더 가까운 동기와 내 뿌리. 써야만, 토해야만 나오는 생각과 표현들이 있다는 것. 그런 나에게 글쓰기가 너무 멀리 있었다는 것. 나의 아이패드에 필요한 것은 펜슬이 아니라 그저 휴대성 좋은 키보드였다는 것을 나는 3년이 지나 깨달았고, 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기분이 남다르다.


아마 원했던 글 쓰는 순간과 내 망한 논문과 지나간 이야깃거리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만 내가 나의 자기혐오 하나를 깰 수 있는 순간은 알게 된 것 같다. 강화유리가 살짝 깨진 내 아이패드와 키보드 하나로 나는 팀장이 주절거리는 사무실에서도 나의 세계를 구축하는 경험을 하고 만 것이다. 방금 전까지는 이게 내 콘텐츠 부족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 역시 이제는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쉽게 글을 쓰고 이어나갈 수 있는 사람이다. 내가 맘먹으면 누구와도 영혼 없는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는 것처럼, 내 글도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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