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NEO-나
2024년 6월 퇴사를 하며 세운 목표는 "방황하기"였다.
한 치 앞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기,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해야하는 것을 분리하기, 하고 싶은 것을 찾아내기. 충분히 잘해내고 있음에도 항상 내 뒤를 따라다니는 우울과 불안을 떨쳐내기.
퇴사 후 3개월은 뭔가 해볼까 기웃거렸고, 나머지 3개월은 본가에서 그 무엇도 하지 않은 채 있었다. 하루 일과는 강아지 산책하기. 본가라고 해서 평온하지만은 않았지만, 생각할 시간은 많았고 그만큼 불안해하는 시간도 비례했다.
25년, 해가 바뀌고 서울에 있는 전셋집을 옮기기 위해, 다시 분주한 서울로 올라왔다.
이번 한 해는 나에게 제2의 사춘기라고 할 정도로 격변기였고, 함축하면 "잘 풀렸다".
마음이 변할 수록 운도 따라왔으니 감사할 따름이고. 그 운에 힘 입어 그 다음 스텝을 잘 밟을 수 있엇다.
18평 전세집에 내가 원하는 주거환경을 만들고, 예비 창업팀도 꾸려보고, 알바도 해보고, 끄트머리에서는 회사에 취업도 하고, 건강한 취미도 생기고, 체력도 좋아졌다.
뜻 깊은 한 해기에, 혼자 개인 메모장에 적는 생각정리를 기록하려고 간만에 들어왔다!
2025의 변화
1. 나와 공간
1) 살면서 지금처럼 가장 평온하고, 현재를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던 적이 없었다. 나는 지금 현재의 패턴을 지키고 싶고, 이 평온함이 깨지는 것이 두려우면서도, 난 이제 단단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이 평온함을 어떤 과정에서 이뤄낸 건지 알기에, 쉽게 깨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복잡하던 생각 구조가 매우 단조로워졌다. 계획, 미래 걱정에 매이지 않고 현재를 바라보게 된 것 같다. 매순간 충실하게 임하는 현재를 가지니까, 형태 없는 미래에도 낙관적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나는 기회가 상당히 쉽게 오는 사람이라는 믿음도 생겼다. 평소 노력이 운이 따라줌과 동시에 일어나고, 나를 찾는 사람들이 많구나를 느끼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혼자서 힘빠지게 누워있는 시간이 싫다. 괜히 복잡하고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되는 틈을 안주고 싶다. 그래서 활동적이게 된다. 요즘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2)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뭔지 고민 많이 했는데, 나는 그냥 해야할 것을 한다는 것 자체가 좋다. 여행이나 유흥도 별 감흥 없고, 그냥 현실에서 건강하고 효율적이고 생산적인게 좋다. 바쁘고 열심히 임하고, 최선의 전략이 뭔지 고민하고, 실행하고… 이런 과정 자체가 제일 재밌다. 좀 허무하지만 환경 때문이니 강박이니 뭐니 이딴 고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뭐든 건강한 목표 하나 세워서 몰입하고 이루는 과정이 재밌다. 그냥 이렇게 태어난 사람이니 해야할 것들에 치이는 과정을 편하게 즐기기로 했다.
3) 넓은 집으로 이사하고 싶었는데 18평에 깔끔한 집으로 구했다. 가구도 다 들여놓고, 빔프로젝터와 예쁜 나무테이블도 거실에 세팅하고. 친구들을 편하게 부를 수 있어서 좋다. 작은 방을 오빠에게 줬는데, 요리가 취미여서 편하다. 서로 터치 없는 스타일이고, 주요한 이야기는 또 다 나누는 편이라 사이가 좋은 편이다. 무엇보다 집에 돌아오면 온기가 있다는 게 좋다. 역시 나는 같이 사는 사람이 있어야 우울에 안빠지는 것 같다.
하지만 방음이 너무 안좋아서, 전세가 1년 남았지만 같은 동네 12평 신축 투룸 오피스텔로 옮기기로 했다. 이사도 기대중.
2. 배구
1) 배구를 시작하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체력이 좋아지고, 생각이 없어지고, 불안함이 사라지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마음을 열게 됐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열심히 한 운동이 없을 정도로, 시작한지 4개월 동안은 팔목에 피멍이 가득했다. 그만큼 몰입하는 과정이 재밌고, 이 사소해보이는 취미가 나의 인생을 바꾼 기점이기도 하다.
2) 배구 잘하는 법
a. 가장 정석적이고 기본적인 자세를 충실히 갖춘다. 기교와 허세를 빼고, 초보자가 갖춰야하는 것을 되뇌이며 익숙해져야한다.
b.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한다. 나는 주 3일이면 도합 10시간은 배구를 하는데, 물 마시는 시간 빼고는 쉬지 않는다. 같은 시간인데도 설렁설렁 임하는 사람들과 성장 속도가 확연히 다르다.
c. 잘 가르쳐줄 멘토를 찾는다. 이건 운이 필요하지만, 나름 여러 동호회를 가보며 가르쳐준 사람 대여섯명은 만나본 것 같다. 가장 처음에 만나 배구길로 인도해준 친구가 가장 잘 가르쳐주는게 천운. 하지만 없었다고 해도, 나는 멘토를 찾을 때까지 떠돌았을 것이다.
d. 내 재능에 대해 객관화한다. 체급과 지능이 사람마다 다른데, 앞 선 사람들을 뒤쫓지도 말고, 뒷 사람들에게 맞추지 말아야 한다. 나는 이론은 워낙 잘 터득하지만, 몸에 적용하기 위한 연습이 많이 필요한 편이다. 이론을 신체에 적용하는 데에 감을 잡으면 성장 곡선이 가파르게 바뀌고, 내가 어떤 것이 적합한지 성장 방법을 깨달은 순간부터는 초보자를 벗어나서 빠르게 치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 가장 어렵고 중요한 것. 내 눈앞에 목표를 계속해서 세운다. 초보를 벗어나면, 내가 뭘 해야할지 방향을 잡기 어렵고, 그러면서 흥미가 식는 타이밍이 온다.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내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찾는 것, 그리고 그걸 채울 방법을 찾는 것, 이 과정을 반복하는 것, 각각이 참 어렵다. 그래도 해야한다.
그래서 헬스를 간다. 부족한 근력과 체급을 높이기 위해… 몰랐는데 난 근수저였고, 데드만 70친다
3. 인간관계
1) 다가감에 대해
a. 나는 나이와 성별을 떠나 곧잘 친구를 사귀는 편이다. 아무런 배경 정보 없이, 순수하게 대화를 하다가 친해진다. 고상한 대화를 하는 건 아니지만 대화의 논리 흐름이 잘 맞을 때 편안함을 느껴진다 해야하나. 자신의 주관을 구분해서, 주어진 상황과 환경변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상황에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요소가 똑같다보니 대화가 빠르게 뻗어나가는 느낌을 받는다. 친해지다가 물어보면, 멘사거나 학력이 매우 높거나 아웃라이어인 사람이었다. 그 중 세상을 따뜻하게 보는 사람들이 내 곁에 남는 것 같다.
b. 다가감은 일종의 무례함이다. 무례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 좋다. 나 또한 내 무례를 받아준 상대에게 보답할 것이다.
2) 걸러냄에 대해
a. 나는 상대가 사과를 하고, 변화할 의지가 있다면 반드시 믿고 곁에 남기를 택했다. 그게 거짓말이든, 몇 번이나 실망했든. 내 사랑은 신념과 같고, 믿기로 했다면 믿으니까. 그 사람의 온전한 편이 되어주기로 다짐했으니까. 하지만 이젠 아니다. 한 친구와의 10년이 막을 내렸다. 난 그 사람의 유일한 친구였는데, 이젠 친구 하나 없는 사람이 되었을 거고, 그 친구는 여전히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는게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20후반 접어들면 이제 알아서 살아야지, 뭐 어떡하겠어.
b. 아빠를 여전히 사랑한다. 요즘 나이 들면서 외로우신지 연락이 잦아지고 있는데, 연락을 받지 않고 있다. 원래는 필요한 이야기만 하고 끊었었는데, 이젠 아니어서. 나는 아빠의 의식주와 생존에 필요한 도움을 철저히 지켜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정서적 교류는 포함되어있지 않다. 이전에는 내가 가족의 실수와 상처를 모두 떠안지 못해서 자책했었는데, 이젠 이 죄책감은 나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c. 나이가 들면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결과를 마주하게 된다. 일종의 성적표다. 어떤 결과든 그건 주변 사람이 아닌 본인이 책임져야할 부분이다.
d. 깍쟁이가 싫다.
3) 인간관계의 기준을 높여야겠다. 단, 스스로를 방어하고 봉쇄하는 것은 안된다. 오히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마음을 더 열고, 다정하게 대할 것이다. 그리고 더 엄격하고, 단호하고, 흘려보낼 것이다.
지금 시점에 하고 있는 것
1. 하고 있는 것
1) 회사
a. 예비창업팀 나오고 맘 편하게 운동하려던 중, 포트폴리오를 통해 면접 제의가 왔다. 면접 경험부터 좋았고 합격까지 3일도 안 걸렸다.
b. 퇴사 후 1년 쉬며 고민했는데, 나는 클라우드/인프라로 가려 한다. 미래 전망, AI 대체 불가능성, 업계 대우, 낮은 접근성과 높은 난이도에서 오는 이점이 크다. 1년 겨우 채워가는 스타트업이지만 자본/사업 규모가 크고, 오너의 입지와 임원들의 전문성을 보고 입사를 결정했다. 대우/사람/커리어/업무 모두 만족. (싫어하는 사람 1명은 있는데 타팀이라 엮일 일 없다.)
d. 스타트업의 장점: 할 게 많고 많이 맡아도 뭐라 안 해서 좋다. 대표님도 “하는 사람 안 말리는” 스타일이고, 처음부터 나를 밀어주려는 느낌. 기획자로 입사했지만 짧은 기간에 클라우드 파트 유일한 PM이 되어 책임 범위가 커지고 있다. AI 쪽은 최근 입사한 신입 PM에게 넘기고, 내가 사수가 됐다.
e. 역풍도 있다. 나는 고기능 ADHD와 유사한 사람이라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몰아치는 게 편하다. 야근 한 번 안 하고 재밌게 일하고 있었는데, 접점도 없는 타팀 사람한테 “00님은 이거 못할 거다, 맡은 게 너무 많다” 소리를 들었다. 심지어 나는 그 일 끝내고, 다른 사람 도와주고 있었는데... 난 안 바쁜데 타인에 의해 내 프로젝트가 덜어내지고 있다. 나는 하나만 붙잡고 8시간 집중이 안 된다. 3~4개를 동시에 해야 집중이 잘 된다. 본인이 못한다고 내가 못하는게 아닌데 그냥 좀 냅뒀으면 좋겠다.
2) 기타
a. 게임 개발: 끝까지 하는 건 역시 어렵다. 기획 한 명의 탈주로 멈췄다. 나의 입사와 맞물려서.
b. 사이드프로젝트: 친구와 “빠르게 배포 가능한 것”들을 구상하고 만들고 있다. ai가 발전하니까, 혼자 기획-디자인-프론트-백까지 풀스택으로 작은 것을 만들며 배워볼까 한다.
c. 공부: 사실 뭘 만드는 것보다 공부가 더 하고 싶다. 가끔 독서실 칸막이에 박혀서 공부하던 때가 종종 그립다. 강제 착석해야하는 그 느낌. 안쉬고 공부하다가 두통 와서 강제로 쉬면서 초콜렛 흡입하는 그 느낌... AWS 어쏘 딸까 싶은데, 이제는 공부에 크게 동기부여가 되는 목표가 있는 건 아니라서... 흠...
d. 그림: 타블렛도 샀고, 다시 살려보고자 한 취미였는데 가만히 앉아서 어깨 굽어지는 취미는 자중해야 할 것 같다. 내 건강을 위해 안녕...
2. 정리한 것
1) 예비창업팀
a. 4개월 정도 했고, 8월 중에 정리했다. 난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최대한 합리적인 제시를 하려 해도 잘 안됐고, 안좋게 끝나서 힘들었다.
b. 끝내면서 얻은 깨달음
i. 무능력한 사람과 일하지 말기. 아주 단순한 프로세스 하나하나를 설명한는 건 상당히 힘들다. 그냥 잘하는 사람이랑 진작에 어울리자. + 20년 업계 사업 실패 경험... 실패한 사람에게는 생각보다 배울 게 없다.
ii. 비합리한 보상을 제시하는 곳은 앞으로도 쭉 그럴 것이다. 일의 본질보다 욕심만 앞서는 사람이다.
iii. 내가 하던 일터를 떠나는 것에 미련 둘 필요가 없다. 주변이 어렵다해도 나는 기회가 있긴 하더라.
+ (26.02) 최근에 들었는데 나 나가고 일 전혀 안됐고, 망했다고 한다..ㅋㅋ 심지어 서로 일은 안하면서 욕심은 많아서 분열됐고, 서로 소송까지 걸고 있다고.. 내가 저주하는 곳은 망한다는게 또 증명되었다...
3. 할 것
1) 일은 지금 하는 대로 하면, 충분히 중요 직책으로 입지를 다질 것 같고, 운동이든 공부든 꾸준히 시간을 투자하면 될 것 같다. 26년은 더 추가되지도 말고, 덜어내지도 말고 지금을 지키자. 이것이 나의 기본값이 되도록 다지는 한 해를 보내고 싶다.
2) 사람 많이 만나고, 잘 거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