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좋아하고, 혼자 이별한 사람에게

그 마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기록

by 원울 wonw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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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사이도 아닌데 혼자 설레고, 혼자 기대하고,

혼자 상처받으면서도 그게 사랑이라고 믿었어.

내가 다 짠 시나리오에, 상대는 등장조차 하지 않았는데

나는 혼자서 이미 오프닝도, 클라이맥스도, 엔딩도 다 보고 있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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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궁금했어.

‘내가 연락 안 하면, 이 사람은 나를 떠올리긴 할까?’

그 답은 아마도 '아니'였겠지.

근데도 한 번쯤은, 먼저 와주길 바랐던 날들이 있었다.

기다림은 그때부터 이미 슬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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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웃음이 나를 향한 건지,

아니면 그냥 지나가는 바람이 만든 착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설렜어.

이유를 묻는다면,

그저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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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지 말자’는 말은, 사실 기대하고 있다는 증거였어.

그래서 또 마음을 눌러 담고,

아무 일 없는 듯한 톤으로 안부를 묻는 내가 있었다.

매번 다짐은 무너졌고,

무너지는 건 늘 내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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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던 대답이었지만,

원하던 마음은 아니었다.

단답 속에 담긴 무관심에

괜히 내가 너무 과했던 건 아닐까 자책하게 된다.

근데 형식이 문제가 아니라,

진심이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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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에게 특별한 누군가가 생긴 건 아닐까.
그 말에 조마조마해지고,
괜히 태연한 척했지만,
속은 이미 쿡 내려앉아 있었다.
질투조차 눈치 보며 해야 하는 이 감정.
참… 초라하고 찌질하고, 그래서 더 진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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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꺼내진 않았지만,

마음속에선 이미 수없이 고백했고,

그만큼 수없이 상상 속에서 거절당했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내 감정만 너무 앞서 있었던 시절.

그땐 진심이었기에 더 조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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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사랑은

받는 것보다 먼저 내 마음을 꺼내보는 일일지도 몰라.

결국 닿지 않았더라도,

그 시간만큼은 진심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마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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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감정은 때로 고백보다, 관계보다,

‘진심이 있었던 적이 있다’는 사실 하나로도 완성된다.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 마음마저 없던 건 아니니까.

혼자였지만, 혼자라서 더 진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좋아해.’ 말 한 마디면 끝나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 말을 끝내 하지 못한 채 수많은 날을 건너왔다.

아무 사이도 아니었던 우리는, 그래서 더 애매했고,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고, 그래서 더 마음이 깊어졌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너는 아마 알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대하던

너의 태도에, 나는 자주 흔들렸고, 자주 포기하려 했고, 또 자주 다시 마음을 먹었다.

너는 늘 다정했고, 그래서 나는 매번 오해했고, 그 오해는 매번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우리는 대화를 나눴고, 웃었고, 때로는 깊은 이야기까지 나눴다.

그 모든 순간이 나에게는 특별했지만, 너에게는 그저 일상일 뿐이었을까?

너의 사소한 말에 하루가 무너졌고, 네가 보낸 이모티콘 하나에 다시 하루를 버텼다.

사람이 이렇게도 쉽게 기뻤다 슬펐다 할 수 있다는 걸, 나는 너를 통해 배웠다.

고백하지 않았던 건, 거절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혹시라도 그 말 한 마디로, 우리 사이의 모든 게 무너질까봐.

그조차 아깝고 아쉬워서, 나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마음이 꼭 표현되어야만 하는 건 아닐 테니까.

말하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고, 닿지 않아도 진심일 수 있으니까.

어쩌면 나는 너와의 관계를 지키고 싶었던 게 아니라,

나 혼자 만든 마음의 세계를 지키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 세계 안에서 나는 너와 잘 지내고 있었고, 너는 나를 한 번쯤은 생각해주는 사람이었고,

그 상상이 현실보다 더 단단하게 날 버티게 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흘러, 너와 내가 점점 멀어지고, 너에게 누군가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나는 비로소 이 마음을 놓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것도 아닌 마음이 아니라, 아무것도 될 수 없었던 마음이었기에,

나는 더 이상 그 마음 안에 머물 수 없었다.

이제는 괜찮다고, 지나갔다고 말하지만, 사실 마음 한 켠에는 아직도 네 이름이 남아 있다.

그건 미련이 아니라, 진심이었던 시절의 흔적이다.

나 혼자였지만, 혼자였기 때문에 오히려 더 깊었던 사랑.

네가 웃던 장면, 네가 했던 말, 우리가 함께 있었던 그 모든 시간들을.

언제쯤이면 너를 아무 감정 없이 떠올릴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그때의 나를 다정하게 안아줄 수 있을까.

아마 그날이 오면, 나는 진짜 사랑을 할 준비가 되었단 뜻이겠지.

그때까지, 이 지나간 마음 하나쯤은 잘 간직해두기로 한다.

고마웠어. 말하지 못한 사랑. 하지만 내겐 너무나 확실했던 감정.

그 시절, 너를 사랑했던 내가 있었다는 걸 기억 속 어딘가엔 남겨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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