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종주 1편
설악산에 첫눈이 내렸다고 한다. 가을이 며칠이나 되었다고 벌써 겨울인가 싶지만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그곳에는 벌써부터 가을이 와 있었을 것이다. 이맘때면 항상 생각나는 여행이 있다. 8년 전의 지리산 종주. 단풍을 보러 갔다가 첫눈을 만났었다.
그때를 떠올리며 닫아놓았던 오래전 블로그에 로그인을 했다. 처음으로 맘먹고 쓴 여행기인 지리산종주기가 어두운 방에 웅크리고 있었다. 8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변함없는 나를 만났다. 한결같음에 대한 안도감과 나아진 것이 없다는 자괴감이 교차했다.
오 년 전 지리산 기슭에 지인이 생겨 종종 그곳에 다닌다. 첫눈 소식도 있고, 내일이면 또 지리산을 만날 예정이기에... 여행과 여행기에 대한 열망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던 그 때의 여행기를 이곳에 그대로 옮겨본다.
2010년 11월
여행전야
‘올해도 여행을 굶는구나...’ 하고 있다가 ‘드디어 여행을 떠나는구나...’ 하고 있다.
2년 동안 미친 듯이 여행기를 읽고 나서 처음 떠나는 여행.
3박 4일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여정.
단 한 구절을 머리에 담고 떠나려 한다.
“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별들은 스스로 받아들인 하나의 법칙에 따라 온순히 떠다니고 있었다. 마치 자신들의 고유한 음악과 리듬에 맞추어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처럼.
규율에 따르고 쾌락에 순종하는 것. 해야 할 일들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받아쓰기를 하듯이. 우리가 복종하기를 열망하자 우리의 나약함은 얼마나 큰 힘을 갖는가! “
- 장 그르니에의 <지중해의 영감> 중
구례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뒷모습만으로도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친구란 그런 것.
출발
2010년 11월 9일 아침.
태양이 휘파람을 불며 떠올라 산 위에 또 하나의 산을 그렸다.
밤새 눈이 내렸고, 바람이 눈길을 쓸고 있었다.
가을을 보러 왔다가 겨울을 만났다.
우리는 사라지듯 산 속으로 들어갔다.
바람
바람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바람은 스스스 등성이로 불어와, 쏴아아 골짜기를 내달리다, 휘이이 하늘로 올라갔다.
왼편에서 바람의 연주가 끝나기도 전에 오른편에서 새로운 연주가 시작되었다.
나무에 얼어붙은 눈은 바람이 남긴 악보였다.
길은 바람이 있어 외롭지 않았다.
눈을 입은 나무가 사슴이 되어 길 가운데 우뚝 서 있었다.
아르테미스의 알몸을 본 죄로 사슴이 되어버린 아크타이온을 만난 듯 했다.
자연의 속살을 보고 있는 이 순간, 내 머리에서도 뿔이 돋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남사면을 볼 수 없는 북사면의 나무들은 훨씬 추운 일생을 살고 있었다.
세찬 바람에 쓰러진 나무가 뿌리를 내놓고 맨발로 겨울을 나고 있었다.
일상이 다르니 꿈도 다를 것이다.
산 위에서
10여 년 전. 변산반도 태인에 사시는 어느 할머니는 말했다.
시집을 온 후 한 번도 신(新)태인에 있는 친정집을 가 본적 없노라고.
태인과 신태인 사이에는 작은 야산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삼도봉을 기점으로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 3도가 갈라진다.
그들의 생각과 언어의 차이가 곧 지리산의 크기이다.
산은 사람 사이를 가르면서도 제 발로 찾아오는 사람들의 영혼을 하나로 만든다.
산에 오르는 동안 영혼의 경계는 무력하게 무너진다.
산은 우리의 피를 길어 올려, 좌심실에서 솟아난 경외심과 용기를 우심방으로 열심히 나른다.
피를 주고받으며 갈라진 마음들이 하나가 된다.
내 피가 게을러지고, 그 속에 담긴 산소가 탁해질 즈음,
나는 문득 산을 그리워할 것이다.
황혼
그날의 황혼은 구름의 향연이었다.
육중한 검은 구름이 거센 바람과 함께 머리 위에서 남쪽으로 불길하게 몰려 왔고,
해를 가린 가까운 구름은 동쪽으로, 더 먼 구름들은 서쪽으로 움직였다.
각기 다른 광선을 받은 세 무리의 구름이 천공의 빈틈을 찾아 전력질주를 하고 있었다.
태양은 가장 낮은 구름이 되어버린 지리산 자락에 황금빛 세례를 퍼부으며 서서히 가라앉았다.
붉은 강물이 내 안의 모든 오만한 마음을 머금은 채 흘렀다.
그날, 나는 구름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다.
고개
노고단 쪽 지리산은 두터운 흙으로 덮여 있는 토산이다.
그러다 노고단에서 벽소령으로 향하는 중에 울퉁불퉁한 화강암을 드러내며 암산으로 변한다.
형제봉 근처가 험한 고개 길의 시작이다.
고개마다 삭박(削剝)된 바위들이 마주보며 서서 길을 터주고 있다.
석문의 바위마저 동쪽은 높고 서쪽은 낮다.
남쪽의 소금장수는 소금지게를 지고 이 고개를 넘어 다녔다.
왜구들은 벌판으로 향하고자 이 고개를 넘었고,
의병들은 주는 것도 없는 나라를 위해 그곳을 사수하며 죽어갔다.
그런데 내 먹고 잘 것만 짊어지고 가는 내게는 왜 이다지도 힘겨울까.
세상의 비정함을 처음 만난 아이가 아늑했던 시절을 그리듯
바위 사이 섬진강 줄기를 내려다보며 바다를 떠올렸다.
그렇게 넘어 온 고개를 자꾸만 뒤돌아보며 마흔 살의 고개를 넘었다.
하산
3일째.
능선에 오르자 길은 다시 평탄해졌다.
무릎이 아파왔다.
정상과 휴식을 그리며 험한 길을 정신없이 올라왔건만
편한 길에 이르자 몸이 마음을 따르지 않았다.
인생의 말로를 미리 떠올렸다.
천왕봉을 코앞에 두고 언제가 될지 모르는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섰다.
총상을 입은 빨치산처럼 절뚝거리며
거림이라 부르는 계곡을 더듬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정상을 포기한다고 고통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빈손으로 내려오는 길은
올라갈 때보다 더 길고 험하고 어두웠다.
차라리 저 위에서 쓰러지는 편이 나았을지 모른다고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