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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Chu May 29. 2018

산타모니카로 가는 720번 버스에서

L.A 편

2018년 3월. 10일 간 L.A에서 다큐를 촬영할 일이 있었다. 드디어 아메리카 땅을 직접 볼 수 있겠구나 하는 설렘도 잠시, 입국심사가 까다롭다는 말을 여러 사람에게 듣고 나서는 벌써부터 심사가 꼬이기 시작했다. '쓸데 없는 말을 하면 안 된다, 당당하게 말해라, 밝은 표정을 지어야 한다, 옷을 잘 입어라...' 나는 맛없는 식당은 또 가도 불친절한 식당은 절대 다시 가지 않는 옹졸한 아저씨. 받아들이기는 싫고, 무시할 수는 없는 면접준비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아메리칸 버티고 


사실 미국만큼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나라도 없다. 반면 미국만큼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나라도 없다. 오죽하면 석학 ‘베르나르 앙리 레비’조차 미국여행기에 <아메리칸 버티고(현기증)>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그래, 얼마나 대단한지, 얼마나 화려한지 두고 보자.’ 하는 것이 비행기에 오르는 나의 솔직한 심경이었다.


열 시간 후 L.A에 도착했다. 옹졸하지만 잘 참는 인간형이기에 여러 조언을 준수하며 어렵지 않게 입국심사를 통과했다. 공항 앞 랜트카 회사의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처음 본 미국 풍경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용산 미군기지에서 익히 봐왔던 분위기의 건물들, 사이판과 비슷한 공기. 낯설지 않은 첫인상은 그 자체로 미국문화의 위력을 증명하고 있었다. 


영화에서 자주 본 L.A 다운타운 지하도로

촬영하는 동안 여러 사람을 만나고, L.A 이곳저곳을 다녔다. 따로 관광할 여유가 없어 차로 이동 중에 비벌리 힐즈, 힙합의 명소 캠튼, 차이나타운, 라라랜드 촬영지 등을 여기가 거기야 라는 식의 설명을 들으며 스쳐지나갔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풍경이라면... 고층빌딩이 빽빽한 다운타운에서 불과 한두 블록 뒤쪽에 노숙자들의 텐트가 즐비하게 자리하고 있는 거리풍경이었다.


천국과 지옥이 너무나 가까이 붙어 있었다. 미국의 속살을 목격한 것 같은 감회도 잠시, L.A 최고의 명소에 노숙자거리를 그대로 방치해 두고 있는 것이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우리 같으면 나라 이미지를 생각해 몰아내고도 남았을 것을. 노숙자들은 한 블록 건너의 천국으로 넘어가지 않는 조건으로 지옥에 머물 권리를 얻어 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문득 이곳 뿐 아니라 L.A라는 도시 전체가 이런 작은 구역들로 쪼개져 있음을 깨달았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매우 엄격하게 작동하고 있는 구역과 경계. 미국은 51개주의 연합이 아니라 도시 안에 갈라져 있는 작은 구역들의 집합체였고, 이것이 그곳을 한 마디로 정의하고자 하는 모든 작가들을 좌절시킨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L.A 다운타운 가장자리의 노숙자거리

720번 버스를 타다


촬영을 끝내고 5박 6일 간 캐나다에 다녀오고 나서, 한가하게 L.A를 둘러볼 수 있는 딱 하루의 시간이 주어졌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며 출근하는 사람들 속을 어슬렁거렸다. 숙소근처의 버스정류장을 장시간 관찰한 끝에 목적지를 산타모니카 해변으로 정했다. 720번 광역버스를 타면 한인타운에서 산타모니카까지 한 번에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햄버거로 아침을 때우며 산타모니카의 어원을 찾아보니 알제리 태생의 대성자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의 어머니 ‘성녀 모니카’가 그 유래였다. 모니카를 기리는 축일에 스페인 사람들이 이곳에 처음 도착한 것을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었다. 알제리와 스페인 그리고 L.A가 만나는 곳이었다니... 우연한 선택이었지만 마치 그곳으로부터 내가 선택당한 듯 한 묘한 기분에 들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한인타운 720번 버스정류장

많지도 않은 사람들이 모두 다른 인종인 버스정류장 풍경. 흑인, 백인, 히스패닉, 아시아인, 인디오... 공항에서 조차 이렇게 다양한 인종이 한 앵글에 들어온 적은 없었는데. 댄디한 스타일의 흑인 청년과 힙합스타일의 백인 소년의 대조가 이채로웠다.    


실제로는 어떤지 모르나 적어도 내 눈에 그들은 매우 편안해 보였다.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 없이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모습. 앙심과 오기 비슷한 마음 품고 온 미국 땅에서 내내 나를 기분 좋게 한 그 무엇이 그 속에 있었다. 어디서든 누구와든 격식 차리지 않고 유쾌하게 어울리면서도 보이지 않는 간격을 철저히 지키는 태도. 각자의 전통과 가치에 적당한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원칙, 매너, 취향, 실리에 따르는 사고방식. 


미국은 일상조차 제국의 논리에 따라 작동하고 있었다. 때때로 야속하기 그지 없는 제국의 무심함은 교양이나 전략이 아닌 생존의 방편이자 일상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덕분에 흔쾌히 옹졸한 선입견을 털어낼 수 있었다.           



이윽고 720번 버스가 들어왔다. 버스에 올라보니 서민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히스패닉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흑인, 그 다음이 동양인과 인디오... 백인들도 적지 않다. 흔히 보아온 쾌활한 미국인의 표정은 간데없고 하나 같이 피곤하고 무표정한 모습. 앞자리의 어린 연인들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진한 애정 행각으로 여기가 미국임을 온몸으로 전하고 있을 뿐.


버스는 ‘월셔 가’를 따라 오래도록 달렸다. 과거 유태인들이 터를 잡았던 ‘월셔 가’에는 유태인 교회당과 올드하우스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유태인이 떠난 자리에 한인들이 자리를 잡게 된 사연을 나중에 알아보기로 마음 먹었으나 아직 알아보지 못했다.


하차 벨이 없어 자세히 살펴보니 승객들은 창틀을 따라 이어져 있는 줄을 잡아당겨 운전사에게 하차를 알리고 있었다. 어린 아이처럼 직접 그 줄을 잡아당겨보고 싶어 초조하게 기다렸지만, 가도가도 종점은 나오지 않았다. 버스는 50분 가까이 지나서야 산타모니카에 도착했다. 이 정도면 시외버스가 아닌가 했는데, 알고 보니 산타모니카는 L.A에서 떨어진 독자적인 시(市)였다. 


천국에서의 한 때

산타모니카 해변

산타모니카는 그야말로 천국과도 같았다. 바다가 멀게만 보이는 드넓은 모래사장. '아이언 맨'의 별장이 있는 언덕으로 이어지는 해안선. 끝을 알 수 없는 태평양의 수평선. 그곳에서 밀려오는 잔잔한 파도. 말로만 듣던 캘리포니아의 태양과 공기. 줄지어 선 고급 저택과 예쁜 상점들. 그 앞길을 따라 개와 산책을 하고, 운동을 하는 사람들. 모두들 천국을 일상 삼아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여기서는 노숙자들조차 여유가 흘러 넘쳤다.


갑자기 문을 열고 천국에 들어온 기분이랄까. 나에게도 행복이 밀려오길 바라며 해변을 오래도록 걸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는 끝내 행복감을 느끼지 못했다. 내일이면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초조함 때문은 아니었다. 모든 일정을 잘 마친 홀가분한 상황이었기에 즐기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왜 행복한 사람들의 모습이 이리도 멀게만 느껴지는지. 행복감이라는 순수한 감정이 말라버린 것일까? 근심걱정에 영혼이 쩔어버린 것일까?


나는 타인들의 꿈속을 거닐 듯 그곳에 머물다 다시 720번 버스에 올랐다.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백인 할머니가 힘겹게 끌차를 들고 올라타서 한숨을 내쉬며 앞자리에 앉았다. 서로의 눈이 잠시 마주쳤고, 우리는 옅은 미소를 주고받았다. 낯선 사람과의 한 순간 교감에 마음이 스르륵 녹았다. 


순간 딱 한 뼘 만큼의 간격, 딱 그만큼의 무심함이 보호막처럼 나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고, 왠지 모를 여유와 용기가 솟았다. 그것이 산타모니카의 천국과도 같은 공기가 몸에 스며서 였는 지, 720번 버스 안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어서 였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도 나는 종종 그때의 나로 돌아가 여유와 용기를 되찾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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