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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Chu May 26. 2019

폭격이 낳은 경이로운 풍경

라오스 폰사반에서

폰사반은 라오스 북부의 산간지방이다. 라오스의 수도인 비엔티엔까지 10시간, 반면 베트남까지 7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 루앙프라방에서 200여 키로의 길을 10시간 걸려 들어왔다. 한 시간에 하나꼴로 산을 넘는 험한 길이었다.


산간도로의 휴게식당에서

차창으로 펼쳐진 풍경을 보는 재미에 예정보다 한시간 빨리 도착한 것이 아쉽게 느껴졌다. 고도가 높아지자 운전기사는 정해진 지점을 만난 듯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였고 고원의 공기가 차안으로 밀려들어왔다. 산간지역의 풍광과 도로와 비탈 사이 한줄로 늘어선 원주민의 집들이 번갈아 눈을 잡아끌어 한숨도 잘 수 없었다. 도로와 현관문 사이의 좁은 인도가 그들의 마당이었다. 


집집마다 아이들이 유독 많았다. 그들은 이곳에 활기를 불어넣는 유일한 존재들이었다. 걱정 많은 어른들이 문 앞에 앉아 지나가는 차를 바라보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동안, 아이들은 어떻게든 주어진 것을 가지고 놀 방법을 찾아내 자기들끼리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다. 나중에 만난 투어가이드 '라'는 라오스 사람들은 자식 재산으로 여겨 네 다섯은 기본으로 낳는다고 했다. 


산길의 아이들
루안프라방에서 폰사완으로

뒷집도 뒷마당도 없는 산 길 한 중간 길가의 비탈에 지어진 집들이지만 조그만 오두막이 이곳에 자리하게 된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도시에 자리를 잡을 수 없었던 그들은 그래도 전망이 좋은 곳, 비바람이 덜한 곳, 가까운 곳에 과일나무가 많은 곳, 벌목으로 숯을 만들수 있는 곳을 신중하게 골라 자리를 정했을 것이었다. 우리 동네만의 골목과 모양, 우리 집만의 모양과 구조가 있었던 시절을 잠시 떠올리는 동안 버스는 이 작은 마을들과 기나긴 산길의 중심인 '폰사반'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터미널에 내리는 순간, 낮설고 외딴 곳에 던져졌음을 실감했다. 미지의 공간을 조심스레 살피며 오늘 밤 내 한 몸 뉘일 곳을 찾아다녔다. 


해가 지고 있는 폰사반 시내

시앵쿠앙 지역의 중심지 폰사반. 시앵쿠앙은 과거 베트남의 지원군이었던 라오스 사회주의자 단체 '파테라오'의 중심거점이었다. 호치민은 남쪽으로 향하는 보급로가 막히자 라오스 접경 산간지역을 따라 '호치민루트'를 뚫었고, 미군은 수십만 발의 폭격으로 시앵쿠앙의 자연과 문명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미 전투기들은 작전을 수행하고 복귀할 때마다 남은 폭탄을 모조리 여기에 쏟아버렸다고 하는데, 그 결과 라오스에서 가장 기후가 좋고 쾌적한 시앵쿠앙의 너른 분지가 쑥대밭이 된 것은 물론 아직도 수많은 불발탄이 남아 있어 이후로도 작은 마을 하나 들어서기 어려운 곳이 되었다. 폰사반은 과거 시앵쿠앙의 변두리 마을에 불과했으나 폭격을 덜 받은 덕에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 


내가 꾸역꾸역 이곳까지 기어들어온 이유는 오직 하나. '돌항아리 평원 plain of jar' 때문이었다. 폭격으로 문명이 사라진 자리에 용도와 기원을 알 수 없는 수 천개의 돌항아리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것들은 너른 초원 위에 폭격 당시의 흔적 그대로 널려 있었다. 미스터리한 고대문명과 가공할 폭격의 현장이 공존하는 기이한 풍경. 나는 것을 보기 위해 가는데 하루, 오는데 하루를 써가며 이곳을 찾은 것이다. 위험지역, 오지, 비수기가 모두 겹친 탓에 예상보다 훨씬 비싼 돈을 주고 가이드와 단 둘이 데이투어를 했다.


항아리평원 SITE 1.

항아리의 크기와 수도 놀랍지만 그보다 놀라운 것은 평원 주변으로 펼쳐진 전망이었다. 사방을 둘러싼 산과 그 아래의 목장과 농지와 집들이 거대한 초록의 자연 속에 조용히 쉬고 있었다. 매우 큰 왕국이 자리잡고도 남을 터였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얼마나 어마어마한 폭격이었는 바로 실감할 수 있었다.   


항아리의 기원과 용도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라오스인 가이드 '라'는 외계인의 유산이 아닐까 농담을 하기도 했지만, 일반적으로 화강암을 깎아 만든 사람 키만한 돌항아리들은 과거 애니미즘을 숭상했던 원주민들이 남긴 장례문화의 흔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항아리 안에 담아 몇달 동안 시신을 썩힌 후 뼈를 수습해 작은 항아리나 나무 아래 묻었을 것으로 본다. 


항아리평원 SITE 3.


돌항아리는 소도시 폰사반이 속한 '시앵쿠앙 지역' 전역에 산재해 있다. 지난 수년 간 국제기구의 지원을 받아 불발탄과 지뢰를 제거한 덕에 대부분의 지역이 안전하지만, 여전히 불발탄이 남아 있어 제거작업이 진행 중이다. 현재까지 68개소 지역에서 돌항아리 군이 발견되었으며, 잠정적으로 52개 SITE의 지뢰제거가 완료된 상태라고 하는데, 관광객은 안전이 보장되는 SITE 1, 2, 3 세 구역 만이 들어 갈 수 있다.


SITE 1 은 가장 많은 수백 개의 돌항아리가 가장 넓게 분포해 있는 곳으로 국가에서 관리하고 있고, SITE 2, 3 는 비교적 적은 수십 개의 항아리가 산재해 있어 지역 주민이 관리하고 있었다. 규모와 전망 면에서는 역시 1구역이 최고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조용하고 아담한 2,3 구역에서 더 깊은 감회를 느꼈다. 입장료가 마을 주민에게 귀속 된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SITE 3 으로 가는 길.

2,3 구역을 둘러보고 난 후 'bomb spoon 빌리지'에 들렀다. 지난 몇 십년 간 이 지역 사람들은 불발탄 탄피를 녹여 가재도구를 만들어 팔아왔다고 하는데, 탄피를 줍고 해체하는 과정에서 불발탄이 터져 사람이 다치거나 죽는 일이 많았다. 불 앞에서 숟가락을 30년 째 만들어 왔다는 아주머니의 손놀림이 너무도 능숙한 가운데, 딸은 마냥 수줍게 웃으며 주물선을 갈아 다듬고 있었다. 


농사를 짓고 남는 시간 주로 숟가락을 만든다고 했다. 오늘은 순전히 나 하나 때문에 일손을 놓고 들어와 불을 피웠을 터, 그냥오기가 미안해 탄피로 만든 코끼리와 숟가락 하나를 기념품으로 샀다. 왕국을 날려버린 포탄으로 만든 신성한 코끼리의 형상에는 경이와 슬픔, 위험을 무릎 쓴 생존의 역사가 녹아있었다.     


BOMB SPOON VILLAGE 

수 백개의 항아리를 지나 site 1의 꼭대기에 오르자 폭격 이전 이곳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폭격 당시 이곳은 얼마나 처참했을까 하는 감회가 밀려왔다. 폭격이 갈아 엎은 그 자리, 새로운 흙에서 40년 만에 완벽하게 새로 태어난 자연이 있었다. 아직 수많은 피와 불발탄을 품고 있을 대지 앞에 기분 좋은 무력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이 모든 경이와 슬픔이 결국 전쟁의 산물이라니... 생전 느껴보지 못한, 이곳이 아니면 어디에도 없는 아찔한 감정에 빠져 그곳을 걷고 또 걸었다.


시간과 문명, 전쟁과 자연, 파괴와 탄생, 삶과 죽음, 가난과 풍요...

단 하루의 시간으로는 결코 감당할 수 없을 거대한 역사가 그곳에 있었다.  


항아리평원 SITE 2.


내일이면 비엔티엔을 거쳐 집으로 돌아간다. 하고 싶은 이야가 많지만 아마도 당분간 브런치에 글을 쓸 시간이 없을 것 같아 라오스에서의 마지막 날 작은 흔적을 남기기로 했다. 위클리 매거진에 예고를 남긴 탓에 생전 처음 여행 중 스마트폰으로 장문의 일기를 쓴다. 내겐 10시간 버스타기보다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숙제를 마쳤으니 이제 저녁을 먹으러 나가야겠다.


현재시간 폰사반 게스트하우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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