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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Chu Feb 07. 2019

18개의 걸작과 바꾼 한 장의 그림

몬트리올 미술관 편

몬트리올 미술관 도난사건    


몬트리올 미술관의 가장 특별한 작품은 단연 ‘피터 브뢰겔 Pieter Brueghel the Younger’ 의 ‘Return from the Inn(여관에서 돌아옴)’ 이다. 작품 자체도 비범하거니와 작품을 소장하게 된 과정이 너무도 각별하기 때문. 먼저 곡절 많은 소장과정을 알아본 후, 찬찬히 그림을 살펴보자.


때는 1972년 축제가 끝나가는 늦여름 월요일 새벽. 몬트리올 미술관에 초유의 도난사건이 발생했다. 세 명의 도둑들이 40여점의 미술품을 훔쳐 달아난 것이다. 도난당한 작품은 18점의 회화와 39점의 고대유물 및 보석들로, 렘브란트, 밀레, 루벤스, 들라크루아, 쿠르베, 카미유 코로, 오노레 다미에, 네덜란드 정물화가 데이비드 헴, 영국의 대표화가 게인즈버러 등 미술관의 가장 핵심적인 작품들이었다. 미술을 잘 아는 전문털이범들의 소행이 분명했다. 특히 렘브란트는 그가 남긴 몇 안 되는 풍경화였기에 그 가치가 컸다. 


몬트리올 미술관에서 도난 당한 작품들. (맨 앞에서 시계방향으로) 렘브란트, 밀레, 루벤스, 들라크루아, 카미유 코로, 오노레 다미에의 작품

사건발생 직후부터 2년간 범인들은 몇 차례 전화를 걸어 거래를 제안해 왔다. 그러나 협상과 검거시도는 모두 수포로 돌아갔고, 범인들은 걸작들과 함께 완전히 잠적해 버리고 말았다. 그 후 47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그림들은 미술시장에 한 번도 나오지 않았고, 어떠한 경매에도 출품되지 않았다. 결국 이 사건은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미술품 도난 미제사건 중 하나로 남아 있는데, 몬트리올 경찰은 수사기록을 공개하지 않은 채 여전히 범인과 그림을 쫓고 있다고. 


미술관의 충격과 실망은 말할 수 없이 컸을 터. 유일한 위안은 보험사로부터 받은 보상금이었다. 그들은 그 보상금으로 새로운 작품을 구입하기로 결정했고, 그때 구입한 작품이 바로 ‘Return from the Inn(여관에서 돌아옴)'이다. 도난당한 작품 중 그의 아버지 ’피더 브뢰겔 디 엘더 Pieter Brueghel the Elder'의 작품이 있었기에 그것을 대신하는 의미가 컸다. 18점의 걸작과 맞바꾼 이 한 장의 그림에는 도난당한 걸작들에 대한 몬트리올 사람들의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다.    


진정한 예술의 힘  

   

문제의 작품은 중앙전시동 2층 북유럽 회화 전시실 입구에 별다른 설명이나 맥락 없이 작은 벽에 외로이 걸려 있었다. 드넓은 1층에서 서양미술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느라 눈과 마음이 지쳐버린 관람객들이 무심코 지나치기 딱 좋은 자리. 그림은 스산한 기운을 뿜어내며 제 스스로의 힘으로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다. 처음 대면하는 순간, 심상치 않다는 예감에 이어 '도대체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이지?' 하는 강한 의문을 불러 일으킨다.   

 

<Return from the Inn> (1620) Pieter Brueghel the Younger. Montreal Museum of Fine Arts


아내로 보이는 한 여인이 인사불성의 사내를 끌고 가고 있고, 멀리 허름한 집 앞에서는 사내들과 여인들이 뒤엉켜 싸움을 벌이고 있다. 배경은 한 겨울. 키작은 나무들은 쓸 만 한 가지가 모두 잘려나간 흉측한 모습이다. 저 뒤에 잔가지들을 구해서 등에 지고 가는 남자가 땔감이 부족한 모진 겨울을 온 몸으로 전한다. 그런데 저 집 앞의 사람들은 왜 싸우는 것일까? 


언뜻 보아서는 주정뱅이들의 난장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수레에 실린 뭔가를 놓고 시비가 붙은 듯하다. 수레 밑에 닭들이 모여 모이를 쪼고 있고, 엎어진 망태기 아래로 이삭이 죽 흘러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곡물수레임에 틀림없다.


나이든 농부가 곡괭이를 쳐들고 온 몸으로 수레를 지키려 하지만 흉측한 얼굴의 두 남자를 당여내지 못한다. 그의 팔은 이미 단단히 붙들려 있고, 사내의 쇠스랑은 무방비 상태로 열린 농부의 복부를 향하고 있다. 악마적인 미소를 짓고 있는 사내의 쇠스랑은 이제 곧 농부의 배를 찌를 것이다. 그리고 살짝 내린 눈 위로 어지러이 드러난 흙바닥만이 그 처절했던 저항의 흔적으로 남을 것이다.   

< Return from the Inn > 부분 그림 1.

살벌하기로는 문 안의 여인들도 마찬가지다. 작고 야윈 나이든 여인을 크고 건장한 여인이 손쉽게 제압하고 있다. 아마도 농부의 아내와 여관의 여주인인 것 같다. 가장 섬뜩한 것은 창살 너머의 여인이다. 여관주인의 노모로 보이는 그녀는 처참한 싸움판을 지켜보며 연한 미소를 짓고 있다.  


종합해 보건데 이것은 싸움판이 아니라 범행의 현장이다. 여관에 들러 잠시 쉬어가려던, 혹은 곡물을 팔려던 농부부부로부터 곡물을 강탈하기 위해 여관주인 식구들이 그들을 살육하는 중인 것이다. 제목에 여관이라 되어 있어 여관인 줄 알지 간판은 뻥 뚫린 채 테두리만 걸려 있다. 여관이 아니라 악마의 소굴, 여행자의 무덤이다. 


그렇다면 그림 맨 앞에 나와 있는 사내와 여인은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술에 취한 사내가 비틀거리며 아내에 게 잡혀 여관에서 끌려나오고 있다. 칼을 차고 있는 것으로 보아 농부나 서민은 아니다. 아내는 여기를 보라는 듯 손을 벌려 앞서 걸어가는 아이를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 아이의 모습이 괴이하다. 키로 봐서 분명 아이인데 철모를 쓰고 구식소총 같은 것을 들고 있는 모습. 이 아이는 왜 이런 모습을 하고 있고, 또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 Return from the Inn > 부분 그림 2.

이 모든 상황을 상징하는 것은 아마도 그들 뒤 커다란 나무에 걸린 새집 모양의 상자인 것 같다. 십자가가 기울어진 채 달려 있고, 안에는 하얀 꽃이 꽂혀 있는 화병이 놓여 있다. 성모상이 있어야 할 자리에 죽음을 뜻하는 하얀 꽃이 놓여 있는 것이다. 마을 꼭대기 성당은 혼자 고결하게 돌아 앉아 있고, 종탑 안에는 종이 보이지 않으며, 성당 앞에는 그 누구의 발자국도 없다. 이 마을에 신은 없다. 오직 추위, 가난, 탐욕, 살육, 죽음만이 있을 뿐. 


다시 한 발 물러나 전체를 바라보면, 모든 상징과 구도가 전면에 그려 진 칼을 찬 사내로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아수라장을 수습하라고 준 권력으로 여관에서 술을 얻어먹고 떡이 되어 있는 사내. 이제 드디어 아이가 왜 저런 모습인지, 여인이 무엇을 호소하는지 알 것 같다.     


아이는 술 취한 군인을 대신해 전쟁터로 나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여인은 군인에게 제발 정신 차리고 전쟁터로 나가라고, 할 일을 하라고 애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군인의 아내인지 아닌지는 불분명하나, 아이의 어머니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종교가 무너지고, 끝없는 전쟁으로 왕국들이 사라져가던 중세 말 유럽의 종말론적 풍경이다. 온 세상이 암담하고 참혹한 와중에도 술 취한 군인, 즉 권력자는 혼자만의 달콤한 꿈을 꾸고 있다. 그가 정신을 차리지 않는 한 추운 겨울은 끝나지 않을 것이고, 이 모든 비극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한 장의 그림을 오래도록 뜯어보는 일보다 즐거운 일은 없다. 어둡고 추한 것을 가열 차게 묘사하여 감상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의 힘이다. 적어도 나는 그런 작품에 더 깊이 몰입한다. 그리고 벨기에 화가 브뢰겔이야말로 이 구역의 지존이다. 그는 평생 지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이미 지옥임을 부르짖었고, 그의 그림 앞에서 우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지지 않은 지금의 인간세상을 떠올리며 새삼 몸서리를 친다.    


걸작을 도난당한 사람들의 마음 또한 같은 풍경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걸작들을 대신할 한 장의 그림으로 삼기에 이보다 더 제격인 작품이 있을까?

구입을 결정한 몬트리올미술관 큐레이터들에게 감탄과 박수를!


브뢰겔이라는 이름의 화가들


브뢰겔 가문은 많은 화가를 배출했는데, 당시 벨기에는 아버지의 이름을 아들이 이어받았기에 이름을 혼동하기 쉽다. 화풍도 거의 비슷해 막상 그림만 봐서는 누구 작품인지 구분하기 어렵기도 하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피터 브뢰겔 디 엘더 (Pieter Brueghel the Elder, 대 브뢰겔)’의 큰 아들 ‘피터 브뢰겔 디 영거 (Pieter Brueghel the Younger, 소 브뢰겔)이다. 작은 아들도 화가인데 ’얀 브뢰겔 디 엘더 (Jan Brueghel the Elder, 대 얀 브뢰겔)이다. 얀 브뢰겔의 아들도 화가였음을 이름으로 알 수 있다.


그들의 그림이 미술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보니 사람들은 엘더, 영거보다 그들을 좀 더 명확하고 쉽게 구별할 방법을 생각해내었다. 작품세계에 따라 별명을 붙인 것이다. 아버지인 '대 브뢰겔'의 별명은 ‘농부의 브뢰겔 Peasant Brueghel’ 이다. 그가 농촌 풍경을 즐겨 그렸기 때문이다. 큰 아들 '소 브뢰겔'의 별명은 ‘지옥의 브뢰겔 Hell Brueghel’. 굳이 더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만, 평생 어두운 그림을 즐겨 그렸다.


작은 아들 '대 얀 브뢰겔'의 별명은 ‘벨벳의 블뢰겔, 천국의 브뢰겔, 꽃의 브뢰겔 (Velvet Brueghel, Paradise Breughel, Flower Breughel)이다. 형과는 달리 온화한 성화, 풍경화, 꽃 정물화를 많이 그렸기 때문으로, 그와 매우 친했던 루벤스가 그려 준 일가족(그와 둘째 부인과 어린 자식들)의 모습도 화목하기 그지없다.   


아버지의 화풍을 그대로 계승한 두 아들이 서로 짜기라도 한 듯 천국과 지옥을 나누어 그린 것도 재미있고,

천국과 지옥이 소박한 농부의 세계, 즉 자연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창 밖을 바라보는 미술관 직원. 도대체 도난 당한 걸작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걸까.


그림은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 이야기를 가진 그림은 세상에 단 하나. 이것이 수집가들이 그림에 미친듯이 집착하는 이유이고, 도시마다 미술관이 있는 이유이다. 한 점의 그림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화가, 미술관, 도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가며 우리를 새로운 세상으로 데려간다. 오늘은 또 어떤 그림이 내 시선을 사로잡을까? 미술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그래서 언제나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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