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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Chu Feb 14. 2019

지하철이 멈춘 날

토론토 복지제도 편

멀리서 보았을 때 미국과 캐나다는 거기서 거기 같았다. 둘 다 비슷한 크기의 땅덩어리에 여러나라의 이민자들이 영어를 쓰며 산다. 다른 점이라면 캐나디언이 좀 더 전원적이고 순박한 느낌이라는 정도. 그런데 짧은 기간 한 번에 둘러 본 미국과 캐나다의 분위기는 너무도 달랐다. 그리고 그 차이의 근본적인 원인은 복지제도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캐나다와 미국의 차이 

       

캐나다는 사회복지국가를 지향한다. 복지제도를 세분화해 사각지대를 최대한 없애고, 각종 공공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향이다. 특히 교육과 의료, 연금제도가 잘 되어 있어 각종 양육수당과 무상교육, 병원비 무료, 65세 이상의 국민 대부분이 죽을 때까지 연금을 받는다. 개인의 자유를 최우선시하며 각자도생하는 미국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이다.     


두 나라의 차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노숙자이다. 미국에서는 어디에서나 노숙자를 볼 수 있었지만 캐나다에는 노숙자가 거의 없었다. 캐나다에서 걸인 비슷한 사람을 실제로 만난 것은 딱 한 번. 밤중에 슈퍼 앞에서 눈치를 살피며 동냥을 하던 흑인남자와 담배를 낱개로 팔지 않겠냐고 묻는 백인남자를 만난 것이 전부였다. 서부의 밴쿠버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고는 하나 분명 미국만큼 노숙자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L.A 산타모니카 야자수 그늘 아래의 노숙자. 산타모니카에서는 노숙자도 덜 비참해 보인다.

캐나다는 미국에 비해 심심할 정도로 조용했다. 경쟁이 덜해 사람들이 온순하고 조용한 것은 좋은데 붙임성이 없는 것이 단점이었다. 낮선 사람을 대할 때 너무나 온기가 없고 무덤덤해서, 아무하고나 친구처럼 인사를 주고받던 L.A가 가끔씩 그리워지기도 했다.     


그곳에서 만난 부모들의 고민에도 이런 분위기는 그대로 반영되고 있었다. L.A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놀 것이 너무 많아 집에 붙어있지 않는 것이 걱정인 반면, 캐나다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소소한 갈등으로 자녀들과 사이가 벌어지는 것이 걱정이었다. 나돌아 다녀도 걱정, 집에만 있어도 걱정인 것이 부모의 마음. 만약 이민을 고민 중이라면 경쟁과 쾌락을 즐기는 진취적인 분은 미국으로, 안정을 선호하는 차분한 분은 캐나다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스타일, 날씨, 표정, 멋진 건물과 적당히 더러운 골목... 내가 느낀 토론토의 인상이 가장 잘 담긴 사진.


캐나다가 복지국가를 추구하게 된 데는 날씨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추운나라가 자유방임으로 나가면 곳곳에서 얼어 죽는 사람이 속출할 것이기에, 오랜 시간에 걸쳐 최소한의 의식주는 해결해주는 쪽으로 합의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북유럽도 같은 이유로 복지국가가 되지 않았나 싶고, 러시아나 중국 등 추운 나라일수록 사회주의를 채택했던 경우가 많았던 것도 그 영향이 있었지 싶다.


모든 게 다 날씨 탓은 아니겠지만... 사회제도에 날씨가 미친 영향이 매우 컸다는 사실을 억지로라도 우기고 싶다. 나라와 민족의 우열을 따지기 전에 그들의 특수한 환경과 처지를 먼저 감안해볼 필요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복지의 불편 1 - 도시를 일찍 잠재우는 세금 


국가로부터 무언가를 받는 것은 금방 당연시하면서도 하찮은 불이익에는 발끈하는 것이 인간의 습성이고, 복지국가를 부러워만 했지 그것을 위해 감수해야 하는 불편에 대해서는 인색한 것이 우리의 현실. 토론토에서 몇 가지 불편과 불이익을 겪으며 복지의 이면을 실감했다.      

       

복지의 불편 첫 번째는 역시 텍스, 세금이다. 캐나다는 각종 세금을 꽤 많이 낸다고 하는데, 여행자도 예외는 아니다. 먹고 자고 사고파는 모든 것에 10%의 세금을 별도로 내야한다. 식당을 예로 들면 메뉴판에 10불이라고 되어 있는 음식의 경우, 막상 계산을 할 때는 텍스를 별도로 추가해 11불을 내야 한다. 거기에 음식 값의 10%정도를 팁으로 주는 것이 매너이므로 (물론 서비스가 정말 개판이었다면 당당하게 거절하는 것이 합당), 메뉴판 상 10불인 음식의 실제 식대는 12불이 된다. 캐나다 달러의 환율이 US달러보다 싸다고 긴장을 풀었다가는 부지불식간에 경비가 마르기 딱 좋다. 사는 사람이야 복지혜택이라도 받는다 치지만 여행자는 일방적인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 그나마 고속도로 통행료가 없다는 것이 큰 위안이었다.     


여행자의 호주머니를 걱정하다 자연스레 떠오른 생각은 '세금이란 것이 단지 얼마나 더 내고 덜 내느냐의 문제를 넘어 생활패턴 전체를 바꾸는 문제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캐나다의 경우, 소득이 많으면 세금이 늘어나는 한편 복지혜택이 줄어들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생활비를 절약하게 된다. 또 식료품은 매우 싸고, 외식비는 상당히 비싸다. 그러므로 특별한 날이 아니면 가급적 집에서 식사를 한다. 자연히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밤만 되면 온 동네가 조용해진다. 복지국가의 길고 조용한 밤은 세금의 산물이기도 한 것이다.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한 몬트리올 시가.


복지의 불편 2 - 지하철이 멈춘 날  

      

또 다른 복지의 불편은 대중교통이다. 토론토의 버스와 지하철은 TTC(Toronto Transit Commission)라는 공공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캐나다의 교통은 기본적으로 자가용 중심 시스템으로, 땅이 너무 넓고, 교육과 연금 등 보편복지에 돈을 많이 써야 해서 그런지 지하철은 노후하고, 버스 노선도 많지 않다. 현지인들은 TTC를 'Take The Car'(자가용을 타시오)라고 부른다고.      

  

토론토에 있는 동안 말로만 듣던 TTC를 진하게 체험할 일이 있었다. 그날 우리(나와 신작가)는 ‘에이, 아무리 그래도 시내중심가 정도는 지하철로 둘러볼 수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기세 좋게 일일권을 끊고 입장, 올드타운인 Qeen역에서 내렸다. Qeen 다음 역이 King,  그 다음 역이 토로토의 중심 Union 광장이었다.


올드타운 너머로 유니온의 토론토 CN타워가 보인다. 4월인데도 모두 한겨울 복장을 입었다 . 


Qeen에서 유니온 광장까지 걸어갈 생각이었지만, 올드타운을 둘러보는 도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익숙한 현지인들은 아무렇지 않게 비를 맞으며 다녔지만, 우리는 한기와 축축함에 쫓겨 급히 지하철로 내려갔다.


출구전용, 입구전용 개찰기 앞에서 어리비리 우왕좌왕 헤맨 끝에 어렵게 지하철을 타러 갔으나... 지하철 운행이 멈춰있었고, 안내방송이 끝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종점 부근 00역에서 사고가 발생해 경찰이 조사를 하고 있는 관계로 운행이 중단되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실 분은 버스를 이용하세요.” 


건너편 사람들이 계속 버티는 것으로 보아 언젠가는 오긴 오는 모양이었으므로, '지하철이 멈추기도 하는구나...'하며 기다기를 한 시간. 한산하기만 하던 플랫폼이 꽤 많은 사람들이 채워졌다. 내심 '순한 캐나다 사람들이 화가 나면 어떨까?' 유심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누구 하나 나서서 큰 소리 내는 사람이 없었다. 단 한 명, 기다림에 지친 할머니가 밖으로 나가며 'Crazy, crazy...'를 혼잣말로 되뇌인 것이 전부였다.  


한 시간 넘게 지하철이 오지 않는데도 아무도 항의하지 않았다. 각자의 플랜B를 찾을 뿐.

우리도 슬슬 플랜B를 찾기 시작했다. 스마트 폰으로 버스노선을 찾아보니 신작가의 누님 댁이 있는 노스욕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는 없었다. 버스의 예상 소요시간은 환승 포함 1시간 40분. 택시로는 30분 거리였다. 비는 오고, 해는 지고, 신작가의 누님은 저녁상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고... 결국 기다리다 지쳐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집으로 오는 사이 비가 그쳤고, 택시비가 무려 50불이 나왔다. 속이 쓰렸다.


집에 와서 신작가의 조카들에게 들으니 토론토에서는 지하철이 멈춰서는 일이 다반사라고 했다. 그래서 지하철만 믿고 움직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복지에 그 많은 돈을 쓰면서 대중교통에는 이토록 무심할 수가 있을까?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병원비가 무료고, 아이들과 노인들이 모두 의식주를 보장받고, 저소득 가정의 자녀도 교육의 기회를 보장 받는다면... 밤이 길고 지루한 것쯤은, 지하철이 가끔 멈춰서는 것쯤은 기꺼이 감수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지. 


몬트리올 숙소 옆집 창고 위에 썩어가는 기타. 복지가 좋아져도 부모와 예술은 원수지간인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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