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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Chu Feb 28. 2019

수족관 속 고래상어의 비밀

추라우미 수족관 편

고래상어와의 만남    


추라우미 수족관의 여러 방을 지나 고래상어와 조우했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커다란 투명창  앞에 붙어선 관람객들의 그림자 위에 고래상어가 마치 우주선처럼 고요히 떠다니고 있었다. 거대하지만 온순한 고래상어가 지배하는 수조 안은 평화로웠다. 약육강식이 없는 비현실적인 자연이었다.    

 

붐비는 사람들 사이 빈틈을 비집고 들어가 그림자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것은 차갑고 고요한 불꽃놀이였다. 다음 불꽃이 터질 때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고래상어가 내 앞으로 지나갈 때만을 기다렸다. 멀리에서 나타난 고래상어가 흰 배를 드러내며 머리 위로 유유히 지나가는 순간 탐욕스럽게 황홀함을 만끽했다. 수없이 반복해서 보아도 그 순간은 매번 감질났다.  

     

그곳에 어른은 없었다. 고래상어를 본 남녀노소 모두 단번에 순진한 어린 아이가 되었다. 잠시 바깥세상을 잊은 어른들이 물고기처럼 대열을 이루어 빈 공간을 따라 흘러 다녔다. 오염된 영혼들을 일제히 동심으로 되돌리는 그 어려운 일을 고래상어가 아무렇지 않게 해내고 있었다.     


사진이나 기억으로 그곳에서의 감흥을 다시 느낄 수는 없었다. 몇 개의 기념품만이 경이로운 존재와 잠시 함께 했던 시간의 증거로 남아 있었다. 사라진 감흥을 불러보다 문득, 수족관도 미술관처럼 그 역사에 특별한 이야기가 숨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월척을 건져 올릴 것만 같은 예감으로 정보의 바다에 낚시를 던졌다. 힘찬 입질에 이어 뭔가 커다란 것이 올라왔다. 그러나 그것은 불편한 진실. 알아야 할 진실이었지만 알고 나니 입 안이 쓰디썼다.     


세계 최고의 수족관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추라우미 수족관 입구. 수족관 안과 밖 모두 바다이다.


추라우미 수족관은 ‘오키나와 해양엑스포 공원지구(the Ocean Expo Park in Okinawa)’에 위치해 있다. 일본정부는 1975년 오키나와에서 국제해양엑스포를 개최, 박람회가 끝난 후 이곳을 공원화했다. 시기상,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한 직후 중앙정부가 이례적으로 큰 선물을 안겨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해양엑스포의 주제는 ‘태양과 꽃과 바다’였는데, 수족관은 ‘바다’ 부분을 위한 시설로 만들어졌다. 수족관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규모와 시설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키나와의 관광산업은 1980년대까지 경제호황과 더불어 절정을 맞다가, 1990년대 외환위기에 직격탄을 맞았다. 여행객의 급감은 주민 대다수가 관광업에 종사하는 오키나와에 치명적이었다.     


위기에 빠진 오키나와 주정부는 2002년에 이르러 특단의 결정을 내렸다. 오래된 수족관을 없애고 그 자리에 세계 최대 규모의 수족관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수족관 건립에 맞춰 새로운 이름을 공모한 결과 ‘추라우미’가 선정되었다. ‘추라’는 원주민 언어로 ‘아름답다’, ‘우미’는 일본어로 ‘바다’였다.    


해외에서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규모와 시설 모두 세계최고여야 했다. 제주도보다 불과 1.3배  크기의 섬으로서는 힘에 부치는 일이었지만 살기 위해서는 해내야 하는 일이었고, 그들은 결국 해내고 말았다. 수족관 바로 앞에 펼쳐진 바다만큼이나 아름다운 바다를 수족관 안에 그대로 재현해 낸 것이다.


추라우미 수족관의 자연광은 물고기에게도, 관람객에게도 쾌적한 환경을 제공한다.

    

추라우미 수족관은 세계에서 가장 생태적인 시스템을 갖춘 것으로 유명하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자연광 수조와 바닷물 순환시스템이었다. 자연광 수조는 말 그대로 수조 안에 햇빛이 들어오는 구조를 말한다. 물고기의 생태에 좋은 것은 물론이고, 관람객들의 생태에도 좋다. 어둡고 답답한 여타의 수족관과 달리 햇빛 덕분에 오래 있어도 훨씬 덜 피곤하다.       


또 수족관의 물을 진짜 바닷물로 채웠다. 바닷가에 자리한 이점을 살려 350미터 거리의 바닷물을 펌프로 끌어들여 24시간 내내 수조의 물을 순환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의 물고기들은 유난히 활기차고 건강하다.       

개관 당시 세계최대 수조였던 ‘쿠로시오 바다관’은 그 기술과 노력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현재는 세계 3위. 최대는 2005년 만들어진 ‘미국 조지아 아쿠아리움’, 그 다음은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 아쿠아리움’). 동남아시에서 일본 본토로 흐르는 쿠로시오 해류의 해저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이 수조는 가로 27미터, 세로 10미터의 수조 안에 산호와 말미잘부터 각종 열대어와 대형 거북이, 그리고 쥐가오리들이 있다. 그리고 그 화룡점정이 지구상에서 가장 큰 어류이자 멸종 위기의 희귀종인 고래상어이다.  

   

고래상어로 인해 수조는 그야말로 작은 바다가 될 수 있었다. 온순하고 느릿느릿 움직이는 8미터 남짓한 두 마리의 고래상어가 다양한 물고기와 함께 평화롭게 노닐며 경쟁도 약육강식도 없는 자연세계를 실현해 보이고 있다. 여기에 이 작은 바다를 최대한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도록 내부공간을 설계해 관람객이 아쉬움 없이 자연을 체험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점도 좋다.     


약육강식과는 거리가 먼 물고기들로 이루어진 평화로운 수조.


고래상어는 처음에는 세 마리를 전시했었는데 최대 12미터까지 크는 고래상어의 쾌적한 생활을 위해 암수 한 쌍만 남기고 나머지 한 마리는 별도 사육 중이라고 한다. 현재 전시 중인 고래상어의 크기는 8미터 정도, 연구진은 수조 전체를 CT촬영하여 숨어 있는 생물까지 낱낱이 파악하는 한편 매달, 고래상어의 피 뽑아 정밀검사를 하고 있다. 현재 그들의 최대 당면과제이자 목표는 수조 내에서의 고래상어 번식이다.   

                  

물고기와 관람객 모두에게 자연적인 환경을 제공하고, 이를 위해 끊임없이 생태조사, 해양연구는 물론  환경보존 활동을 하고 있는 추라우미 수족관은 지구상에서 가장 모범적인 아쿠아리움으로 인정받고 있다.  

   

고래상어의 불편한 진실 

   

드디어 불편한 진실을 말할 때가 왔다. 자연 상태의 고래상어 평균수명은 29,200일(약 80년)이지만, 지금까지 사육해 온 고래상어의 평균수명은 502일(약 1년 4개월). 이 정도도 사육상태의 수명치고는 대단히 성공적인 케이스라고 한다. 물론 동물보호단체가 주장하는 이 데이터를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다. 정확한 사실은 수족관 만이 알고 있을 것이지만, 수족관이 나서서 그것을 공표하기 전까지 정확한 사실을 알 도리는 없다. 덧붙여 추라우미 수족관에는 사육 상태 최장수 고래상어인 25살 '진타 Jinta'도 있다. 동물단체가 제시한 수치를 감안하면 그의 수명은 거의 기적이라 할 만 하며, 추라우미의 사육관리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반증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 고래상어가 계속 바뀌어 왔다는 사실을 불현듯 떠올린 순간 낭패감이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추라우미의 최고 스타 자리를 채우기 위해 고용된 스쿠버 다이버들이 인근 해역에서 멸종 위기의 고래상어를 포획하는 장면도, 최대한 상처 없이 잡기 위해 그물에 걸린 고래상어가 완전히 지칠 때까지 기다리는 장면도 떨치려 할수록 더 생생하다.  

 

길면 130년까지도 사는 그들이 한 순간의 감동을 위해 몇 년 간 수조에 갇혀 살다 죽어나가고 있다는 것, 그 사육과 포획에 오키나와 전 주민의 생계가 걸려 있다는 것. 평화롭기만 한 수조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냉엄한 생존논리라는 것... 이것이 황홀함 이면의 불편한 진실이다.  


정기적인 피검사와 바다에서의 생태조사(포획도 비슷하게 힐 듯) 사진-추라우미아쿠아리움 홈페이지.


고래상어의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충격이 컸던 이유는 아마도 남달리 크고 온순한 고래상어와의 만남이 그만큼 황홀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추라우미 수족관의 생태환경이 그만큼 좋았기에 수족관의 이면이 더 충격적으로 느껴지는 측면도 있다. 정작 우리가 문제 삼아야 할 것은 추라우미가 아니라 사육이라는 인간의 행위 자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일례로 닭은 기대수명이 30년이라지만 겨우 45일을 살다 도축된다. 생전에 파란하늘과 들판 한 번 보지 못하고 닭장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가는 경우가 대다수. 흔하다 해서 고래상어보다 그들의 생명이 경시되아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고, 반대로 식용이 아닌 관상용이라 해서 더 잔인하다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인류가 동물의 사육을 완전히 금하지 않는 한 가축, 관상, 반려 등 어떤 목적의 사육도 윤리적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지금으로서는 그나마 살아있는 동안 최대한 생태적인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추라우미는 용납할 수 있는 정도의 수족관이라 생각된다. 물론 나로서는 그곳에서 느꼈던 순수한 감정을 두 번 다시 느낄 수 없게 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또 하나, 우리나라에도 고래상어를 둘러 싼 불편한 일화가 있다. 2012년 제주도의 ‘한화 아쿠아플레닛 제주’에서 고래상어를 전시한 적이 있었다고. 그런데 그 입수경위부터가 논란이 되었다. 수족관 개장 즈음 때마침 '우연히' 현지 어부의 그물에 두 마리 고래상어가 들어오는 일이 벌어졌다. 절묘하게도 아쿠아플레닛의 수조는 추라우미의 수조와 비슷한 크기였고, 거기에다 때마침 쥐가오리 사육을 자문하기 위해 추라우미 수족관의 연구원이 제주도에 파견을 나와 있었다고 한다.     


우연을 가장한 포획이 아니냐는 논란 속에 두 마리 고래상어는 제주도의 수족관에 넣어졌다. 그리고 몇 달 후 한 마리가 죽어버리자 거센 비판을 받은 수족관 측은 할 수 없이 나머지 한 마리를 바다에 방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불꽃놀이와 수족관의 유사성을 일찍이 꿰뚫어 본 탁월한 통찰은 존경스럽지만, 사람과 화약과 물고기는 조심스럽게 다루어 주시길 바라본다.           

 

그곳에 다시 간다해도 동심으로 대동단결 할 수는 없겠지...


수족관의 귀여운 상술들 

       

끝으로 고래상어를 떠나 추라우미 수족관을 둘러싼 일본인들의 상술에 관한 진실을 덧붙이려 한다. 진실이라고까지 할 것 없는 여행팁 두 가지. 먼저 할인 입장권이다. 인터넷에 보면 추라우미 수족관 입장권을 4천 원 정도 할인해서 파는 고속도로 휴게소가 있다는 정보가 있다. 이거 사실이다.   

  

수족관으로 가는 고속도로 중간에 있는 휴게소에 가면 정말로 입장권을 할인 판매하는 곳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관광객들은 할인입장권을 사기 위해 길을 약간 돌아 일부러 그 휴게소를 찾아가고, 일단 휴게소에 들어가면 다양한 먹거리, 살거리 때문에 적어도 할인받는 돈의 몇 배의 돈을 쓰게 된다는 점이다. 즉 수족관 입장권 할인을 미끼로 휴게소 전체가 먹고 살고 있는 것인데, 지역주민이 직접 생산판매를 하고, 물건이나 음식 가격이 대체로 저렴한 편이므로 조금 돌아간다 해도 크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또 하나의 상술로 추라우미 수족관 입구 대형 상징물 앞에서 직원들이 찍어주는 무료스티커 사진이 있다. 무료라는 말에 가족들이 길게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데, 사진은 출구 쪽의 기념품 가게에서 찾도록 되어 있다. 무료사진을 미끼로 관람객을 기념품 가게에 들르도록 자연스레 유도하는 것이다. 기념품을 둘러보는 거야 기분 나쁠 거 없지만, 그깟 무료스티커 사진 때문에 입구와 출구에서 길게 줄을 서고나면 기분이 좋지는 않다.       


불꽃놀이와 같던 고래상어와의 조우. 과도한 호기심 때문에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기도 했지만, 또 그 바람에  아쿠아리움 업계의 일면을 알게 된 것이 보람이라면 보람. 하지만 기념품으로 산 고래상어 인형을 반년 넘게 끌어안고 자는 딸아이의 꿈자리를 심란하게 헤집어 놓은 것은 아닌지... 마음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추라우미 수족관 앞 바다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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