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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Chu Apr 24. 2019

평화누리길에 오르다

평화누리길 1코스 _ 염하천 철책길

평화누리길   

 

'평화누리길'은 김포에서 연천까지 비무장지대 안쪽 길을 따라 조성된 12개 구간의 둘레길이다.  왜 갑자기 그 길을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걸까? 의미를 담자면 차고 넘치는 곳이지만 막상 이거다 하고 명확한 이유를 찾기 어려운 곳인 것도 사실.   

  

일단은 좀 걷고 싶었다. 그리고 그곳은 서울에서 접근성이 가장 좋은 둘레길 이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두 시간 남짓이면 경기도 일원의 출발지에 갈 수 있으니, 주말마다 당일로 한 코스씩 12주면 연천까지 완주를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교착상태의 남북관계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자니 갑갑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번 평창동계올림픽 성화봉송을 할 때 남북화해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멘트를 했었는데, 올림픽을 계기로 기적처럼 남북관계가 풀리기 시작해 나름 뿌듯했더랬다. 내가 중계를 보면 지는 징크스가 있어 한일전도 하이라이트로 보거늘... 드물게 통한 운빨을 한 번 더 믿어보고 싶었다.     

  

또 하나, 이제 곧 민통선 안으로 둘레길이 생기고, 나아가 남북의 왕래가 실현되면 평화누리길의 의미가 조금은 퇴색될 것이기에... 지금부터 그 역사의 과정을 한 발 한 발 함께 밟아나가보고 싶었다. 그래야 훗날 좀 더 큰 감회를 품고 대륙으로 향하는 육로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늦기 전’, ‘더 늙기 전’에 평화누리길을 걷기로 했다.   


  

1코스 ‘염하천 철책길’    


평화누리길은 김포에서 시작된다. 김포구간은 1코스 ‘염하천 철책길’(14km), 2코스 ‘조강철책길’(8km), 3코스 ‘한강철책길’(17km)로 조성되어 있는데, 이름 그대로 바다와 강을 따라 둘러쳐진 철책을 따라 걷는 길이다.     

1코스의 출발지점은 김포의 대명항. 상암동에서 지하철과 버스로 두 시간 남짓 걸렸다. 버스에서 내려서 물어물어 입구에 도착하니 허기가 졌다. 그래 일단 먹자. 바다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김밥과 바나나를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커피만 남은 배낭을 덜렁매고 길을 나섰다.   

  

1코스인 김포의 ‘염하천 철책길’은 바닷물이 강처럼 흐르는 ‘염하천’ 너머로 북한이 아닌 강화도를 바라다보며 걷는 길이다. 내 경우 약 다섯 시간을 걸었다. 긴장감보다는 쓸쓸함이 더 짙게 묻어나는 어두운 바다. 곳곳이 서러운 역사의 흔적이라 마음 심란한 길. 새싹과 봄꽃들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그 무게를 감당해내지 못했을 것만 같다.           


구한말 서구열강의 상선과 전투를 벌였던 덕포진 포대


손돌묘의 전설


1코스의 하이라이트는 ‘손돌묘’였다. 둘레길의 초입인 덕포진에 자리한 고려시대 뱃사공 ‘손돌’의 묘. 표지판 해설에 쓰여 진 손돌의 전설은 다음과 같다.    


“ 덕포진 북쪽 해안 언덕에 위치한 고려시대 뱃사공 손돌의 무덤이다. 전설에 따르면 고려시대 몽고군이 침입하여 왕이 강화도로 피난을 갈 때 이 지역의 물길을 잘 알던 뱃사공 손돌의 안내로 강을 건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세찬 물살에 배가 심하게 요동치자 왕은 손돌이 자신을 죽이려는 줄 알고 목을 베라 명하였다. 손돌은 죽음에 직면하여서도 물 위에 작은 바가지를 띄우고 그 바가지를 따라가면 강화도에 무사히 도착할 것이라고 일러준 뒤 참수되었다. 바가지를 따라 무사히 강화도에 도착한 왕은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충직한 손돌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후히 자사를 지내주었다.   

  

그때부터 이 좁은 물길의 이름을 ‘손돌목’이라 부르게 되었다. 해마다 손돌의 기일인 음력 10월 20일에 불어오는 추운 바람을 억울하게 죽은 손돌의 한이 서린 바람이라 하여 ‘손돌이 바람’이라 부르고 이때의 추위를 ‘손돌이 추위’라 부른다. 원래 이곳에는 손돌을 모시던 사당이 있어 제를 올렸으나 일제강점기 사당이 헐리고 제사도 중단 되었다. 그후 1970년에 주민들이 손돌 묘를 세우고 다시 제를 지내기 시작했다. 1989년부터는 김포문화원의 주관으로 손돌의 기일인 음력 10월 20일에 진혼제를 지내고 있다.”   

  

손돌묘

손돌묘의 전설에 숨은 장면들을 떠올려보며 한 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평생 최씨 무인정권과 몽골의 침략이라는 이중고 속에 신경쇠약과 피해망상의 지경에 이른 고종,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몽골과의 결사항전을 택하고 임금에게 수도와 백성을 버릴 것을 강요한 실권자 최우, 그리고 임금의 피난길 뱃사공으로 발탁될 만큼 유능하고 경험 많은 강화도의 선주였던 손돌...   

  

어쩌면 손돌이 죽는 그 순간 바가지를 띄운 것은 임금에 대한 충심때문이 아니라, 그 와중에도 강화도에 있는 가족들이 역적의 자식들로 남게 될까 염려하여 순간적으로 떠올린 마지막 방편이 아니었을까? 고종이 손돌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러준 것은 자신들의 안락한 피난생활을 위해 성난 강화도 주민들의 민심을 달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강화도의 백성들은 손돌 바람, 손돌목과 같은 전설을 통해 지혜로웠던 마을의 지도자를 기억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고종과 당시의 실세들은 장장 27년이나 강화도에 숨어 지냈으니... 그 사이 주인 없는 국토의 백성들은 얼마나 처참하게 몽골군에게 유린되었을 것이며, 왕족과 군대를 먹여 살려야 했던 한줌의 강화도 백성들의 삶은 또 얼마나 피폐했을까?


손돌묘 앞 초소와 손돌목

무능한 권력과 순진한 백성들의 유적


묘지 앞 제법 너른 공터를 지나 손돌이 처형을 당했다는 손돌목으로 나가 보았다. 갑자기 좁아진 해로를 지나쳐 온 물결이 바위가 드러날 정도로 낮은 수심을 만나며 갑작스럽고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고종이 왜 하필 이 험악한 물길 속으로 자신을 태우고 왔느냐고 길길이 날뛸 만 해 보였다. 몽고군이 개경과 평안도에 일대에 남겨두고 간 감시관(다루가치)은 47명. 최우의 강압에 못 이겨 감시자들의 눈을 피해 마음을 졸이며 여기까지 온 고종은 틀림없이 뱃멀미를 했을 것이고, 배가 심하게 요동을 치자 패닉에 빠져 애꿎은 손돌을 향해 무도한 갑질을 자행했을 것이었다.     

    

손돌목을 더 가까이서 보고 싶었으나 언덕을 둘러친 철조망과 전망을 가로막은 감시초소가 있어 더 이상 다가갈 수는 없었다. 건너편에는 병인양요의 본진 ‘덕진진’과 ‘광성보’가 보였고, 이편 덕포진에도 당시의 포대가 여럿 남아 있었다. 손돌묘는 고려, 조선, 대한민국의 무능한 권력자들의 흔적이 모여 있는 곳이었던 것이다.


멀리서 바라본 손돌목

이곳이 요충지가 되었던 이유는 모두 달랐다. 천 년 전에는 해전에 약한 몽고군을 피해 도망을 가는 곳이었고, 백삼십 년 전에는 서구인들이 한양에 진입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이었으며, 오십년 전에는 휴전선을 긋기 가장 용이한 곳이었다.    


그러나 전쟁의 원인만 달랐을 뿐, 그 속의 무능한 권력자들의 행태는 언제나 똑같았다. 아무런 대책 없이 외세의 침략을 당한 그 순간에도 그들은 오직 자신들의 안위만을 위해 절치부심했고, 그 사이 순진한 백성들인 뱃사공, 의병들, 군인들이 엉뚱한 피를 흘리며 그 자리를 지켜야 했다.


더 어이없는 것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였다. 그들은 백성들의 억울한 죽음을 충성의 미담으로 둔갑시켜 무능을 덮는 수단이자 복종을 강요하는 이데올로기로 이용했고, 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영혼과 일상은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조용히, 변질되고, 파괴되어 왔다. 손돌의 죽음에서 우리가 새겨야 할 것은 그의 충심이 아니라 그의 죽음을 불러온 국가의 무능과 권력자들의 저열한 인격이었어야 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따지고보면 내 한 몸 건사하기 버거운 내가

밤잠 설치며 나라걱정을 하는 것도 희생이라면 희생.


그저 걷고 싶어 걷기 시작한 길.

무능한 권력의 민낯과 순진한 백성들의 희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는

연하천 철책길의 손돌묘 앞에서...

나는 이 길고 긴 철조망을 기필코 걷어내야 할 진짜 이유를 보았다.


P.S

이번 주말 평화누리길에서 펼쳐질 'DMZ 평화누리길 인간 띠 잇기' 행사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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