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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Chu May 02. 2019

어쩌면 가장 먼저 통일이 실현될 곳

평화누리길 2코스 - 조강철책길

조강철책길    


평화누리길 2코스인 ‘조강철책길’은 이름이 무색하게 강가도 아니고 철책도 없는 등산길이었다. 문수산성을 따라 올라갔다 반대편으로 하산하여 애기봉 입구로 나오는, 길 자체로 보면 ‘문수산성길’이라 할 산행코스이다.     

‘조강철책길’이라는 이름만 보고 1코스와 비슷한 평평한 철책길을 생각하고 왔다가 느닷없이 등산을 하게 되어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산길이라고는 들었으나 이정도로 본격적인 등산길일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누리길 후기 중 종종 ‘조강철책길’이라는 이름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아마 그분들도 미리 등산 장비나 마음의 준비 없이 하게 된 산행이 힘들었기 때문일 터, 이곳에 가실 분들은 꼭 등산 채비를 하셔야 함을 미리 알려드리고 싶다.      

     

500미터를 쉼없이 올라가면 산성이 나타난다  

이름이 아깝지 않은 길    


그런데 왜 이곳을 ‘문수산성길’이 아니고 ‘조강철책길’이라 이름 붙이게 되었을까? 궁금했다. 우선 눈에 띈 것은 ‘조강’이었다. 김포지역 평화누리길(염하천철책길, 조강철책길, 한강철책길)의 이름은 주변을 둘러싼 강과 철책길의 조합으로 되어 있다. 염하천은 강화도와 김포 사이를 강물처럼 흐르는 바닷물 길이고, 한강은 김포와 서울 사이의 강물이다. 그렇다면 ‘조강’은 어디?    

 

조강은 김포 북쪽과 북한 개풍군 사이를 흐르는 바다와 이어진 강이다. 이 물길이 내륙으로 들어가며 갈라져 임진강과 한강이 되므로 상류 중 상류, 강들의 조상(祖)이라 하여 조강(祖江)이다. 현재는 조강 자체가 남북의 분단선이고, 해안선 전체가 민간인의 출입통제 된 군사지역인지라 갈 수도, 알 수도 없게 된 곳. 누리길 또한 철책길에서 한 발 물러서서 문수산성을 따라 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이름으로 인해 그곳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물론, 산행 내내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보듯 조강을 조망할 수 있으므로 그 이름의 의미와 이유는 차고 넘친다 할 수 있다.  

    

지나온 염하천철책길과 강화도, 문수산성길이 한눈에 보인다.

자연 고지에 있는 최고의 통일전망대     

        

실제 걸어본 바, 비록 철책길이 아닌 산행길이긴 하나 그곳은 그 이름이 전혀 난데없다거나 아깝지 않은 곳이었다. 문수산성을 따라 올라가는 동안 강화도와 김포가 한 눈에 내려다보여 지나온 1코스를 되돌아보는 재미가 있었고, 마침내 강 건너로 강화도가 아닌 북녘 땅이 보이기 시작한 그 순간에는 그야말로 시야와 풍광이 한 번에 터져 감격과 감동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전망은 위로 올라갈수록 거듭해서 가깝고 넓어져 문수산 정상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개성과 송악산을 품은 개풍군이 코앞, 조강과 임진강을 따라 북녘의 황해도 연안과 남녘의 문산까지의 해안선이 한 눈에 들어오는 전망은 지금까지 가 본 통일전망 중 단연 최고였다.      


오두산이나 철원, 고성의 통일전망대의 경우 통제된 시설에서 군사시설 위주로 전망을 보게 되어 있지만, 문수산에서는 자연 고지에서 아무런 차단막 없이 북녘 땅을 직접 대면하는 맛이 있었다. 경계까지 치고 올라간 이편의 건물들과 고요하게 펼쳐진 저편의 산과 들이 극적인 대조를 이루는 가운데, 한 줄기 물길을 마주보고 있는 남북을 보고 있자니 분단의 아픔보다는 우리민족의 오랜 생활터전을 직접 목격하고 있다는 감회가 강했다.  

   

북녘 땅이 가장 가깝고, 장대하게 펼쳐진 ‘조강철책길’.

훗날 진짜 조강철책길이 열리거나 통일이 된다 해도 평화누리길에서 절대 빼거나 건너뛰지 말아야 할 멋진 길이었다.    


염하천과 서해 바다와 조강이 만나는 곳. 산 아래가 강령포, 조강 너머의 황해도 영정포는 북한군 본대의 집결지였다.


강령포와 김포반도 전투    


2코스에서 가장 이야기가 많은 곳이라면 민간인 출입통제 철책길 안쪽, 조강 연안의 포구 ‘강령포’와 ‘조강포’이다. 누리길에서 비껴난 통금지역이라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곳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개성이나 서울에서 강화도로 가는 배들의 정박지였고, 서해안으로 올라와 마포나루까지 들어가는 무역선들이 거쳐 가는 주요 무역항이었다고 한다.     


1코스에서 만난, 몽골군을 피해 강화도로 피난을 갔던 고려시대의 고종도 이곳에서 강화도 뱃사공 손돌의 배로 갈아탔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고, 그 외에도 많은 사람이 오가던 포구이니 만큼 재미있는 역사와 일화가 많다.   

  

산 아래 이어진 곳의 포구가 조강포인 듯. 가장 가까운 곳이 북한의 하조강리, 반도 안쪽으로 개성이 있고, 가장 먼 능선이 송악산이다. 

평화누리길이니 만큼 한국전쟁 때 이곳에서 어떤 전투가 벌어졌었는지 찾아보았더니, 역시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었다. 이름하여 ‘김포반도전투’.  강령포와 조강포는 북한군이 도하한 곳으로 문수산에서 본 전망 위에 당시의 전투과정이 마치 눈앞에서 보듯 생생하게 겹쳐진다. 당시의 급박했던 전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전쟁 발발 이전, 남북한 군사분계선은 38선이었고, 개성은 38선 이남이었다. 국군의 전시계획상으로는 개성이 1차 방어선이었고, 문산에 집결해 수도권을 방어하는 것이 2차 방어선이었을 뿐, 김포지역에 대한 별도의 방어계획은 없었다고 한다.    


반면 북한군은 김포를 핵심 전략지역으로 여겼다. 그들은 김포로 들어와 국군 주력부대보다 빠르게 서울로 진격하여 영등포를 점령, 국군의 퇴로를 차단하고 서울에서 국군을 포위해 괴멸시키고자 했다. 이렇게 해서 미군 참전을 막고 8월 15일 광복절에 전쟁을 끝내는 것이 애초 그들의 계획이었다.      


김포라인의 북한군은 제 6사단으로 사단장은 방호산 소장이었다. 제 6사단은 해방 전 중국 국공내전에 참전했던 팔로군 조선인부대였다. 그들은 당시의 부대 그대로 북한으로 귀환한 최정예부대였고, 사단장 방호산은 국공내전 이후 소련에서 군사학을 배우고 온 실전과 이론을 겸비한 북한군 최고의 전략가였다.     


조강이 임진강과 한강으로 갈라진다. 강줄기 끝 오른편이 문산이다.

개전과 동시에 북한군은 개성을 접수했다. 개성에 있던 국군은 6월 25일 하루도 못 넘기고 후퇴하여 어렵게 배를 구해 강을 건넜다. 전쟁 발발 직전 국군의 전시작전계획에 의하면, 개성의 군부대는 후퇴 시 문산으로 집결하여 수도를 방어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1사단 12연대의 일부 병력(2대대)은 상황이 너무 급박하여 일단 가까운 김포로 넘어오게 되었다.     


국군은 전쟁이 벌어진 후에야 이 지역의 군사적 중요성을 깨닫고, 급한 대로 개성에서 후퇴한 병력과 김포비행장 시설을 중심으로 주둔하고 있던 군부대와 군사학교, 그리고 서울에서 온 100여명의 지원병으로 이루어진 보국대대를 모아 전투사령부를 조직하게 했다. 


그들은 서로간의 통신이 거의 두절된 상태에서 버티고 버티며 조금씩 후퇴해 갔다. 결국 김포비행장을 내주긴 했으나, 그들은 서울의 주력부대가 한강을 건너 영등포에 집결하여 전선을 구축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 주었다는 면에서 큰 전공을 세웠다고 할 수 있다. ‘김포반도 전투’를 패했지만 승리한 전투라고 말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후 김포는 인천상륙작전과 1.4후퇴, 휴전협상을 거치며 수없이 공방을 벌인 대치선이 되었고, 그 대치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김포지구 전투사령부의 배치와 북한군 도하 경로. 2014년 10월 24일 '씨티21'기사 "김포지구 전투 재평가하고 기념해야" 에서


지난해 12월까지 남북공동수로조사를 마친 곳이 바로 이곳 조강 일대. 

민간선박의 자유로운 왕래를 위해 암초지점 등을 미리 파악했다고 하니 

막혀 있는 철책길과 포구들이 생각보다 빨리 열릴지도 모르겠다.

길이 열리기만 하면 새로운 역사유적이자 통일명소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조강은 평화를 통해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던 영토를 되찾을 수 있는 곳,

하나로 흐르는 물결 위에 배를 띄우는 것으로 가장 먼저 통일을 실현하게 될 것만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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