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폰사반의 새벽 탁발
종교의 힘은 기도에서 나온다. 신전도, 성직자도, 교리도, 그리고 신조차도 기도를 위해 존재한다고 나는 믿는다. 내가 지금 바라는 것이 결국 나 자신일 터. 여행길에서나 성전을 찾는 나의 기도는 언제나 물음으로 채워진다. 나는 무엇을 바라야 하는가? 기도를 하면 할수록 바람은 작고 소박한 것을 향하고, 그러면서 응답이 점점 더 명확해진다.
폭격으로 과거가 모두 사라진 그곳에서는 매일 새벽 집 앞으로 성자가 온다. 하루 중 가장 서늘한 새벽시간. 어린스님들이 맨발로 온 동네를 돌며 탁발을 한다. 새벽 5시 반. 사람들이 각자의 집 앞에 앉아 탁발을 기다린다. 정갈하게 차려입은 여인들이 갓 지은 밥을 들고 나와 집 앞을 치우고 작은 돗자리 위에 공손하게 앉아 있다. 앉은 자리가 법당이고, 길 위가 사원이다.
선선한 바람 속에 기도는 이미 시작되었다. 기다리는 표정 속에 초조함은 없다. 저 멀리 탁발스님들이 나타나면 자세를 다시 바로하고 찰밥 한줌을 손에 쥔다. 열 명 남짓한 스님들에게 일일이 공양을 하고, 한 그릇의 물을 따르며 마음을 씻는다. 그렇게 매일 아침 신성한 행렬을 따라 온 동네가 하나로 연결된다.
어린스님들은 탁발하는 내내 말을 하지 않는다. 점점 무거워지는 보시함을 메고 그저 묵묵히 걸으며 공양을 받아주고, 염불을 해준다. 단 한 명의 신자를 위해서도 기꺼이 멈춰 서서 보시를 받고 축원을 한다. 어린스님들의 탁발수행은 공부를 마칠 때까지 매일 아침 계속된다. 공부를 마칠 때쯤이면 마을사람들과 하나가 된다. 스님들에게 탁발은 중생들을 위한 봉사이자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원에 도착한 스님들은 그제야 나이에 걸 맞는 웃음을 짓는다. 온몸에 집에 돌아온 편안함이 퍼진다. 공양 받은 음식과 물건을 숙소에 내려놓고 나온 스님들은 사원에서의 일상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탁발을 앞에서 이끌던 스님 ‘산살라’가 오래도 따라온 나에게 말을 걸어주신다. ‘산살라’는 승리라는 뜻이라고 한다. 자기 자신을 상대로 한 승리가 곧 세상에 대한 승리이리라. 산살라 스님은 대웅전에 해당하는 사원을 가리키며 전쟁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베트남 전쟁으로 모든 것이 사라진 폰사반에서 파괴되지 않고 남겨진 모든 것들은 숭배의 대상이 될 자격이 있다.
대재앙을 이겨낸 사원 위로 태양이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어린스님이 주지스님을 모셔간다. 대재앙의 또 다른 생존자인 그에게 사택과 식당 사이는 너무도 멀다. 어린스님은 벌써 가서 소박한 기원이 담긴 아침밥 앞에 앉아 오늘의 탁발을 돌아보고 있을 것이다.
이미 하루가 다 가버린 것만 같다.
서늘하고 신성한 공기를 온몸에 품고 또 다시 시작된 뜨거운 하루 속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