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불안이를 다스리는 법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을 없애는 『걱정 상자』

by 원더풀

11년을 다닌 회사의 마지막 출근날. 나의 두 발은 어제와 같은 지하철 승강장 앞에 서 있었다. 의식하지 않아도 몸이 기억하는 매일 아침의 출근길이 이제는 마지막이라는 게 실감이 나질 않았다. 자주 다니던 백반집, 카페, 편의점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이미 개인 짐은 정리해 두었고, 간단한 인수인계 미팅, 메일함과 PC 정리, 직원들과 아쉬운 마음으로 인사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왔다.


시원섭섭했다. 아니, 사실 섭섭보다는 시원하고 후련한 느낌이 더 강했다. 한 조직에서 역할과 직무가 늘어나고, 늘 데드라인에 쫓기고, 노트북을 켜고 앉아 있는데도 숨이 차게 일해야 했던 환경에서 벗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몸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다.


때마침 남편으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자연인이 된 걸 축하해~”.

그랬다. 나는 이제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순수한 개인이 되었다.


퇴사 다음 날, 나는 노트에 하고 싶은 것, 가보고 싶은 곳, 읽고 싶은 책들을 줄줄이 적어 내려갔다. 회사-집-회사-집만 다니느라 미뤄왔던 일,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 새로운 취미 생활 등 리스트를 적기만 해도 설레고 신이 났다. 시간 부자로구나 싶었다.


남편은 쉬엄 쉬엄 하라고 했다. 너무 오바하지 말고 좀 늘어지게 쉬어도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다. 회사를 다닐 때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서 홈트를 하고, 아이들을 챙기고, 부지런히 바깥을 돌아다니면서 하루 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싶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을까.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문득, 새벽을 잠을 자다가도 문득, 남편과 대화 중에도 자꾸만 ‘불안함’이 엄습해왔다. ‘외벌이로 괜찮을까?’, ‘나 너무 놀고 있는 거 아닐까?’, ‘나는 이제 직업이 없는 사람이네?’, ‘내 경력은 여기가 끝인건가?’, ‘나의 넥스트 커리어는 어떻게 하지?’, ‘애들 학원은 잘 보낼 수 있을까?’,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을까?’, ‘남편이 일하다 아프면 어떡하지?’, ‘더 좋은 집으로 이사 갈 수 있을까?’ 등등등. 오만가지 걱정과 불안이 예고도 없이 치고 들어왔다.


바깥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나의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남편은 “아오~ 내 이럴 줄 알았어. 오버하지 말라니까. 나 같으면 하루종일 쇼파에 누워서 넷플릭스만 보겠다! 찬찬히 해. 찬찬히!”. 남편은 별 쓸데없는 걱정을 다하고 있다며 손바닥으로 내 머리 위를 헝클어뜨렸다.


'그러게. 이 세상에서 온갖 걱정거리를 심각하게 다 안고 있었네' 싶었다. 내가 느낀 ‘불안’에는 여러가지 생각과 감정이 뒤엉켜 있었다. ‘어떤 조직에 소속되지 않는게 낯설고 어색하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완벽하게 하고 싶어한다’, ‘내 콘텐츠를 사람들이 관심 없어하면 어떡하지’와 같은 초조함, 완벽주의, 자신감 부족 등이 뒤엉켜 어퍼컷처럼 훅-하고 나에게 치고 들어오니 여유를 가지지 못했고, 지금-여기의 순간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


나는 노트에 다시 기록을 시작했다. To-do 리스트를 작성하고, 이걸 내가 언제 어떻게 할거냐는 계획과 달성 여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의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기로 했다. 또, 지금 이 시기에 나에게 필요한 마인드셋과 행동을 Do & Don’t 형태로 정리했다. 예를 들면, Do 의 가이드는 ‘규칙적인 생활 하기’, ‘새로운 시도하기’, ‘생각보다 행동하기’, ‘현재를 즐기기’, ‘스스로에게 친절해지기’ 등이 있었고, Don’t 의 가이드는 ‘초조해하지 않기’, ‘비교하지 않기’, ‘스스로 후회하거나 자책하지 않기’ 등을 작성했다.


나 스스로와의 룰을 정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차분해졌다. 퇴사 후 나라는 사람을 잘 쓰기 위해서는 앞으로 해야할 일의 리스트를 매몰차게 쥐어줄 일이 아니었다. 퇴사 후유증을 다독여주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시간이 중요하다. 그리고 앞으로 예측 불가능한 삶의 여정을 꾸려나갈 새로운 마음 패키지를 잘 꾸리는 법도 말이다.




걱정을 없애는 여러가지 방법 『걱정상자』


빨간 도마뱀 ‘주주’는 걱정이 많은 친구다. “걱정이 많아서 걱정이고, 그러다 보면 또 걱정이고…”


웃음도 생기도 잃어버린 주주를 위해 호랑이 친구 ‘호’는 주주의 마음이 편해지는 방법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걱정이 얼마나 되는 지 알고 싶어 주주에게 걱정을 상자에 담아보라고 하고, 그러자 엄청난 높이로 주주의 걱정이 산더미처럼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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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알 수 없지만,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 걱정은 머리 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과도하고 막연한 걱정은 불안을 키우고 현재의 순간을 즐기지 못하게 만든다.


호랑이 호가 제안한 것처럼 무엇이 걱정인지 글로 써보고 객관화해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불안함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생각보다 별 것 아닌 걱정일수도 있고, 걱정의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볼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호랑이 호는 주주와 함께 걱정 상자를 없애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다. 걱정 상자를 커다란 새총에 걸어 언덕 위로 멀리 날려버리니, 나를 짖눌렀던 커다란 걱정거리가 이제는 작게 보인다.


걱정 상자를 예쁘게 색칠하고 꾸미니 다르게 보이기도 하고, 걱정 상자를 그냥 그대로 두고 딴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새가 와서 그 걱정 상자를 물고 날아가면서 걱정이 자연스럽게 사라져버린다. 그렇게 도마뱀 주주와 호랑이 호는 함께 걱정 상자를 없애는 법을 찾으며 걱정을 다루는 지혜를 얻게 된다.




1cm 마음 성장 | 내 안의 불안이를 다스리는 법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에서는 라일리라는 소녀의 성장과정에서 ‘불안이(Anxiety)’라는 새로운 감정 캐릭터가 등장한다. 평소 꿈꾸던 하키부의 선수 선발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동경하는 하키부 선배와 친해지고 싶은 욕구를 채우는 과정에서 ‘불안이’는 결정적인 성과를 낼 때도 있고, 오히려 상황을 그르치게 만드는 빌런이 되기도 한다.


사실 불안은 누구나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불안이’는 라일리가 위험하거나 불편한 상황에 처하지 않고, 늘 미래를 걱정하며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생존 본능인 불안은 늘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고 대안 그 다음의 대안까지 철저하게 준비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인다.


어찌보면 적정한 수준의 걱정과 불안은 우리를 준비하게 만들고, 더 나은 성과를 내게 만드는 기제가 된다. 내가 혹시 놓친 것은 없는지,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완성도를 높이는 꼼꼼함과 준비성을 발휘하게 만든다.


하지만, 지나친 불안은 오히려 공든 탑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긴장과 불안 때문에 중요한 시험이나 발표를 망친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도 과도한 불안이 오히려 라일리에게 독이 되면서 라일리는 극도의 긴장과 스트레스의 소용돌이에 갇히고 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떨고 있는 ‘불안이’이도 결국은 라일리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소중한 감정이었음을 깨닫게 되고, ‘기쁨이’, ‘슬픔이’ 등 다른 감정 캐릭터들이 ‘불안이’를 포용해주면서 라일리는 한층 성숙해진다.


불안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평생 함께할 감정이다. 불안이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두려움처럼 보일 때도 있고 죄책감, 예민함, 완벽주의 등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감정들이 느껴지면, 감정을 밀어내거나 회피하려 하지말고 ‘아, 내가 지금 불안하구나’ 하고, 있는 그대로 감정을 수용해주면 된다. 마치 나라는 호텔에 ‘불안이’라는 손님이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가만히 불안이의 이야기를 듣는다. 무엇이 걱정되는지, 내가 상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무엇인지.


불안을 직면했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내가 어떻게 어려운 상황을 극복했는지를 돌아본다. 생각보다 잘 버텼고, 어떻게든 대안을 찾았고, 좋은 사람들이 늘 곁에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다시 한번 되새기다 보면, 어느새 불안은 유유히 마음의 문 밖으로 나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