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

느리게 걷는 아이와 바쁜 엄마의 출근길 『엄마, 잠깐만!』

by 원더풀

“엄마, 나 응아 마려워”


오늘도 지각이다.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서, 미키 마우스 티셔츠가 맘에 안 들어서, 카봇 장난감을 어린이집에 꼭 가져가야 해서, 근데 어디 있는지 엄마는 당최 모르겠어서… 회사에 시시콜콜 이야기하기엔 하찮은 이유들로 출발이 늦어진다.


분명 아침 일찍 일어나 기분 좋게 아이들을 깨웠는데 어느 순간 “빨리 옷 입어! 얼른 양치해!”하며 목소리는 커지고 시간은 야속하게 흐른다. 첫째 아이의 로봇 교실 공구함, 둘째 아이의 어린이집 가방, 내 가방까지 겨우 둘러메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출발하기 전부터 이미 기진맥진. 머릿속에는 ‘회사에 또 뭐라고 말해야 하나.. 아휴 모르겠다..’ 반 포기 상태로 아이들과 함께 집을 나선다.


아파트 단지에서 어린이집으로 걸어가는 길, 둘째 아이가 갑자기 멈춰 서서 손을 끌어당기며 외친다. “엄마! 이것 좀 봐!”. 열 걸음도 못 걷고 멈춰 섰다. “여기, 개미 떼가 지나가고 있어~!” 삐뚤빼뚤 줄지어 가는 개미를 구경하고 싶겠지만 안돼 안돼. 난 그럴 시간이 없다.


겨우 아이를 꼬셔서 다시 종종걸음으로 어린이집을 향해 간다. 드디어 저기 목적지가 보인다. “엄마! 잠깐 멈춰봐!” 끼익- 또 브레이크가 걸렸다. 이번엔 회색 보도블록 틈 사이에 '나 좀 봐라~'하고 고개를 내민 민들레 꽃이다. 씨앗을 품은 하얀 민들레 갓털 뭉치가 보송보송한 솜사탕처럼 피어있다.


“엄마, 나 이거 불어 볼래!” 한층 흥분된 목소리다. 아이의 간절한 눈빛과 마주친다. (에이긍). “그래, 호~해봐” 나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아이가 씩 웃으며, 민들레 꽃을 잡고 힘껏 후~ 입바람을 분다. 민들레 홀씨가 살랑살랑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


그제야 산책로의 푸릇푸릇한 풀잎들이, 곱게 내린 아침 햇살이, 토끼 엉덩이 같은 하얀 구름이 내 눈에 들어온다. 잠깐 멈춤의 시간, 아이의 시선으로 지금 여기의 세상이 열리는 순간이다.




잠깐 멈춰야 보이는 것들『엄마, 잠깐만!』


그림책 표지를 보자마자, ‘이건 난데?’ 하고 집어 들었던 그림책, 『엄마, 잠깐만!』. 그림책 표지를 펼쳐보면 지나가는 길고양이에 시선이 팔린 아이와 그런 아이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바쁘게 걸어가는 엄마의 모습이 나온다. 엄마가 맨 가방에는 우산과 아이의 짐이 삐죽 삐져나와 있다.



시계와 핸드폰을 보며 걸음을 재촉하는 엄마와는 달리, 꼬마 아이는 “엄마, 잠깐만!”을 계속해서 외친다. 산책하는 강아지와 인사를 나누고 싶고, 웅장한 레미콘으로 일하는 공사장의 아저씨를 구경하고 싶다. 푸드 트럭의 아이스크림이 맛있어 보이고, 지하철역 앞 화단의 꽃이 예뻐 멈춰서 보고 싶다.


자꾸 브레이크가 걸릴 때마다 엄마는 점점 더 초조해진다. 별 것도 아닌 것에 시선이 팔려 멈춰서는 아이에게 짜증이 나는 건, 회사에 지각하는 워킹맘으로 눈치 보며 출근하고 싶지 않은 마음일 테다.


그러다 갑자기 후드득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고 때마침 도착한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엄마는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린다. 아이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엄마, 진짜 진짜로 잠깐만요!”를 간절하게 외친다.



대부분 이런 상황에서는 아이의 말을 싹둑 무시하고 아이를 들쳐 안은 채 지하철 안으로 재빠르게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휴~ 다행이다. 늦지 않겠어’ 하며 안도의 숨을 내쉴 테지만, 책 속의 엄마는 잠깐 멈춤을 선택한다. 그리고 아이가 가리킨 하늘에 아름답게 펼쳐진 쌍무지개를 잠시 음미한다. 아마도 꼬마 아이는 “거봐, 엄마~ 잠깐 멈추길 잘했지?”하며 엄마와의 이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에 남겼을 것이다.




1cm 마음 성장 | 아이의 속도로 걸어보기


5살짜리 아이에게는 모든 것들이 신기하고 궁금하다. 비가 오면 밟지 말라고 해도 물 웅덩이를 찰방찰방 밟아야 하고, 눈이 오면 감기 걸리니까 만지지 말라고 해도 소복이 쌓인 눈을 손으로 녹여본다. 벚꽃이 흩날릴 땐 떨어진 꽃송이를 엄마에게 선물하기도 하고, 가을에는 떨어진 낙엽 잎사귀에서 제일 크고 붉은 낙엽을 집으로 가지고 들어올 때도 있다.


아이들은 아주 작은 것들에 호기심을 가지고 관찰하는 것이 쉽고 자연스럽지만, 어른들은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늘 시간에 쫓기고, 야 할 일은 산더미이고, 머릿속에 생각은 가득하기에 '잠깐만'의 시간이 오히려 낯설고 어색할 수 있다.


그럴 땐 아이의 시선을 빌려보면 어떨까? 앞으로 질주하는 듯한 어른의 속도가 아니라 작은 걸음과 멈춤을 반복하는 아이의 속도로 주변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렇게 걷는 속도만 늦춰줘도 나의 일상을 천천히 구석구석 관찰하며 즐기는 ‘마이크로 산책(Micro walks)’이 가능해진다.


1분이라도 빨리 가고 싶은 출퇴근길에서, 집 근처의 아담한 산책로에서, 커피를 사러 가는 작은 골목길 사이에서 지나쳤던 것들을 발견해 보자. 언제부터 거기 있었나 싶은 이름 모를 꽃과 들풀들, 조금씩 변하는 하늘의 색에서 어제와 달라진 오늘의 행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