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학교에서 안 좋은 걸 배우는 게 아닐까?

학교 선생님 딸이지만 (1)

by yoga and story


참 신기했어요. 어느 지역, 어느 학교, 어느 반에 가든 있었거든요. 계급과 폭력 말이에요.


처음에는 제가 다니는 그 학교의 특정 몇몇 학우들이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제일 처음 기억이 초등학교 3학년 때인데. 같은 반 친구를 발로 차요. 그리고 낄낄거려요. 처음엔 한 두 명만 그런가 싶었는데, 나중에는 다른 아이들도 달라붙어서 같이 때리고, 차고. 한 친구가 두들겨 맞고 있는데, 그걸 보며 웃어요. 웃지 않는 친구들은 모른 체하죠. 못 본 건지, 원래 별일 아니어서 그런 건지.


때리는 애들이 나쁜 놈들인가.. 했는데. 대체로 때리는 애들이,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부류에 속했어요. 맞는 애들보다 때리는 애들이 학급에서 인기가 있었죠. 얼굴이 잘생기거나 체격이 좋거나 입담이 좋거나. 물론 잘생기고 입담 좋아도 폭력 쓰지 않는 친구들도 분명 있었구요.


상처받는 이들을 저렇게 내버려둔다고? 엄청난 큰일 아닌가? 싶었는데 그냥 일상적이었어요.


선생님께서 제지를 하시겠지, 했는데 오히려 그들과 친할 때도 많았어요. 그들을 대놓고 이뻐하시는 건 아니지만, 그들과 장난도 주고받으면서 화기애애한.. 그런...


폭력과 방관, 어쩌면 동조. 그때는 그런 표현도 생각나지 않았어요. 그냥 누가 누굴 때리고, 주변에서도 뭐라고 안 하고, 때린 사람이 오히려 인기 있고 잘 나가고. 확하게 설명은 못하겠는데, 불편하고 불쾌하고 무서운 느낌.


오히려, 다들 아무렇지 않아 하는데, 나만 이상하게 생각하나 싶어서. 저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데 급급했던 것 같아요.


남학생들 사이에 폭력이 있었다면, 여학생들 사이에는 무리 짓기, 그리고 몇 아이를 특이하고 이상한 애 취급하는 문화가 있었요.


저는, 그 특이하고 이상한 애로 몰리는 친구를 가장 늦게 알아차리는 편이었어요. 다들 그 애를 기피하고, 욕하는데 저는 그 애를 좋게 보고 있다가 나중에서야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았죠.


한 번은 그런 적이 있어요. 교에선 이름 순으로 번호를 매기잖아요. 성이 같아서 비슷한 번호대였던 한 친구가 있었어요. 편의상 그 친구를 A라고 칭할게요. 첫 학기에 번호순으로 앉았고, A와 근처에 앉게 됐어요. 퍽 말도 잘 통했죠. 남 욕 한 번 하지 않는, 마음이 넓고 배려심 있는 친구였어요. 그래서인지 A와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했어요.


점심시간이었어요. 다른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던 중, 한 친구가 급식실에 가자고 했든요. 그때 혼자 동떨어져 있는 A가 보였죠. 래서 제가 “A도 같이 가자”라고 했는데, 다들 못 들은 체하고 그냥 나가버리는 거예요..

또 한 번은 이동 수업시간이었어요. 두 명씩 앉아야 하는데, A의 옆자리가 비어 있었어요. 마지막에 온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았어야 할 텐데, 굳이 책상을 떼서 따로 앉더라구요.

일련의 상황들, 이건 뭘까 생각해봤어요. 가끔은 내가 A를 챙기고, A의 옆자리에 앉곤 했어요. 착

각일 수도 있겠지만, 그럴 때면 친구들이 내 곁에도 오지 않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그냥.. 우연인 걸까?...

“쟤랑은 쪽팔려서 못 다니겠어.”


함께 어울리던 한 친구의 말이, 제 의문에 종지부를 찍었어요. '직접적인 괴롭힘은 없었지만, A와 어울리고 싶지 않은 게 맞았구나.... A에게 무슨 문제가 있나?' 도통 그 답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조금은 특이한 외모 때문이라는 걸 훗날 알게 되었어요. 다른 친구들이 A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면 외모 말고도 A의 취향, 성격 등 다른 것들도 문제로 삼곤했지만요. 저는 A와 다른 친구들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부터 혼란스러웠어요.

아슬아슬한 줄타기.

안간힘을 쓰고 있던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교무실로 절 소환했어요.

“A랑 요즘 무슨 일 있니?”
"아니요 딱히 싸우진 않았는데."
“A네 어머님이 전화 오셨어. 중학교 때 왕따를 당해서 걱정 많이 하셨대. 고등학교 와서 너랑 친해져서 너무 좋았대. 그런데 요즘은 아닌 것 같다고.”
"저도 노력했는데..."
“에휴. 리더십 없니? 리더십 좀 발휘해 봐 네가.”


리더십은커녕, 용기도 없었어요 전. 오히려 다수의 친구들에게 나까지 부정당할까 두려움이 앞섰죠.


결국,

저는 A의 손을 놓았고, 다수의 편으로 갔어요.


A와 눈이 마주칠 때면, 시선을 축 내릴 뿐이었죠.


다수에 휩쓸려가는 스스로가 부끄러웠어요. 그러면서도 이런 죄책감을 느끼게 한 A의 존재가 기도 했죠. A는 원망스럽고, A를 피하는 친구들은 나빠 보이고, 나는 비겁하고 치졸하고 못났고.


학창 시절의 저는, 내 얘기를 거의 하지 않았어요. 내 이야기가 다수의 생각과 다를까 봐 무서웠죠. 늘 머리를 굴렸어요.


'어떤 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고, 욕먹지 않을 만한 답변일까.'


그러다 보니 말이 적은, 조용한 아이였죠.


제가 이사 때문에 전학을 두 번 다녔거든요. 한 번은 아예 지역을 옮겼어요.

그런데 지역이 바뀌어도, 학교와 반이 바뀌어도, 런 문화는 늘, 같았어요.


아, 이제는 학교라는 게 문제구나 싶었어요. 이걸 고치지 않고 그대로 가니까 어른 세상도 그런 거 아닐까? 세상이 원래 그렇다고 받아들이기엔, 정치인들이 늘 "세상을 바꾸겠습니다"라고 외치잖아요. 그럼 세상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는 거고, 바꿔야 한다는 건데. 바꿔야 할 세상인 지금의 상태가... 학교에서부터 방치되고, 오히려 양산되고 있어요. 세상 많은 문제들의 뿌리가 바로 학교에서 자라고 있다구요!


언젠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른들이 바꾸려는 그것들, 학교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어요. 바로 여기부터 고쳐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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