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욕구를 충족해주지 못하는 학교

학교 선생님 딸이지만 (2)

by yoga and story

백화점은커녕 대형마트 하나 없는 소도시에서 자랐어요. 게다가 공무원 아버지를 둔, 딸 셋 집안.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제주도를 가기 전까진 비행기 한 번 타본 적 없었죠.


동네 친구들과 메뚜기나 잠자리를 잡고, 소독차 따라다니고, 겨울이면 쌀포대로 썰매를 탔어요. 숨바꼭질, 땅따먹기, 고무줄놀이도 자주 즐겼죠. 지금 생각하면 퍽 낭만 있는 추억이지만, 그땐 그게 그렇게 우물 안 개구리 같더라구요. 그 동네에서, 그렇게, 똑같이 내 인생이 흘러가버릴까 봐 두려웠어요. 바깥세상이 너무 궁금했죠.


하지만,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방법을 도저히 모르겠더라구요. 우리 집 형편에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고, 하다못해 서울 사는 사람 한번 보기도 어려웠던 걸요. 어쩌다 타지에서 백화점이라도 한번 가보면, 그렇게 넓고 새로워 보일 수가 없었죠.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저는 TV쟁이였어요. 현실과 다른 곳을 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으니까요. 아직도 그 모습이 생생해요. 유치원생일 때 밥을 먹으면서 '요정컴미'를 보고 있던 때예요. 엄마가, 밥 먹으면서도 TV를 보냐고 혼을 내셨어요. 그러고는 제가 TV를 너무 많이 본다며, 그 자리에서 TV를 밖에 내다 버리신 거 있죠. 그때 세상세상 서럽게 오열하던 어린 저의 모습이 아른거리네요. 그 정도로 TV를 좋아했어요.


TV를 못 봐서 얼마나 슬펐던지... 그렇게 학교에서 친구들이 TV 이야기를 해도, 부러워만 하며 몇 년을 지냈어요. 그러다가 집에 컴퓨터라는 게 생기고, 드라마 '무료 다시보기' 서비스라는 걸 알게 되자 뛸 듯이 기뻤죠. 당시엔 버퍼링이 느려서 참 답답했지만요. 당시 유일하게 무료 다시보기 서비스를 제공하던 KBS의 아침, 일일, 주말 드라마와 EBS 프로그램까지 모두 섭렵했어요. EBS의 '돌아온 그린맨, '춤추는 소녀 와와' 정말 재밌게 봤어요.


그러면서도 TV 속 세상과 현실과의 괴리를 크게 느꼈나 봐요. 내가 직접 더 넓은 세상에 나가고 싶다는 열망을 품었어요. 그러던 차에,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또 다른 걸 접했죠. 2000년대 초중반에 유행하던 '성공 자서전'이요.


환상적인 세상이었어요. 드라마 속 세계보다 더 짜릿하고, 낭만 있고, 멋있어요. 심지어 실제라잖아요. 그들 또한, 자신이 그렇게 될 줄 몰랐대요. 평범했고, 어려웠고, 그럼에도 신기하게 꿈이 이루어졌다고. 나도 할 수 있다고 속삭이는 것 같았어요. 과연 될까 싶었고, 이 좁은 세상이 너무도 익숙해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지만. 너무도 열망해서, 몸이 절로 움직이더군요.


성공 자서전들을 참 많이도 찾아 읽었지만,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줬던 건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 없다>, <공부 9단 오기 10단>이라는 책이에요.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 없다> 저자의 삶을 따라하기 시작했어요. 먼저, 하교 후 매일 도서관에 가서 밤늦게까지 공부하기였어요. 초등학교 5학년짜리가 매일 도서관에 출석 도장을 찍었어요. 얼마나 열심히 다녔던지, 한번은 보건소에 예방주사를 맞으러 갔는데 어떤 어른이 저를 보고 웃는 거예요. 그러면서 "00 도서관 다니죠?" 물었어요. 어떻게 아시냐고 되물었더니. "어린 친구가 정말 열심히 해서요." 하는 거 있죠.


위의 두 책의 저자들은 모두 열심히 공부해서 전교 1등을 하고, 특목고에 입학해 명문대에 진학했어요. 열심히 공부하는 것까지는 따라하고 있으니, 이제 전교 1등을 해보자는 목표를 세웠죠.


그전까지는, 모범생에 속하지만 공부를 썩 잘하지는 않는 아이였어요. 학교 과제는 결코 빼먹지 않았지만, 딱 그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가, 영어를 배운다는 거예요. 영어 교과서를 봤는데, 영어가 문장으로 써있는 거 있죠? 저는 영어 문장이나 단어는커녕 아직 알파벳도 다 못 외웠는데.. 부모님이 음악 말고는 사교육을 안 시키셨거든요. 너무너무 무서웠어요.


'학교 생활을 성실히 하는데도, 왜 나는 뒤처질까 봐 두려움을 느껴야 하지?'


그때부터 학교 교육이 뭔가 문제라고 느꼈어요. 학교 수업 외 다른 공부를 안 해온 친구들은 그 뒤로도 쭉 영어 수업을 따라가기 어렵겠더라구요. 이걸 그냥 방치한다는 게 참 이상했죠. 불평등이 문제라고들 떠들잖아요. 그런데 그 불평등의 씨앗이 계속 심어지고 있는데, 내버려 둔다는 게요.


저 또한 전교 1등은 둘째 치고, 학교 공부조차 못 따라갈까 봐 두려움이 엄습했죠. 혼자서 아등바등 책이랑 카세트 테이프로 영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나는 조급한데 아무것도 시켜주지 않는 부모님이 원망스럽기도 했었어요.


'과연 전교 1등을 할 수 있을까?' 믿지 못했어요. 그저 학교에서 뒤처지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싶었죠.


그런데 결코 나에게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일어났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거의 매 시험에 올백을 맞았어요. 그리고 수석 졸업을 했어요. 꿈만 같았죠. 내 인생에 전교 1등이란 없을 줄 알았는데, 매번 올백이라니..


하지만 만족할 틈은 없었죠. 본격적인 건 중학교부터 시작이니까요. 더 많은 친구들이 모이는 중학교. 거기서는 전교 1등을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번에도 열망이 커서 몸이 절로 움직였죠.


신기하게도, 중학교 첫 시험도 전교 1등을 한 거 있죠. 모두가 저에게 박수를 보내줬어요. 전교 2등 친구가 제 얼굴 좀 보고 싶다고 반으로 찾아왔던 적도 있었네요. 선생님은 대놓고 저를 편애하셔서, 친구들에게 민망할 정도였죠.


<공부 9단 오기 10단>의 저자가 첫 전교 1등을 했을 때의 대목이 영화 같았는데. 그 희열의 순간이 나에게도 온 거예요. 믿기지 않았어요. 환상 같았어요.


이제 다음 단계는 특목고 입학이었어요. 그런데 웬걸, 작은 도시에서 전교 1등 해봤자 책의 저자들이 간 유명 특목고에 가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였어요. 고등학교, 대학교 수준의 선행학습도 해야 하지, 영어도 원어민 수준으로 해야 한다지. 그 작은 곳에서는 도저히 특목고 준비가 어려울 듯했어요.


학교 공부로는 도저히 깊은 내용의 공부가 어렵다고 느껴서 이것저것 찾다 보니 '인터넷 강의'라는 걸 알게 됐어요. 엄청난 보물을 발견한 듯했죠. 학교 수업으론 이해할 수 없던 것들을 빠르고, 쉽고, 깊게 설명해줬어요. 이걸 알지 못하는 친구들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훨씬 깊이 있고 탄탄한 인터넷 강의를 알고 나니 학교 수업이 너무 부실하게 느껴졌죠. 그런데 결국 하루의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잖아요. 이렇게 시간을 낭비해야 하나 싶었어요. 공부하고 싶은 열정은 한가득한데, 학교 수업 듣는 시간들이 아까웠죠.


작은 도시라 그런 걸까. 큰 도시로 가면 학교 수업이 좀 더 나을까 기대했어요. 서울까진 어렵겠고, <공부 9단 오기 10단>의 저자가 있는 대전으로 이사를 가자고 가족들을 설득했죠.


그렇게 대전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수업이 훨 낫긴 했어요. 지역별로도 이렇게 수업의 격차가 큰데, 교육 불평등이 정말 심각하구나 느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배움에 대한 제 욕구를 채워주기엔 역부족이었죠. 언젠가부터 이해를 쏙쏙 시켜주는 스타강사의 인터넷 강의를 맹신하고, 학교 수업은 어차피 질이 낮다면서 무시하기 시작했어요. 이 시간에 실력 있는 강사의 수업을 듣는 게 훨 나을 텐데, 학교가 오히려 제 배움의 욕구를 막는 것 같았죠.


학교 수업을 불신하다 보니, 오히려 점점 내신도 낮아지고, 공부 의욕도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선행학습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저는, 성공 자서전의 주인공들이 간 특목고는 가지 못 했어요. 그리고 지역 제한이 생기는 바람에, 군말 없이 제가 사는 대전에 있는 외고에 입학하게 되었죠.


외고 수업은 다르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별다를 건 없었어요. 공립 외고여서 그럴지도 모르지만요. 여전히 인터넷 강의에 비해 효율성이 몇배는 떨어지는 수업들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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