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첫 작법 수업이 끝난 뒤 어떤 수강생이 내뱉은 말. 그 또한 그랬구나. 나는 웅장은 아니었지만, 설레고 벅찼다. 선생님이 저술한 책을 수업 전에 미리 좀 읽어봤다. 꼭 새기고 싶은 대목들이 많아 포스트잇으로 얼마나 표시를 했던지. 수업도 기대 이상이었다.
선생님 曰 "생각나는 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쓰는 것이다."
나는 드라마를 쓰고 싶다고 하면서도, 좀처럼 책상 앞에 앉아 드라마를 쓰는 일이 드물었다. 드라마는커녕 의무적으로 글을 써야 할 일이 생기면 최선을 다해 미루기 일쑤. '글 쓰는 일'이 내 취미도, 흥미도, 꿈도 아니었다. 오히려 좀이 쑤시고, 몸이 배배꼬이는 일. 고통에 가까웠다. 혼을 담아 공들여 써본 적도, 내 글에 강한 애착을 갖은 적도 없었다.
누군가는 자신이 쓴 글은, 자기 자신과도 같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글에 대해 누군가 혹평을 하면 자신을 난도질하는 것 같다고.
그에 비해 나는, 글을 별개의 것으로 취급했다. 내 글을 발표해야 하는 수업에도 별다른 열정이 없었다. 분량을 채워내는 데 급급했을 뿐. 당시에는 생각지도 못했다. 언젠가 내가 드라마를 쓰고 싶어질 거라곤.
'글 쓰는 행위 자체는 너무, 너무 싫어!'
그러면서 나는 왜, 드라마를 쓰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을까.
1) 오지랖 넓은 호기심이 허용되는 일
관심 있는 분야에 기웃거리다 보면, 주변에서 묻곤 했다.
"그래서 너 그쪽으로 가려구?"
'흠 그건 모르겠어. 지금은 그냥 이게 나를 끌어당기고 있어. 궁금한데...'
그리고 신기하게도, 문을 두드리면 대체로 문이 열렸다. 찾으면 길이 있었다.
(But, 한정된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시험이나 지위 획득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타인의 마음을 바꾸려는 데도 통하지 않는다. 순전히 내적 호기심을 충족하는 부분에만 해당되는 것. 경험상.)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또 다른 문이 있다.
그 문 또한 열게 된다.
그럼 가족은 당황한다.
"너 저번에는 A를 하더니, 왜 B를 하고 있는 거야?"
A와 B가 관련이 없는 게 아닌데... A를 하다 보니 B로 연결된 건데..
"너도 이제 하나를 잡아서 꾸준히 해야지. 안 그러면 사회에서 뭘 할 수 있겠니"
너무나도 공감... 나도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봐 두렵다. 그런 마음에 나도 뭐하나 진득하게 준비를 해보려고 하기도 했는데...............(중략)............... 그 수많은 시행착오를 다 설명하자니 아득하고... 결론은, 그 준비 또한, 다른 탐색으로 가기 위한 디딤돌이 되었다는 것...
나도 나를 책망하고, 자책하고, 바꾸려고도 해보고, 수없이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 봤지만.
숨은 쉬고 살아야겠어서.
결국, 언제 어디에 가있을지 모르는 호기심이 허용되는 일을 찾은 게 드라마 작가였다.
버트런드 러셀는 작가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 이러한 조언을 했다고 한다.
“(책상머리 붙들고 원고부터 쓰려 들지 말고) 세상으로 나가라. 해적도 되어보고, 보르네오의 왕도 되어보고, 소련의 노동자도 되어보라.”
작가가 되고 싶어서 여기저기 기웃거린 건 아니었지만, 작가라면 그래도 되나보구나!
2) 희로애락을 인정할 수 있는 일
내가
기분이 좋고
예쁜 마음만 품고
슬프지 않고
상식적이고
자랑스럽기만을 바란다면
나를 사랑할 수가 없다.
우울하고, 슬프고, 절망하고, 질투하고, 좌절하고... 살아있는 한 필연이며
그것 또한 나의 일부이다.
희로애락, 사단칠정으로도 다 설명이 안 되는
그 수많은 것들을 인정할 수 있는 일.
그리고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관심을 갖아도 되는 일.
그런 일이 드라마 작가라고 생각했다.
3) 발견한 것들을 정리하고 싶다는 욕구
연관성 없어 보이는 것들이지만, 나름의 연결고리가 있었달까.
재료를 모아왔다고 생각한다. 제3자가 보기엔 근거가 없겠지만, 나 혼자는 알고 있다.
단순히 과거에 지나간 경험으로만 두고 싶지 않다. 산발적으로 흩어진 재료로만 끝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이 재료들로 세계를 구축하고 싶다. 그런데 그 세계의 원리를 정하고, 도면을 그리고, 만들어나가는 방법이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