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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ga and story Mar 21. 2021

"학교 선생님 딸이 학교를 그만둔다고?"

학교 선생님 딸이지만 (4)


욕망, 왜 사는지에 대한 의문을 잠재워요.


명문학교나 타인의 인정이라는 욕망을 포기하고 나니까

'왜 사는지'만 질문하는 거 있죠.


왜 살아야 할까

왜 학교에 가야 할까

과제를 해야 할까

왜 시험 잘 봐야 할까


하지만

사는지는 알 수가 없었죠.


그냥 살아있으니까 산다.

아직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마음은 안 든다.


그럼, 살아있는 동안

시간을 때워야 하는데

어떻게 때우나.


어차피 왜 사는지는 알 수 없고

태어난 김에 사는 건데

살아있으니까 사는 건데


답도 없는 질문이나 머릿속에 품으면서 사는 건

내가 고통스럽고.


아, 그럼

뭐라도 하고 싶은 욕망이 필요했어요.


욕망이 생기면

사는지에 대한 고민은 뒷전이 되니까. 잊어둘 수 있으니까.




지금까지의 나에게 가장 큰 욕망을 불어넣었던 건

누군가의 자서전이었으니까,

이번에도 자서전을 찾기 시작했죠.


이번에는 <공부는 내게 희망의 끝이었다>라는 책이었어요. 나랑 같은 대전에 살던 사람이었고, 나처럼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 못했대요. 그런데 대전 한밭대학교 도서관에서 독학 삼수를 해서 서울대에 합격했다는 거 있죠?


제가 의욕이 없었던 건, 어쩌면 가능성이 안 보여서였나 봐요.


내가 지금 이렇게 학교 수업 진도도 못 따라가고 있고, 성적도 바닥이지만. 이 사람처럼 도서관에 매일 가서 독학하면 공부를 따라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약간의 희망이 보일 듯하니까, 약간의, 약간의 의욕이 생겼어요.


그래서 부모님께 자퇴해서 독학하면 어떠냐고... 넌지시 말씀을 드려봤죠. 사실 그 어렴풋한 생각을 실현할 수 있을 거라곤 믿지 못했어요. 평범하고 무난하게만 보였던 내 인생에 자퇴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선생님께 말씀드릴 용기도 없었어요. 다수와 다른 길을 가는 게 무섭기도 했구요.


중학교 도덕 선생님이시던 아빠는 별말씀이 없으셨어요. 저의 학업에 별 관심이 없으시지만, 늘 실리를 추구하던 엄마는 그것도 괜찮다고 하셨구요. 고등학교 졸업장만 따고 대학도 잘 못 가느니, 차라리 자퇴해도 대학 잘 가는 게 낫다는 현실적인 판단이셨. 하지만, 저도 확신은 없는 상태였으니, 그냥 좀 더 고민해 보자.. 라고 대화가 끝났어요.




그런데

며칠 뒤 학교에서 선생님이 절 교무실로 부르시는 거예요. 저보고 자퇴하고 싶냐고, 아빠가 한걱정하시면서 전화를 하셨다는 거예요.


"아버지도 교직에 계신다며. 근데 선생님 딸이 학교를 그만둔다고? 그럼 아버지는 뭐가 되니?"


헐... 아니 나는 선생님께 자퇴라는 말조차 꺼낼 용기도 없었는데, 아빠가 이렇게 일을 저질러 놓으시면...


저는 하는 수 없이 선생님께 그간의 생각들을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고등학교 교사를 몇 년을 했는데, 너 같은 애 없었겠니. 내신 안 좋다고 대학 잘 가려고 자퇴한 애들 수두룩했지. 그런데 수십 년 간 그런 애들 중에 대학 잘 간 애들 거의 못 봤어. 기껏해야 00대 정도."


대학.. 물론 부족한 공부를 보충하고 이제라도 다시 명문대를 목표로 해보자는 의욕이 생겨 자퇴를 떠올리긴 했지만. 대학 말고도, 어려서부터 쌓아온 학교에 대한 불신과 의문 또한 자퇴의 이유였던 터라, 대학저에게는 큰 설득이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또 답했죠. 대학 문제뿐 아니라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학교를 다니는 것보다, 학교를 안 다니는 게 제 인생에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저는 선생님이, 제가 학교를 다니고 싶어지게 납득시키고 설득시켜주실 줄 알았어요. 학교 밖은, 온전히 제 책임이잖아요. 그게 무서웠어요. 학교에서 멍 때리면서 시간을 흘려보내긴 하지만, 굳이 모험보단 편할 테니.


다만, 알 수 없는 것에 휩쓸려가는 꼭두각시가 되어가는 것 같고, 수업은 비효율적이고, 심지어 학교 공부도 못 따라가고 있는 내가. 과연 학교를 다니는 게  더 나을까,  인생 전체적으로 봤을 때? 학교 안이 당장은 더 아늑한 듯하지만, 학교를 안 다니는 게 인생엔 더 이롭지 않을까 하는, 매우 어렴풋한 직감이었으니까요. 이게 어디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혼자만의 직감이어서 긴가민가 했죠.


이런 의문을 선생님께서 풀어주실 거라 기대했어요. 가 학교를 녀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해주실 줄 알았어요. 그런데,


"우리 반에 너 말고도 자퇴하겠다고 찾아온 애들이 5명 더 있었어. 다 설득해서 돌려보냈고, 이제 잘 다니고 있어. 근데 너는 안 되겠다. 네 맘대로 해. 자퇴 해."


헐... 이거 무엇? 나 자퇴하고 싶은 마음이 그렇게까지 큰 건 아니었는데. 나도 무서운데. 이거 뭐야. 설마 진짜 하라는 거야?


두려우면서도 은근...

정말로, 궁금해지기도 했어요.


'학교를 그만두면 어떻게 될까'


그놈의 궁금증...


정말 자퇴를 하는 건지 뭔지 긴가민가 한 상태로 지내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또 교무실로 부르시더라구요. 자퇴서 작성이었나... 와.. 사실 정말, 긴가민가, 은근 궁금은 한데, 뭐지, 진짜 하나, 하는 심정으로. 어쩌다 보니 자퇴를 했어요.




자퇴하는 날에 저에게 편지 써줬던 친구들, 그리구 선물 한가득 안겨준 마니또 언니가 생각나요. 버스 정류장에서 편지를 읽으면서 한참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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