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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ga and story Mar 26. 2021

도서관 사람들이 저에게 말을 걸어요

자퇴 후 펼쳐진 삶 (1)

자퇴 후 계획은 <공부는 내게 희망의 끈이었다>를 1년 동안 따라하기였어요. 책의 저자는 도서관에서 숙식하며 독학 삼수를 해서 대학 입시에 성공을 했거든요. 24시간 개방하는 도서관이었던 덕에, 저도 밤새는 걸 따라 해보기도 할까 했는데...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더라구요. 혼자 넓은 도서관에서 밤을 새우려니 너무 무서웠죠. 도서관에서 숙식은 어려울 듯하니, 대신 아침 일찍 도서관에 출근(?)하는 것으로 스스로 합의를 봤습니다.


낭만적이었어요. MP3로 음악을 들으면서 새벽 버스를 타는 거요. 도서관은 집에서 버스로 30분 이상 걸리는 곳이었거든요. 책의 저자가 갔던 도서관에서 독학 1년 수험생활을 그대로 따라 해 보고 싶기도 했고, 아예 먼 곳으로 가야 집에 가고 싶은 욕구를 참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한 두 달은 정말 파라다이스였어요. 그 도서관이 탁 트인 구조라 참 시원했고, 앞마당에 꽃들도 아름다웠어요. 디즈니 월드에 온 것 같았죠. 이제 새로 시작하는 도전에 설렘과 열정도 한가득이었거든요. 


자퇴를 고민할 때, 제가 외롭지 않을까 많이들 걱정했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자퇴도 선뜻 할 수 있었겠죠. 혼자 공부해도 외롭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어요. 나만의 확신이란 참 믿을 게 못되더군요.


내가 원하는 꿈을 이루는 데 급급했고, 그게 가장 중요했고, 그 외의 감정이나 느낌에는 무딘 편이었던 것 같아요. 눈물도 별로 없었고. 세상의 많은 드라마나 노래는 누가 지어낸 것들인 줄 알았어요. 저렇게까지 과한 생각, 감정, 느낌들을 겪을 일이 있을까, 하면서 낯설었죠.


자퇴 직후에도 마침 겨울방학 기간이라, 같은 학교 친구도 함께 와서 공부를 했어요. 그래서 그때도 외로울 틈이 없었죠. 그러다가 개학하고 더 이상 친구가 도서관에 오지 않게 됐어요. 친구의 빈자리가 살짝 느껴지긴 했는데, 할 일이 많았으니 마음을 다잡았죠. 고등학교 1학년 공부를 딴 생각(?) 하느라 통으로 날렸으니, 따라잡으려면 열심히 해야 했죠.


혼자 도서관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부를 하다 보니, 그 시간 동안 말을 한 마디도 안 한 적도 있었어요. 학창 시절 내내 말이 적은 편이었는데. 결핍은 욕망을 낳나 봐요. 말이 하고 싶어진 거 있죠. 그런데 정숙해야 할 도서관에서 누구랑 말을 하겠어요. 살면서 처음 느껴 본, 약간의 외로움을 꾸역꾸역 눌렀어요. 이뤄야 할 목표가 있으니까.


그럼에도 종종 심심하고, 말하고 싶고, 외로웠어요.


그런데 가끔씩,

제 책상에 먹을거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한 번은 캔커피.

"꼬마 아가씨! 매일 일찍 와서 열심히 하네. 여러 보이는데 몇 살이야? 학교는 안 가? 아저씨는 소방 공무원인데 승진 시험 공부하고 있어."



또 한 번은 초콜릿.

"저기 친구. 이거 먹으면서 해요. 혼자 공부하는 거 힘들지는 않아요? 나는 서른 중반인데 공무원 시험 준비하고 있어요. 가끔 혼자 밥 먹기 심심하면 말해요. 편하게 언니라고 부르구요."



그리고 또 사탕.

"읽고 계신 그 책, 제가 구경 좀 해도 될까요?"



몇번은 과자들 잔뜩.

"안녕! 내 가방 좀 잠깐 맡아줄 수 있어? 우리 같은 학교 다녔다던데? 다른 친구한테 어쩌다가 들었어. 자퇴하고 혼자 공부한다며. 멋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앉다 보니 제가 눈에 띄었나 봐요.


세상이 이리도 따뜻하구나.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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