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회, 『아무튼, 여름』(제철소, 2020)
사실 나는 싫어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별로 없다. 그래서 평소 무언가에 대해 '좋아 죽겠다'고 표현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냥 신기하고, 시간과 공을 들여 무언가를 덕질하는 이들이 대단해 보인다. (167)
나는 여름을 싫어한다.
더위를 견딜 수 있는 힘이 내겐 없다. 몸에 열이 많아서 그런가? 찬바람 부는 겨울이 좋다. 남들보다 외투를 늦게 꺼내고, 작년에는 특히 패딩을 입는 둥 마는 둥 했다. 기모 스타킹을 신는 일은 영하 10도에나 겨우, 추위 그 자체를 즐기는 편이라고 말하면 될까. 그런데 그걸 어떻게 즐길 수 있냐고?
- 아 왜 그런 거 있잖아, 한겨울 외출하고 돌아와 잘 달궈진 전기장판에 바로 언 발을 넣어봤니? 진짜 저릿저릿하거든, 따끔따끔, 난 그 느낌이 좋아.
- ? 너 혹시… (이하 생략)
겨울이 내게 선사하는 모든 감각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나을 뻔 했다. 아무튼, 남들 가을 탄다 할 때 창문에 기대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계절을 위해 손을 모은다. 빼도 박도 못하게 겨울이라면 첫눈을 기다린다. 눈이 쌓이고 하얗게 지워진 세상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오래오래 생각한다.
"여름이 좋아, 겨울이 좋아?"하고 물으면 고민 없이 "겨울"이라 대답할 수 있고, "여름이니까 겨울이라고 하는 거지. 겨울이 오면 또 여름을 그리워하게 되지 않아?" 하고 짖궂게 묻는 사람한테도 나는 예외가 된다. 아니? 절대 그럴 일 없어. 나는! (짝짝) 겨울이! (짝짝) 좋아! (짝짝) '추워 죽겠다'는 말을 사랑으로 치환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그런 내게 이 책을 추천하고 빌려준 친구가 말했다. "넌 여름을 싫어하지만, 난 여름 하면 네가 생각 나. 이 책에 너를 떠올리게 하는 게 많다구."
'아무튼' 시리즈 중에 가장 펼쳐보지 않을 법한 걸 성수동 어느 카페에서 받아 들었다. 마침 그곳은 여름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컨셉으로 꾸며져 있었다. 아무 페이지를 펼쳐도 술술 읽혔다. 캠핑의자에 앉아 있어서 그랬을지도. 아아, 이러면 안 될 거 같은데. 왜? 여름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글을 좋아하게 되면, 어쩐지 내가 사랑하는 겨울에게 미안해야 할 것 같아서. 이 책을 다 읽고 겨울보다 여름을 좋아하게 되면 어쩌지?
그럴 리 없다. 나보다 먼저 귀가한 사람에게 에어컨을 틀어달라는 메시지를 미리 남기거나 담장 너머로 핀 장미나 능소화를 보며 '그래도 여름엔 아름다운 것들이 있구나!' 감탄하는 것도 잠시 얼른 다 지고 다음 계절이 와 주길 바라는 걸, 여름마다 한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덜' 덥긴 했다. 수차례 이어진 여름비는 태양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장마가 길었고, 태풍이 서너 차례 왔다 갔다. 사람들이 물에 떠내려가고, 실종되고, 열흘 넘어서야 주검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강이 불어나고, 교통이 마비되고, 사람들이 소소한 일상으로 삼던 달리기와 산책 마저 금지되었다. 여름비를 좋아라 하는 내겐 너무 가혹했다. 초입에 내리던 비에 반가움을 표했는데,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잔혹하게 번질 때마다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내 환희에 누가 죽었다니까.
좋아하는 여름 과일, 대저토마토와 복숭아 그리고 자두. 이번에도 그것들에게 기대어 여름을 간신히 보낼 수 있으려나 싶었다. 역시, 여름은 태양이 뜨겁게 작렬해야하는 게 맞다. 동네 가판대 위 채소나 과일이 싱싱하지 않았다. 사온 과일 맛이 시원치가 않았다. 나도 "샤인머스캣" 사듯 백화점을 들러야 하나? 여름의 행방불명이 아쉬웠다.
좋아하는 게 하나 생기면 세계는 그 하나보다 더 넓어진다. 그저 덜 휘청거리며 살면 다행이라고 위로하면서 지내다 불현듯 어떤 것에 마음이 가면, 그때부터 일상에 밀도가 생긴다. 납작했던 하루가 포동포동 말랑말랑 입체감을 띤다. 초당옥수수 덕분에 여름을 향한 내 마음의 농도로 더 짙어졌다. (33)
박막례 할머니도 맛있다고 극찬한 초당옥수수를 미처 주문하지 못했다. 초여름에나 먹을 수 있다는데, 그냥 먹어도 맛있다는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옥수수를 냉동실에 급속으로 식혀 먹는 나에게 최적이었을 초당옥수수. 먹어보지 못하고 여름을 났다. '내년 여름을 기약해야지!' 이런 생각에 웃음이 나기도 했다. 방금 뭐랬어? 여름을 기다린다고?
무언가를 기다린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최악의 것만이 아니어서이기도 하다. 내게도 한철 좋은 여름이 있었다. 갑작스레 닥쳐온 우울증으로 다급히 중도휴학을 한 뒤, 고향으로 내려갔었다. 두어 달만 버티면 졸업이었는데 그때의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뭐랄까. 당장 일상으로 돌아가기엔 불가능해보였다. 아직도 비행기를 탄 그날의 심정을 잊지 못한다. 수척한 얼굴을 하고 착륙을 기다리며 생각했다. '이렇게 돌아와버렸는데 다시 육지로 돌아갈 수 있을까?'
섬으로 내려간 뒤에도 나는 방황을 했다. 결국 그해 가을을 지워야 했고, 겨울을 그렇게 좋아하는데 모든 게 최악이었다. 때마침 폭설이 내렸다. 외출은 겨우 내원을 위해서였고, 온종일 누워만 있었다. 그러다 눈이 녹고 따스해진 어느 날엔가, 알약의 갯수를 세어보니 제법 줄어 있었다. 동네 마실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버스를 탈 줄도 알게 되었다. 지도 앱을 켠 휴대폰을 꼭 붙잡아야 했지만 말이다.
춥고 아득했던 계절을 지나 봄이 오고 여름이 왔다. 그해 여름, 새로이 만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약을 먹어야 하는 사실을 자꾸 까먹었다. 병원에 다시 가지 않았다. 그럴 시간에야 친구를 한 명 더 사귀었다. 하늘이 맑으면 지는 해를 보러 갔다. 해 지면 고지 높은 곳에서 원없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해질녘에는 어김없이 바다로 향했고, 몸을 덜덜 떨며 계곡물을 맞는 날도 있었다. (물놀이를 지독히 싫어한다) 10km 넘게 이어진 숲을 걸었다. 오름을 올랐다. 더워도 습해도 그만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아무거나 하는 시간을 보낸 것이 낯설었지만 무엇이든 최고라 말할 수 있었던 여름날.
과연 섬으로 내려간 시기가 봄이었다면 어땠을까? 말해 뭐해, 최악의 여름을 보냈겠지. 여름과 아주 학을 뗐겠지. 바람 많은 제주의 겨울을 매섭게 사랑할 수 있었을테고, 겨울은 한 번도 나를 배반하지 않는다는 공식을 만들고도 남았겠다. 자, 봐. 내가 겨울을 사랑하듯 겨울도 나를 사랑한다고! 그럼 이 책의 표지에 쓰인, 내가 사랑하는 문장을 조금 고쳐 써보자.
"내가 그리워한 건 겨울이 아니라 겨울의 나였다."
어쩌면 여름이라는 계절을 한 번쯤 다르게 기억하기 위해 그런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여름을 긍정하기엔 아직 어렵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여름이 혹독하지만은 않았다고. 내게도 그런 날이 있었지. 울적할 때마다 꺼내 먹을 수 있는, 입안에서 언젠가 다 녹아 사라질, 레몬사탕 같은 시간. 그러나,
지극히 사사로운 여름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 싶은 건 별게 아니다. 여름을 즐기는 데 필요한 건 조건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 순수한 기대라는 것, 내 흑역사들이 여름을 진심으로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게 될지 몰라도 이렇게 소심하게나마 여름을 아끼는 사람도 있다는 것. 근사한 추억 같은 거 없어도 여름을 사랑할 수 있다. (169)
한 가지 소원 같은 것이 있다. 죽기 전까지 또 한 번 여름을 사랑할 수 있는 시절이 찾아 오길. 나는 아직 여름이 싫다. 좋지도 싫지도 않은 것이 아니라, 싫다. 한철 사랑이라도 좋으니 근사한 여름이 찾아온다면야 나도 근사하게 옷을 갈아입고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그것이 마음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올여름에 자주 했던 것 같다.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 그게 사람을 살게 하는 것 같아."
며칠 전에 친언니가 이런 말을 했다.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사람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 같다고. 타인과 주고받는 애정도, 직업적인 성취도, 누군가를 도와주며 느끼는 만족감도 결국 다 '나는 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실감을 위한 것 같다는 언니의 말을 한동안 곱씹게 됐다. (90-91)
올여름에 준비한 이력서는 쓴맛과 단맛을 동시에 보았다. 딱히 하고 싶은 일은 아닌데 할 수 있을 것 같아 지원한 곳은 붙을 줄 몰랐고, 한번쯤 일하고 싶었던 곳에서는 서류만으로 탈락했다. 탈락은 언제나 쓰지만 실은 벌써 세번째였다. 몇 년에 걸친 지원이었고 세 번 모두 내게 면접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기운이 나질 않았다. 우스갯소리로 지인들에게는 내가 블랙리스트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농담을 위안으로 삼은 그날 밤, 젖은 얼굴로 잠들었고 며칠 동안 고민했다. 면접을 볼지 말지에 대하여.
되돌아보면, 이 세상에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얼마 없는 것 같다는 허무함이 밀려들 때마다 식물이 눈에 들어왔다. 말 못하는 생명이지만 물을 주고, 분갈이하고, 햇빛을 쏘여주면서 적어도 얘들에게는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너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니?" 대놓고 하기 멋쩍은 그 말을 누군가에게 하는 대신 식물을 돌보게 됐다. (91)
딱히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면접을 준비하고 있다니까, 서른인 친구가 내게 물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잘 하는 편인가요?"
네(...니요). 할 수 있다고 대답하면서 표정으로 들킨 모양인지 친구는 웃으며 말했다. "전 아직도 첫 입사를 조금 다르게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싶을 때가 많아요. 그냥 느리더라도, 제대로 준비해서 처음부터 하고 싶은 일 해볼 걸 하는… 출근하고 퇴근할 때마다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수십 번 고민했었거든."
면접을 마친 날까지 친구의 말이 잊히지가 않았다. 남들이 말하듯 무엇이든 경험해보는 게 정말 나은 걸까? 그 회사에 들어갈 수 있다 한들, 보람찬 퇴근길을 걸을 수 있을까? 에이, 해보지도 않고 섣부른 결정을 하는 건가? 근데 너 억지로 일하지 않을 자신 있어?
이런 시간이 하필 또 여름이라서 좋아할 수야 없겠구나 싶다. 그런데 마음의 바닥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시간 또한 여름이라서, 이 계절을 잘 견디면 좋은 기운을 얻을 수 있을 거라 확신하고야 만다. 여름을 견디면 내가 좋아하는 겨울과 가까워지듯이 삶의 태도도 그와 닮아가는 것 같다.
그리하여 환기하듯 식물 하나를 데려왔다. 칼라데아 진저. 잎맥의 색깔이 분홍빛이다. 홀리듯이 집었다. 김신회 작가가 말하는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게 식물이어도 상관없겠다고 생각했다. 어느덧 분갈이를 앞둔 나의 칼라데아 진저, "이제부터 너의 이름은 여름이야." 가장 싫어하는 계절의 이름을 따와 한 사람의 쓸모를 되찾고자 하는 바람을 담는다.
내가 너를 잘 자라게 한다면야, 이제부터 '여름'은 최악이 아닐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