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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ㅕㅇㅇㅣ Dec 22. 2021

쓸모를 찾아서

황선우,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책읽는수요일, 2021)

[뭐해?]

[뭘 하다니?]

[또 누워 있구만]


사촌오빠 김 모씨로부터 가끔 연락이 온다. 안부 인사다. 잘 지내냐는 낯 간지러운 말 대신 다짜고짜 뭐하냐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끝까지 진지할 줄 모르는 이 대화는 이상하게 내 상태를 점검하게 만든다. 그의 예상대로 아직 내가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면 이불을 끌어안으며 뜨끔해하곤 했다.


그가 상상할만한 내 모습은 어떤 걸까? 아마 일하고 있는 모습일 것이다. 파티션이 있는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모습 같은 거. 그게 업무보고서나 회의록 작성 등이 아닌, 자신이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답장일지라도 '오피스 출근'이란 걸 하고 있는 거니까.


그가 상상할만한 모습을 실현해본 적은, 물론 있긴 있다. 딱 한 번.




ⓒ YES24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가늠도 안 됐던 때가 있었다. 햇수로 7년 만에 졸업하기도 했고, 하기 싫은 것(a.k.a 취업준비) 빼고 다 해왔다. 돈 안 되는 일을 돈 되는 일처럼 여기는 걸 졸업 후에도 하고 앉아 있으니, 혈육 포함 주변 지인들은 나에 대해 이렇게 말하곤 했다.


"경이는 취업 안 해도 돼."

"맞아, 넌 네가 일을 알아서 벌이잖아."

"넌 회사 들어가도 얼마 못 버티고 나올 부류야."

"경이는 프리랜서 기질이지!"


취업 안 하냐는 잔소리보다는 듣기 좋은 소리였다. 그럴싸해보였다.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잘 찾아 취향으로 공유하고, 갈증이 일면 콘텐츠로 적극적으로 만들어보고… 돈이 없지 가오는 분명 있었다. 최근 사람들이 하나씩 갖고 싶어 하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나는 진작에 시도해보는 사람이었다. 본업을 얻기 전부터.


그래도 생계는 유지해야할 것 아닌가? 주1회 하루 4시간 카페노동으로는 막막했고, 서른 살 이전에 독립하는 게 버킷리스트이기도 하니까(?) 얼른 취업을 해야했다. 엄마는 분명 하고 싶은 거 "아무 거라도 하라면서" 간간이 취업은 언제 하냐고 물었다. 아마 딸이, 20대 중후반을 이대로 지나가버리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까 걱정되어서였을 것이다.


언제나 상대적으로 어린 여자들이 나이와 외모로 찬양받는 동안, 시니어인 여자들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평가절하됐다. 남자들은? 누구에게서 품평의 권력을 얻었는지 몰라도 그들은 언제나 자를 들고 설치는 쪽이었다.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 같은 거야. 25 넘으면 값 떨어져." "서른 넘기 전에 시집가야지. 30대 되면 재취 자리밖에 안 들어와." (163)






증명사진을 찍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더니 디엠DirectMessage이 몇 차례 날아왔다. "뭐야, 너 취업해?" 취업을 한다니까 왜 하냐는 질문을 받는 사람, 잇츠미It's me. 그렇게 취업준비를 막 시작할 무렵, 엄마가 말했다. 알아서 하겠다면서 대체 뭘 알아서 하고 있니, 너 정말 아무렇게나 살 거야?



©️ 네이버 영화


찬실: 시는 어렵게 생각하면 더 어려워요. 아무거나 써도 돼요.

할머니: 한 줄만 써도 돼?

찬실: 아무거나 써도 된다고 했지, 아무렇게나 써라고 안 했는데요.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할머니(윤여정 분)는 한글을 배우며 시를 써오라는 숙제를 받는다. 찬실(강말금 분)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찬실은 할머니 곁에 앉아 노트를 살피는 이 장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씬이다. 영화를 보고 엄마가 내게 해주신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엄마도 찬실이처럼 "아무 거라도 하라면서" "아무렇게나" 살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을 거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주인공의 멋진 점은 불운을 겪지만 스스로를 내팽개치지도, 다른 이를 괴롭히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상황이 좋지 않고 마음이 어지러울 때 찬실이 하는 행동은 이런 것들이다. 음식을 만들고 청소를 하면서 주변을 돌보기,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챙기기, 공원을 걷고 산길을 올라 산책하기, 정말 원하는 게 뭔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골똘히 들여다보기. (143-144)

 

나도 찬실이처럼 아침에 일어나 산책부터 했다. 걸으면서 잡생각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구인구직 사이트를 차례로 방문했다. (대신에 근무시간 기준을 '나인 투 식스9 to 6'로 두었다.) 그러다 우연히 모 IT기업에서 음성데이터를 분류하는 사람을 찾고 있었고, 잠깐씩 해봤던 방송국 프리뷰 아르바이트와 비슷해보였다. 지원서를 바로 넣었고, 다음날 면접을 보게 되었다.






일을 한다는 것은 반복되는 스트레스와 도전 속에 내 자신을 던져놓는 동시에 이 모든 감정의 파도를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기회이기도 하다. (185)


그렇게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을 하러 여의도로 향하게 되었다. 오빠와의 연락도 이전보다 마음이 편했다. "뭐해?" "일하지!" 나의 쓸모를 찾은 기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시각 집에서 누워있거나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내야할지 막막했었다.


일찍 도착해 출근 전 여의도공원을 산책하곤 했다 ©️ 경이


여의도 출근길은 연구원으로 부서를 이동해 2개월 더 연장하게 되었다. 총 5개월 동안 나인 투 식스에 맞춰 생활 리듬을 몸에 익혔다. 그리고 몇 가지 깨달았다. 일의 경험이 부족해 미처 답하지 못했던, 듣기 좋은 소리에 대하여 이제는 대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경이는 취업 안 해도 돼." 

→ 아니다,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다. 삶의 원동력을 본인의 '쓸모'로 삼는다.


"맞아, 넌 네가 일을 알아서 벌이잖아."

→ 맞다. 예를 들면, 회사에서 인력 충원이 필요한 것 같아 지인 2명을 섭외해 업무 교육까지 도맡았다. 자진해서. (퇴사 전, 주말까지 일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고...)


"넌 회사 들어가도 얼마 못 버티고 나올 부류야."

→ 아니다. 시키는 건 한다. 단, 시키는대로만 하진 않는다. 비효율적인 업무방식은 적극적으로 건의해서 지양하는 편이다. (아마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생기면, "얼마 못 버티고" 나오겠지?)


"경이는 프리랜서 기질이지!"

→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장에 계속.






일은 또 다른 일을 부르기도 한다. 퇴사 보름 정도를 앞두고 인스타그램 디엠을 받았다. A 잡지사에서 모 기업 사보를 만드는 중인데 인터뷰 지면을 맡아달라는 업무 제안이었다. 프리덤Freedom을 외치려다 프리랜서Freelancer로 첫걸음을 낼 수 있는 기회, 일전에 모 기관에서 기사를 쓰고 돈을 벌었던 일이직업(프리랜서) 카테고리로 엮을 수 있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나도 프리랜서라고 불릴만 했군! 그런 이력을 지켜봐준 사람이 있다니, 처음엔 신기했다.


담당 지면이 4페이지에서 6페이지로 늘었다. (원고료는 그대로였다) 포토그래퍼가 따로 붙어 인터뷰만 진행하면 되었다. 그런데 밭은 일정이었는지 영상촬영과 함께 진행되었다. 원고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스튜디오에서 촬영까지 이어졌다. 잡지사는 이렇게 일을 하는구나, 모든 게 신기하기만 했다.


인터뷰가 진행되었던 스튜디오 ©️ 경이


마감일정에 맞춰 기사를 완성해 송고했고, 피드백이 필요한 부분을 원고 하단에 정리했다. 담당자는 원고를 넘겼다 했고 인쇄 일정을 알렸다. "발행되는대로 우편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받으실 주소를 알려주세요."


잡지를 발행하기까지의 일정은 감으로만 알고 있던 터라 에디터로 일하고 있는 친구에게 물었다. "아무 연락이 없으면 오케이인건가요?" "보통은 그렇죠. 외부필진까지 다 신경쓰지 못해서 아마 알아서 수정되어 나올 수도 있어요." 아무 연락이 없었다. 어떻게 초고가 오케이가 되지? 애인은 그런 나를 글 잘 쓰는 사람이라 칭찬했고, 나는 듣기 좋은 소리에 또 한 번 흡족해하며 잡지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


잡지가 우편함에 꽂혀 있던 날, 어느 때보다 즐겁게 봉투를 뜯었다. 이런 잡지였구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내가 맡은 지면을 펼쳤다.


사회자 경이
글 ○○
사진 △△△


내가 사회자였다고? 맞다. 촬영 현장에서 인터뷰를 진행했지. 하지만 분명 글도 썼다. 그런데 이 지면을 보는 독자들은 ○○ 에디터가 글을 썼다고 믿게 될 터, 내가 글을 잘 못 썼나? 수준 이하여서 ○○ 에디터가 새로 썼나? 아니 근데, 작성자(나)에게 어떠한 연락도 없이 진행된다고?


며칠을 고민했다. 담당자에게 이러한 방식으로 일을 하는 건 잘못되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무슨 짓을 해도 나는 을乙이라는 걸 간과해선 안 되었다. 나와 다음을 기약하지 않으면 어쩌지? 아무런 피드백이 없어 나름 잘 해냈다고 생각했는데, 평가는 냉정했다. 어쩌면 이미 모든 걸 말해주고 있을지도 몰랐다. 글Edit이 아닌, 사회자의 역할만 해낸 거라고. 너는 딱 그 정도일 뿐이라고.


연일 고민을 이어가고 있을 무렵 내가 이 일을 맡았을 때 가장 환희해준 혜은을 만났다. 마침 일이 잘 마무리 되었냐고 물어봐주었다. 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말할수록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만일 혜은이 가만히 내 얘기를 듣고만 있었다면 나는 아마 울고 말았을 것이다.


"에이, 그래도 그러면 안 되지."


"근데 정말 제가 못 한 거일 수 있잖아요."


"물론, 경이 님이 미흡했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요청한 피드백도 답변 안 줬다면서? 바쁜 건 알겠는데 세상에 안 바쁜 사람이 어딨어? 자기네 사람 아니라고 쉽게 생각하는 거지. 아휴, 마음 쓰이겠네 엄청."


"저는 그게 걱정돼요. 저에 대한 평가가 딱 거기까지일까봐. 그리고 저 자신한테 실망할까봐 지면이랑 제 원고가 같은지 대조도 못하겠는 거예요. 대충 보니까 확실히 제가 쓴 게 맞는 거 같긴 한데… 정말 이렇게 좋은 기회가 왔는데, 제가 잘 해냈다면 다음을 기약할 수도 있는 일이었잖아요."


"그치, 불안할 수 있어. 근데 자기 마음 다친 것도 중요하지 않아? 그리고 거기도 일을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알아야지. 아님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어, 그냥 이런 식으로 넘어가면서 일처리했던 거일수도."


혜은의 마지막 말은 그날 저녁 나를 책상 앞으로 앉게 했다. 이메일 창을 열어 한 자 한 자 쓰기 시작했다.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지우고, 감정이 뒤섞인 문장이 계속 이어졌다. 다 쓴 뒤 나보다 이성적인 사고 판단이 능한 동생에게 퇴고까지 받았다. "언니, 이렇게 쓰면 감정만 전달되고 팩트Fact가 없잖아." 그만큼 나는 격분해 있었다. 거봐, 너 전혀 괜찮지가 않네.


프리랜서가 되고 나서는 무엇보다 다른 사람 눈치를 보느라 헛짓을 하고 있지 않다는 감각이 좋다. (70)


그날은 모든 감정을 소모하느라 진이 빠졌다. "다른 사람 눈치를 보느라 헛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반복되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차라리 이럴 시간에 다른 걸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는데. 그런데 자책과 실망을 반복하면서 상처 받은 마음을 돌보지 못했다. 정확히는, 사과를 받지 못했다. 그들은 나에게 미안해 해야 한다. 메일 말미에는 이렇게 썼다.


(중략) 사회자 역시 훌륭한 포지션이고 인터뷰 진행 또한 제 몫이었지만, 이번 일을 제안 받았을 때 언급된 업무는 Dialogue 지면에 해당하는 '원고 기고'였습니다. 만일 인터뷰 현장 사회자의 역할만을 제안받았다면 저는 이 일을 거절했을 거예요.

정말 오랜 고민 끝에 메일 보냅니다.
사회초년생의 치기 어린 말이라 생각해도 좋습니다. 늦었더라도 협업했던 한 사람으로서 제 심경을 전달하고자 길게 적어 보냅니다.

경이 드림.






《럭키》매거진 부편집장을 거친 디지털 미디어 전략가인 저자 제니퍼 로몰리니는 특히 구직을 염두에 둔 사람이라면 자신의 소셜 미디어 계정을 보수적인 시각으로 검수하고 한 번씩 정리하라고 충고한다. 조언의 핵심은 이거다. "그 계정들이 직업인으로서 당신을 얼마나 잘 드러내줄 수 있는지 판단해보아라." 밑줄을 그어야 할 부분은 물론, '직업인으로서'다. (103)


그로부터 반년이 흘렀다. 그동안 출판편집스쿨을 수료했고, 여전히 카페노동을 위해 토요일마다 연희동으로 향하면서 출판노동을 꿈꾸고 있었다. 면접을 두어 차례 보며 쓴맛을 보기도 했다. 예상보다 취업준비가 길어지면서 일상이 무기력했다. 그러던 중 인스타그램 디엠을 받았다. (인스타그램 안 했으면 어쩔 뻔 했어?)


안녕하세요, 경님. 출판노동자(?)를 꿈꾸신다기에, 감히 인스타 메시지를 보내봅니다.


채용공고였다. 텍스트 콘텐츠를 기반으로 다채로운 일을 벌이는 기업이었고, 회사의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니 그동안 내가 관심있게 지켜봐온 분야였다. (물론, 채용공고에 적힌 업무는 '출판 기획'이다)


나 역시 누군가와 같이 일할 기회가 생기면 그 사람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들어가본다. (104)


당시 인스타그램 프로필 ©️ 경이


알고 보니 대표는 팔로우를 기반으로 인재를 찾고 있었다. 마침 나의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적힌 '출판노동을 꿈꾸는 카페노동자'라는 문구가 눈에 띈 것이었다. 바로 채용 과정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나는 확신했다. 이곳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비어가는 통장잔고도 중요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대표가 내게 한 말 때문이었다.


"우리가 함께 한다면, 바로 업무가 주어지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할 거예요. 경이 님이 성장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울 거고요. 경이 님도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발휘해주셨으면 해요."


서로 공부해나가면서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일이 내게 주어질지, 그 안에서 과연 업무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잘 이뤄질지는 함께 일해봐야 알겠지만 대표의 태도야말로 배울만 했다. 내가 일을 하면서 갖추고 있어야 할 태도였다.


일할 때의 나는 일을 하지 않는 나보다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나와 다른 능력과 배경,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부풀린 자의식에만 갇히지 않고 넓은 세계로 나와 객관적인 눈을 기를 수 있다.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면서, 혹은 대립할지라도 같이 성장할 수 있다. (186)


또 한 번 인스타그램을 통해 좋은 기회를 얻었고 이번엔 취업에 성공했다. 역시나, 일은 다른 일을 부른다. 좋은 것은 좋은 것을 부를 것이다.*






출근 첫 날 해질 무렵 ©️ 경이


행운은 많은 순간 사람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평생 일하며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있어 운을 좋게 만든다는 건, 무엇보다 내 인생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충실하게 대하는 일 아닐까? (27)


이제부터는 텐 투 세븐10 to 7의 생활리듬을 찾아야 할 것이다. 공부해야할 게 산더미다. 그 산을 넘어 도약할 수 있다면 "아무거나" 해볼 것이다. 단, "아무렇게나" 말고.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장전하고 마음에 따발총 하나 품어서 마구마구 발사해야할 차례다. 총의 이름은 용기勇氣다.


출근길이 고되더라도 부디 지겹지 않았으면 한다. 아니면, 어느 소설의 제목**처럼 지긋지긋해하면서 사랑하고 싶기도 하다. 직업인으로서의 나를 찾기 위해, 하루 빨리 일하는 나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고 싶어 아침을 기다린다. 내일의 태양은 뜰테지만 내 일을 해내기 위해 오늘 밤도 잘 자야지. 나는 얼른 자고 싶었고 그래서 굿나잇 잠이 든다.***





*김성라, 『귤사람』 (사계절출판사, 2020)

**진연주, 「나의 사랑스럽고 지긋지긋한 개들」

***박솔뫼의 소설 「펄럭이는 종이 스기마쓰 성서」의 마지막 문장을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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