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은 퇴직할 때만 주고 받아요.
얼마 전 '스타트업이 난감해하는 계약서 대하는 법' 강의에서 퇴직금 중간정산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분이 팔짱을 낀 채로 계속 고개를 갸우뚱하시는 거예요. 저도 계속 신경 쓰여 결국 물어봤습니다. "선생님! 혹시 이해가 안 가시거나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아.네... 변호사님, 근데 제 주변에 회사를 운영하는 많은 사장들이 직원들한테 월급 줄 때 퇴직금을 포함해서 주고 있어요. 자기들은 전부터 그렇게 해왔다고 하는데 이것도 그럼 안 되는 건가요? 만약 그렇다면 이미 월급에 포함해서 줘버린 퇴직금 사장이 돌려받지 못하나요? 그럼 근로자는 퇴직할 때 퇴직금도 받을 수 있고 이미 분할 지급받은 것도 갖게 되면 이중으로 받는 거잖아요?
갸우뚱 하실 만 하더군요. 일반적인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1. 퇴직금을 월급에 포함시켜서 주는 '퇴직금 분할 지급'은 무효입니다.
2. 이중으로 지급받은 근로자에게 사장은 분할 지급한 퇴직금을 반환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퇴직금 중간정산, 분할 지급은 무효인가요?
네. 무효입니다.
근로자가 사장한테 "저 친구한테 돈 빌린 거 지금 못 갚으면 큰일 나요!"라고 해서 퇴직금을 중간정산받거나, 근로자와 사장이 상호 합의해서 월급에 퇴직금을 분할 지급받기로 했어도 무효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나라의 노동법은 상대적 약자에 있는 근로자를 우선합니다. 특히 임금과 퇴직금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죠.
대법원은 노동분쟁을 판단할 때 "사회적, 경제적으로 종속관계에 있는 근로자를 보호", "근로자의 경제생활의 안전을 해할 염려"를 늘 고려합니다.
근로계약은 당사자 간의 계약일지라도 강행규정(위반하면 무조건 무효, 합의도 안됨)과 부딪치면 그 효력이 없습니다. 퇴직금을 중간에 정산하거나 월급에 나누어서 지급하는 것은 강행규정 위반으로 무조건 무효입니다. 심지어 근로자가 자발적으로 퇴직금을 포기하겠다고 약정이나 각서를 써도 아무 효력이 없어요.
다만, 법에서 정한 딱 몇 가지 경우에만 중간 정산이 가능합니다.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시행령 제3조(퇴직금의 중간정산 사유)
① 법 제8조 제2항 전단에서 "주택구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를 말한다.
1. 무주택자인 근로자가 본인 명의로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
2. 무주택자인 근로자가 주거를 목적으로 주택 전세금 또는 보증금을 부담하는 경우
3. 근로자, 근로자의 배우자 또는 이들과 생계를 같이 하는 부양가족이 질병 또는 부상으로 6개월 이상 요양을 하는 경우
4. 중간정산 신청하는 날부터 역산하여 5년 이내에 근로자가 파산선고를 받거나 개인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받은 경우
5. 임금피크제를 실시하여 임금이 줄어드는 경우
대표자이든 직원이든 이것만 기억하세요. 퇴직금을 사전에 포기 각서를 써도 무효. 중간에 정산받아도 무효. 월급에 포함해 줘도 무효입니다. 결국 퇴직할 때 직원이 대표자한테 퇴직금 달라고 하면 줘야 합니다. 일단!
그럼 중간에 지급한 퇴직금은 돌려받을 수 있나요?
그럼요. 법은 대체로 상식과 많이 부합해요. 퇴직금 중간 정산이 아무리 무효여도 사용자가 이를 돌려받지 못하면 사용자만 손해이고 근로자는 아무런 권리도 없이 이득만 보잖아요. 바로 이런 성질을 돈을 돌려받는 것을 법률용어로 "부당이득반환청구"라고 합니다. 그냥 쉽게 말하면 '돈 받을 근거 없이 이득을 본 것이면 다시 뱉어내라' 입니다(민법 제741조). 따라서 대표자는 근로자에게 이미 지급한 퇴직금은 무효이니 다시 나한테 돌려줘라라고 청구할 수 있습니다.
그럼 여기까지 잘 따라오셨다면 궁금하신 게 있으실 겁니다.
아니... 퇴직금을 중간 정산하거나 월급에 포함해서 준 것이 무효라면서요. 그럼 직원이 퇴직할 때 퇴직금을 다시 청구하면 퇴직금을 줘야 하고, 나(대표)는 또 이미 준 것을 다시 돌려달라고 청구할 수 있다면서요. 번거롭잖아요. 그럼 그냥 퇴직금이랑 이미 준거 돌려줄 거랑 '퉁'치면 안 될까요? 뭐 그런 걸 '상계'라고 하던데.
오! 맞아요(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퉁'칠 수 있어요. 그런데 전부는 안돼요. 어려운 내용 들어갑니다.
민사집행법에서는 근로자인 채무자의 생활보장이라는 공익적, 사회 정책적 이유에서 '퇴직금 그 밖에 이와 비슷한 성질을 가진 급여채권의 2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을 압류금지채권으로 규정하고 있고, 민법은 압류금지채권의 채무자는 상계로 채권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직원이 청구하는 최종 퇴직금의 절반은 '퉁' 칠 수 없고, 꼭 반드시 직접 지급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한번 예를 들어볼게요. 잘 따라와 보세요.
대표가 직원한테 중간정산 해준 퇴직금이 600만 원이라 하고, 직원이 퇴직할 때 청구한 최종 퇴직금은 800만 원이라고 쳐요. 그럼 그냥 제한 없이 '퉁'친다면 대표가 직원한테 200만 원만 더 주면 끝인 거죠. 그런데 위 민사집행법에 따르면 직원의 최종 퇴직금 800만 원의 2분의 1인 400만 원만 '퉁'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대표는 직원한테 200만 원(600만 원 - 400만 원)을 청구할 수 있고, 직원은 400만 원(800만 원-400만 원)을 청구할 수 있는 겁니다. 번거롭더라도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강행규정으로 정해 놓은 거예요. 휴,,, 어렵죠?
그냥 퇴직금에 대해서는 이러한 경우가 있구나!라는 것만 아시고 구체적인 내용은 필요하실 때 다시 보고 참고하면 됩니다.
근로자 입장에서도 '아니 내가 내 돈을 내 맘대로 받고 싶을 때 받을 수도 없어? 사장이 준다는데?'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사장한테 종속적이지 않은 직원은 그럴 수 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가 그렇지 못하잖아요. 만약 양당사자 간의 합의로 퇴직금 중간정산을 무조건 허용하면, 직원 중에서는 울며 겨자먹기로 퇴직금을 받아가는 경우가 많이 있을 겁니다. 우리 노동법은 근로자의 최소한의 생계유지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니까요!
그럼 이만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