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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변찮은 최변 May 16. 2018

블랙넛 vs 키디비 사건 법적쟁점은 무엇일까요?

모욕죄 그리고 통신매체이용음란죄, 정보통신망법

이 글에는 선정적인 랩 가사가 인용됩니다.
관계자들의 허락을 받아 공익적 목적으로 인용한 것이니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솔직히 난 키디비 사진보고 딸쳐봤지"
- 블랙넛, [인디고 차일드] 가사 中
"마치 키디비의 가슴처럼 우뚝 솟았네, 진짜인지 가짜인지 눕혀보면, 허나 나는 쓰러지지 않고 계속 서 있다 bitch"
- 블랙넛, [po] 가사 中
"걍 가볍게 딸감, 물론 이번엔 키디비 아냐 줘도 안 처먹어 니 bitch는 걔네 면상 딱 액면가가 울 엄마의 쉰김치"
 - 블랙넛, [투 리얼(Too Real)] 가사 中



이런 랩 가사 어떤가요?

저도 저 가사를 옮겨적으면서 몇번을 망설였습니다. 법적으로 생각하기도 전에 '아니, 어떻게 저런 가사를 써서 공개할 수가 있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문제의 음원 발매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공연장에서도 [인디고 차일드]를 부르던 중 위 가사로 랩을 하며 키디비가 언급되는 부분에서 자위 퍼포먼스까지 했습니다.

더나아가 블랙넛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키디비에 대한 반성문이라며 그 위에 김칫국물로(블랙넛은 김칫국물이 아니라고 주장)보이는 것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사진을 게재하고 키디비를 태그하기도 했습니다.



키디비는 결국 법적 대응을 하기로 결정하고 블랙넛을,

 '성폭력범죄 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3조(통신매체이용음란죄)'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 7'
 '형법 제311조 모욕죄'

등으로 고소하였습니다.


1차 고소(음반 발매 등)건은 현재 재판 진행 중이고, 2차고소사건(자위퍼포먼스 등)은 수사 중입니다.

주의 깊게 봐야할 점은 현재 1차 고소한 사건에서 블랙넛은 '모욕죄'로만 재판에 넘겨졌고, '통신매체이용음란죄'와 '정보통신망법 위반죄'는 불기소처분이 되었습니다. 이 글 작성 현재, 재판과 수사에서 '모욕죄'만 다루어지고 있고, 불기소처분된 부분은 키디비 측이 불복하여 항고, 재정신청을 한 상태라고 합니다(불기소된 것을 다시 기소하게 하는 신청).


그 동안 블랙넛 - 키디비 사건과 관한 여러 기사는 있었지만, 법적 관점에 대해서 자세히 다룬 글이 없었기에

이번 글은 법률가 관점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볼게요.



블랙넛-키디비 사건은 아직 판결이 난 것이 아닙니다. 참고하고 읽어주시길.



#모욕죄에 해당할까?


형법 제311조(모욕)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법률가들은 서로 무엇을 가지고 다툴까요? 바로 법조문 해석과 입증입니다.

모욕죄에서는 '공연히' '모욕' 그리고 '고의'가 모욕죄 성립의 구성요건입니다. 즉 이 세가지 구성요건에 대한 법적 해석과 입증이 가장 중요하죠.


#공연성


'공연히'라는 말은 '다른 사람들이 알게끔'이라는 의미입니다. 좀 더 정치한 대법원 표현을 빌리면,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 또는 불특적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전파가능성이라고 하죠.

즉, 한두사람한테 몰래 이야기해도 그 한두사람이 입이 가벼운 사람이면 전파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판례에 따르면 개인 블로그의 비공개 채팅방에서 1:1로 대화하면서 '비밀을 지키겠다'라고 말을 들어도 '공연성'을 인정할 여지가 있습니다.

'공연성'에 대한 대법원의 좀더 구체적인 판단을 살펴보면,

"모욕죄는 사람의 외부적 명예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을 공연히 표시하는 것으로 족하므로, 표시 당시에 제3자가 이를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 있으면 되고 반드시 제3자가 인식함을 요하지 않으며, 피해자가 그 장소에 있을 것을 요하지도 않고 피해자가 이를 인식하였음을 요하지도 않으므로..."

라며, 직접 피해자를 대면해서 모욕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어떠신가요? 블랙넛이 한 행위들이 '공연성'을 충족할까요?



#모욕


'모욕'은 명예훼손에서의 '구체적 사실'과는 조금 다릅니다. 모욕은 판례에 따르면 "단지 모멸적인 언사를 사용하여 타인의 사회적 평가를 경멸하는, 자기의 추상적 판단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실제 모욕으로 인정됐던 말을 보면, "아무것도 아닌 똥꼬다리 같은 놈" "싼 맛에 갖다 쓰는거죠" "빨갱이 계집년" 등이 있습니다. 반면에, 예를들어 "저 책 저자는 작품을 표절했다"라는 말은 허위이든 진실이든 '사실'을 언급한 것이죠. 저자의 사회적 가치, 평가를 저하시키는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이니까요. 하지만 '모욕'은 진위 여부를 판단할 대상이 아닙니다. '욕'이 그렇죠.


그렇다면, 맨 위 사진처럼 블랙넛이 자신의 인스타에 "i respect for my unnie"라고 쓴 종이에 빨간 국물을 떨어뜨린 사진을 올리며 키디비를 태그한 행위는 어떨까요? 블랙넛 측은 해당 사진에 키디비라고 나와 있지 않고, 키디비를 특정할 수도 없으며 저 빨간 국물은 김칫국물이 아니다라며 인스타 사진 업로드를 '모욕'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보기엔 어떤가요?



#고의


현재 1차 고소에 대한 재판에서는 모욕의 '고의'를 두고 다투는 것 같습니다.

모욕죄는 과실범 처벌규정이 없기 때문에 '고의'가 있어야 합니다. 모욕의 고의는 '내가 반드시 너를 모욕하고 말거야' 정도의 확정적 고의일 필요는 없습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상대방이 모욕감을 느낄 가능성이 있고, 뭐 그래도 어쩔수 없지.' 정도의 고의어도 인정됩니다. 이런 것이 여러분들도 들어봄직한 '미필적 고의'라는 것이죠.


블랙넛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의도하지 않고 평소대로하던 행동들이었는데 이슈가 되는게 신기하다.", "머릿속에 생각나는 데로 했을 뿐인데", "의도는 안했는데"라고도 말했습니다. 이런식으로 블랙넛은 향후 재판에서도 모욕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할 것 같습니다.





#통신매체이용음란죄은 불기소처분


제13조(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
자기 또는 다른 사람의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으로 전화, 우편, 컴퓨터, 그 밖의 통신매체를 통하여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 음향, 글, 그림, 영상 또는 물건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검찰은 블랙넛에 대해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과 '정보통신망법 위반'에 대해서는 불기소 처분을 하였습니다(기소권은 전적으로 검사에게 있습니다 - 이른바 기소편의주의). 검찰은 어떤 이유로 불기소처분을 하였을까요?


문제되었던 부분은 크게 '목적', '통신매체를 통하여', '도달'에 대한 해석인 것 같습니다.


'자기 또는 다른 사람의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을 보겠습니다.

검찰은, 위 곡은 블랙넛이 다른 가수들과 같이 공동 작사한 것이므로 그것만으로는 '성적욕망 유발 목적'이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한 것 같습니다. 반면, 키디비 측은 랩에서 공동작사하는 경우에는 각 랩퍼가 자기의 파트를 작성해서 그대로 잇는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다른 가수들과 공동으로 작사한 것이라면 오히려 다른 가수들이 '공범'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죠.


'통신매체를 통하여'라는 부분이 가장 문제된 부분입니다.

온라인에서 음반을 발매, 공개한 것이 '통신매체를 통한' 행위에 해당할까요?

검찰은 음원 발매 행위는 '전화, 우편, 컴퓨터(이메일, 카카오톡) 등'과 같은 통신매체를 '이용'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한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근거는 잘모르겠지만 음원 자체를 통신매체로 보지 않았거나, 온라인에 음원을 발매, 공개한 것이 통신매체를 '이용'한 것으로 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반면, 키디비 측은 온라인 음원 발매를 '통신매체를 통한' 것으로 보지 않은 점은 시대착오적 해석이라고 주장합니다.


1994년 한겨례신문

마지막으로 '도달'을 살펴볼게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도달'은 수신자가 받아보거나, 받아볼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할 수 있죠? 예를들어 집배원이 직접 전달에 해주거나 우편함에 꼿아놓을 경우가 그렇죠.

그런데 법적으로는 이 '도달'을 매우 엄격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법원은 통신매체이용음란죄와 관련한 '도달'의 의미에 대해서,

성폭력처벌법 제13조에서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그림 등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다’라는 것은 ‘상대방이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그림 등을 직접 접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실제로 이를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 두는 것’을 의미한다.

라고 하고 있습니다.


검찰은 블랙넛이 위 곡들을 온라인에 발매하고 자위행위 퍼포먼스가 유투브에 업로드 된 사실은 인정하지만, 이것이 비록 "인터넷에 게시되어 불특정 다수인이 볼 수 있게 하였다"는 것만으로는 '도달'이라고 볼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키디비 측은 반발했죠. 음원 발매 같은 것은 동료 랩퍼인 키디비가 보고 들을 수 밖에 없는 행위이고, 만약 도달시킬 의도가 없었더라도 사건이 문제된 후에 곡 발매 등을 중지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죠.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형사소송에서는 보통 검사가 피해자의 변호인 역할을 합니다만, 검사가 불기소처분을 할 때에는 피해자와 검사가 다투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현재 키디비 측은 불기소된 부분에 대해 불복하여 법원에 재정신청을 한 상태인데요, 조간만 결과가 나올 것 같습니다. 만약 불기소처분된 성폭법상 통신매체이용음란죄와 정보통신망법 위반에 대한 키디비 측의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져 재판으로 간다면 매우 치열한 법적 공방이 오갈 것 같습니다. 법리적으로 따려봐야 할 부분이 많이 생길 것 같거든요.


블랙넛 재판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번 사건을 계기로 랩퍼들이 선을 넘는 욕설 등으로 상대방을 비방하는 문화가 개선되길 바랍니다. 예를 들어 제가 좋아하는 윤미래처럼 천박하지 않은 가사들로도 얼마든지 힙합을 할 수 있잖아요?


여러모로 안타까운 사건인 것 같습니다.





1일 1회 복용 법 알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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