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산다는 것.
제주도로 발령 온 이후로 주변 사람들이 참 많이 부러워합니다.
"이야~ 여행지에서 산다니! 매일매일 여행하는 것 같겠다. 특히 너처럼 빨빨거리며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애한테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제주도로 발령난지 반년이 조금 지났습니다. 사람도 사계절은 지내봐야 좀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아직 입도한 지 고작 7개월밖에 안되어 제주살이에 대해 뭐라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한겨울 빼고 삼계절을 보냈네요.
한 달 이상 거주한 것을 '살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전 4개의 지역에서 '타지 살이'를 해봤습니다. 그 중에서도 지금 살고 있는 '살이'는 저에게 좀 특별한 것 같습니다. 제주도 자체의 특수성에 더해서, 전 '발령받은 자'니까요.
'타지'에서 '산다'는 것을 말하려면 '여행'과 '생활'의 차이를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더군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지역에서 살아오신 분들도 많으실 테고 저보다 타지살이를 더 많이 하신 분도 계시겠죠? 심지어 타국에서 생활하시는 분들도 더러 있으실 겁니다. 여러분은 '여행'과 '생활'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낭만성과 무덤덤함
전 여행을 생각하면 '낭만'이 떠오릅니다. 반면 생활은 '무덤덤'함이 연상되더군요. 이 다른 느낌이 어디서 기인하는가 생각하면 바로 '일회성'과 '반복성'의 차이에서 오는 것 같아요. 외국여행을 자주 가더라도 같은 나라, 같은 도시를 보통은 또 가지 않죠. 국내여행의 경우 갔던 곳을 또 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 사이 시간이 길어서 올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있죠. 그런데 생활은 다르더구요. 그게 아무리 제주도라고 할지라도 여행지가 생활하는 곳이 되면 낭만성이 떨어집니다. 왜? 오늘 안 가고 내일 가면 되니깐!(하지만,,,내일이 다음 주 다음 달이 되기 일쑤). 이미 반복 혹은 반복할 수 있다는 생각. 흠흠.
제가 제주도에 처음 와서 '낭만적이야'라고 느꼈던 장면 이런 것들이에요. 다 집 근처거든요.
참 좋지요?
낭만성은 거창하게 말하면 우연성에 의미 부여를 하면서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우여곡절 끝에 이탈리아 비행기를 예약하고 미리 예약했던 숙소를 못 찾아 급하게 다른 숙소를 잡았는데 가는 길과 숙소의 전경은 기가 막히고,,, 거기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그 사람 때문에 여행 일정이 바뀌고......등등.
여행은 이런 우연성이 도처에 널려있고, 냉철했던 내 현실감각은 온데간데 없어져 금세 자신을 낭만주의 소설 속 주인공으로 바뀌어버리죠. 이런 경험 하신 분들 있으시죠? 저만 그랬나요?
주변에 제주도에 발령 혹은 사업 때문에 오래 머무시는 분들을 보면 일단 저 우연성이 확 줄어들더군요. 고정된 루트 안에서 반복되는 삶을 사니까요. 그리고 주말에는 여행객들이 모이는 관광지의 술집이나 게스트하우스 같은 곳을 잘 안 찾게 되죠. '아니 집 놔두고 밖에서 왜 자!', '어후! 협재까지 언제가",,,뭐 이런 현실감각(?)은 아주 날이 서있죠. 일 때문에 제주도에 있는 거니까요.
저도 제주도에 입도하고 한두 달 정도 지나니 갈만 곳도 거의 가보고 주말엔 슬슬 나가기도 귀찮아지더군요. '생활'이 호시탐탐 '낭만성'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이러다 큰일 나겠더군요(낭만성을 쫓는 저한텐 큰일이에요). 다짐을 했어요. 1년 4개월 제주도에 있는 동안 “낭만성”을 지켜내자!
다행히 아직까지 낭만성을 생활의 위협으로부터 지켜내고 있습니다^^ 제가 좀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우연성을 쫓아다니며 의미 부여를 잘하거든요. 이놈의 '의미 부여' 때문에 친구들한테 자주 핀잔을 듣지만, 저의 이런 성향이 제주살이에서 낭만성을 오래 느끼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네요.
전 그럼 이만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