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 법] 매거진에 이어서 [제주살이]도 정말 오랜만에 글을 올리네요.
전 사실 제주도 발령 기간이 얼마 전에 끝이 나서 다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그것도 강남한복판으로. 집 떠나 여행을 해야 집이 그리웁듯이 저 역시 제주를 떠나니 한동안 제주 앓이로 고생을 했네요. 제주도와 서울의 거리만큼 그 생활 환경(근무환경..)의 낙차도 커서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발령받은 자의 제주살이" 글을 쓰는 것은 제 향수병을 달래기 위해서 입니다.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까 걱정도 되지만요.
제주에서 놀았던 기억을 떠올리니 벌써 심장부터 관자놀이까지 '짜르르'하면서 기분이 좋아집니다.
평일이야, 백수로 제주살이 하러 온 것이 아니라 저처럼 '발령 받은 자'일 경우에는 육지의 도시인과 비슷했어요. 어느정도는. 저녁에 퇴근을 하면 밥을 먹고 운동을 한 뒤 집에 가서 발 닦고 드라마보며 쉬지요. 가끔 기분 내서 탑동 방파제로 나가거나 이호테우 해변에 있는 카페에 가서 노닥이다가 들어오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이건 뭔가 '노는 것'은 아니죠.
철저히 제 중심으로 말하되 보고 들은 것은 약간 곁들게요. 사실 저의 제주라이프의 절반은 서핑라이프였습니다. 제주도로 지원한 가장 큰 동기가 바로 "서핑"이었거든요. 하지만 서핑에 대한 주제는 추후에 별도로 다루기로 하고, 이번엔 서핑 외 노는 것을 다뤄볼게요.
서울의 도시놀이에 최적화된 사람에게는 아무래도 제주도 주말은 따분할 거예요. 제주도에는 백화점도 없고(주말에 백화점 쇼핑하러 김포가는 사람도 많음), 클럽도 없고(중문 몽키비치 하나 있긴 합니다만 이것은 관광객용), 강남역 같은 북적북적 반짝반짝 거리도 없습니다. 어느 지방도시와 같이 "시내"에 나가거나 동네 술집, 카페에서 노는 정도이죠. 그래서 '발령받은 자'의 상당수는 주말마다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갑니다. 하지만 저는 다행히도 한적하고 여유로우며 자연과 함께하는 주말 생활이 너무 잘 맞았습니다. 서울가는 것은 한달에 한번 법무부로 업무 보고 하러 가는 것 말고는 거의 없었죠.
제주도에 살다보면 가끔 오던 여행 때와는 달리 제주도가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앞선 글("제주도로 발령받으면 어디에 사나요?" https://brunch.co.kr/@wonderboy99/21)에서 언급했듯 시공간 개념이 달라지거든요. 그래서 차가 없으면 주말에 점차 방콕이 됩니다. 유일한 대중교통인 버스가 있지만, 제주 시외로 나가는 버스는 드문드문 올 뿐 아니라 돌아가는 경우가 많아서 여간 고된 것이 아니에요. 제 주변사람들도 차가 없어 주말에 손님이 찾아오지 않고서는 집에 틀여밖혀 주말을 보내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서울에서도 주말에 친구들이랑 카페가 가듯이 제주에서도 카페에 갑니다. 다만 눈 앞은 온통 사람들 투성이고 배경음악은 웅웅거리는 기계소리와 왁자지껄한 사람소리 뿐인 서울 카페와는 달리, 바다에 있는 제주 카페에서는 에메랄드색 바다를 눈 앞에 두고 은근한 파도소리가 들려오죠. 이건 정말 말도 못하게 좋습니다. 성수기에는 관광객들이 밀려들지만 그럴 때는 로컬답게 시크릿포인트로 가죠. 들떠 있는 관광객이 아니라 여유로운 로컬답게 바다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거나 책을 읽고 있을 때면 제주에 정착하고 싶은 충동이 마구 일어납니다.
제주도가 아무리 개발이 많이 되었다고 하지만, 하늘에서 제주도를 내려보면 여전히 대부분 녹지입니다. 서울, 김포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것이랑은 완전 달라요. 그래서 그런지 제주도는 계절 변화가 시각적으로 매우 뚜렷합니다. 봄이면 노란색 유채꽃과 벚꽃이 지천으로 널려있고 여름에는 수국이 도로변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몽글몽글 피어있습니다. 가을에는 억새가 온 길과 오름을 뒤덮고 있죠. 저는 무엇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정말 똑같은 그 자리에 다른 식물들이 자라나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봄에는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펼쳐 있던 곳에 여름에는 보라빛 라벤더가 그대로 뒤덮는가하면 가을에는 사람 키만한 억새가 그 자리를 채웁니다. 이렇게 서핑하지 않는 주말이면 별 의미 없이 목적지를 정해두고 드라이브를 합니다. 가다가 괜찮은 곳 있으면 캠핑의자 펼쳐 앉아 수다를 떨거나 혼자면 맛나게 구름과자를 먹거나 하죠. 물론 이렇게 놀려면 적당히 심심한 것을 좋아해야 할 것 같아요.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앉아있는 것도 전 그렇게 좋더라구요.
가끔은 명소 투어를 합니다. 방문하게 되는 동기가 있는데요. 바로 제주도민 할인이 있기 때문이죠. 개중에는 제가 일했던 곳 근처에 "삼성혈"이 있는데요, 종종 갔었지요. 독자분 중에 칼 호텔에 머무시거나 구제주(시청쪽)에 갈 일이 있으시면 한번 꼭 가보시길. 제주의 세명의 시조가 솟아오른 구멍이 있는 곳이라서 그런지 염험하면서도 보호받는 느낌이 나는 곳이에요. 이곳도 도민할인 50%이어서 뭔가 특혜(?)받는 기분으로 매번 입장했습니다.
김영갑 갤러리도 잊지 못할 곳이었죠. 사진을 잘 모르지만 고 김영갑 작가님이 담으신 제주를 보고 있으면 '환상적'인 기분에 휩싸입니다. 분명 자연 풍경을 찍은 것인데 말이죠. 생각해보면 제주도만큼 이른바 "명소"가 많은 곳도 없을 거예요. 아무튼 제주로 발령받아 오시게 되면 전입신고를 꼭 하시길 추천합니다. 제주도가 아무래도 특별자치도이니만큼 도민이 되면 이것 저것 도움되는 것이 많아요. 신분증 뒤에 제주도 찍히는 것도 뭔가 신기하더라구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주말놀이는 외곽에 있는 "단골집"에 가는 것입니다. 이게 뭐 대수냐 라고 생각하시겠지만요. 서울 또는 여타 도시에서의 단골집과 제주 단골집은 그 느낌이 사뭇 달라요. 제주도는 기본적으로 관광지고 섬입니다. 그래서 유명한 식당이든 숨겨져 있는 보석 같은 가게이든 한번 온 손님을 다시 볼 가능성이 매우 적죠. 뜨내기 손님. 그리고 제주도가 자연적, 문화적, 역사적 등 이유로 낯선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생활인의 옷차림으로 간 곳을 가고 또가고 다시 한번 더 가면 물어봅니다. "어디서 왔수꽈" "사는 곳은 어디 있수꽈". 그 지역 사람만 아는 지역 이름과 위치를 대수롭지 않은 표정과 말투로 이야기 하면 사장님 눈빛과 표정이 달라집니다. 테두리가 확실한 문화권에서 그 "밖"에 있냐 "안"에 있냐는 생활하는데 아주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저 또한 임시도민이고 외지인이라 '안'에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뜨내기 손님과는 다르게 대해주시더라구요. 제가 워낙 특혜(?)를 좋아해서 그런지 편법으로 예약을 잡아주시거나 격하게 반겨주시거나(다른 손님에게는 무뚜뚝하게 하면서) 윙크하시면서 더 좋은 음식을 주시거나 하면 뭔가 뜨끈해집니다. 사고무친인 곳에서 그래도 나를 반겨주는 곳이 있다는 것이 생각보다 많은 위안이 되더라구요. 여러분도 제주로 발령받아 가게 된다면 꼭 단골집을 만드세요.
마지막으로, 주말에 가끔 게스트하우스를 갑니다. 물론 제주도 어디를 놀러가든 음주만 안하면 한시간 반 이내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긴 합니다만. 뭔가 다른 곳에서 잠을 자야 제대로 여행 온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제주도민으로서 게스트하우스에 가는 것은 색다른 기분이 듭니다. 별 것도 아닌데 굉장한 일탈?을 한 기분이 들어요. 제 집놔두고 밖에서 잠을 자는 것이. 제주도로 여행 온 사람들과 제주도 생활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아 내가 정말 기막힌 곳에서 살고 있구나!'하고 새삼 제주살이에 감사함을 느끼곤 합니다. 주말 게하행은 "생활"로부터 위협당하던 "낭만"을 다시하면 살아나게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