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무너지는 순간, 더 단단해졌다

2장. 엄마로, 어른으로 자라나는 중입니다

by wonderfulharu

나는 ‘삽질’을 꽤 잘하는 사람이다.


삽질.


애써 노력했지만 별다른 결과 없이 끝나버리는 일.


나는 오랫동안 그런 삽질을 성실히 반복해왔다.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자격증을 따고 학부모 활동에도 빠지지 않았다. 누가 보면 열성적이고 성실한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마음이 힘들 때마다, 하던 일에 벽을 느낄 때마다, 나는 또 다시 무언가를 배우려 했다. 새로운 자격증을 찾아 공부하고, 가족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강의를 찾아 들었다. 아이들의 학교 활동에도 어김없이 참여했다.

하지만 무엇 하나 깊이 뿌리내리지 못했다.


처음엔 열정을 쏟다가도, 다른 일이 생기거나 관심사가 바뀌면 금세 흐지부지되었다. 마치 황무지 위에 구멍만 여기저기 뚫어놓은 것처럼.


그렇게 파놓은 구멍들은 나를 점점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이런 말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너, 결국 뭘 했는데?”

“팔자 좋네, 책 읽고 강의 들을 시간도 있고.”

“네 마음대로 사는구나.”


비아냥거리는 소리는 마음에 가시처럼 박혔다. 엄마로써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스스로도 자신이 없어졌다. 남들은 자격증을 따고 취업을 하고 성과를 내는데, 나는 뭐 하나 똑 부러지게 해낸 게 없었다.


자책은 깊어졌고, 마음은 점점 말라갔다. 아무리 애써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 그리고 스스로를 탓하는 습관. 어느 날 문득, '말라죽기만 하면 되겠다'는 생각까지 스쳐갔다.


그렇게 바닥에 닿았을 때, 나를 붙잡아준 건 아이들이었다.

무기력하게 하루를 보내는 엄마를 향해, 아이들은 매일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 괜찮아?”

“엄마 힘들어?”


어린 딸들은 아무 말 없이 다가와 나를 꼭 안아주었다.

부엌에서 거실 한가운데서. 작은 품으로 전해오는 따뜻함에 나는 숨을 삼키며 버텼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다시 일어서야 한다.'


나는 그동안 파놓은 구멍들을 다시 돌아봤다. 허무하다고 여겼던 시간들이, 가만히 들여다보니 나무를 심을 만한 자리들이 되어 있었다.


책에서 배운 단어 하나, 강의에서 들었던 한 문장, 자격증 공부를 하며 익힌 작은 지식들. 그 모든 조각들이 사라지지않고, 내 안에 쌓여 있었다. 조급함에만 사로잡혀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니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생각이 달라지자 세상이 달라졌다. 내가 무력하게 바라보던 황량한 땅은, 이제 물이 흐르고 나무가 자랄 수 있는 ‘가능성의 땅’이 되어 있었다. 삽질만 해온 줄 알았던 나의 시간들이, 결국 나만의 길을 다져주고 있었던 것이다.


힘든 시간을 지나며, 나는 알게 됐다. 삽질도, 헛수고도, 모두 의미가 있었다는 걸. 성공한 결과만이 삶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지금 나는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다.


“그 삽질들, 하나도 헛되지 않았어.”
“나는 앞으로도 기꺼이,
나만의 길을 만들어갈 거야.”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엄마는 트라우마도 이겨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