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뒤처진 기분

나는 흔들리고 있었다.

by wonderfulharu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에 조금이라도 못 미치면, 마치 나라는 존재 전체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만 뒤처진 것 같았고, 나만 아직 출발선에도 서지 못한 것 같았다.

모든 걸 해낸 듯 보여도, 여전히 불안했다. 멈추면 더 뒤처질까 두려워하며 또 하루를 살아냈다.


모든 걸 해낸 듯 보여도, 여전히 불안했다. 멈추면 더 뒤처질까 두려워하며 또 하루를 살아냈다.


친구의 소개로 작은 인테리어 회사에 취업했다. 오랜만에 손에 쥔 기회였다. 이제 겨우 한숨 돌릴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도 잠시, 첫 월급이 반만 들어왔다. 회사 사정이 어렵다며, 나중에 메워준다는 말만 반복되었다.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는 어쩔 줄 몰랐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었다.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다시 취업을 하려고 애썼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대학을 가지 않은 일반고 졸업자는 어디에서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자격도, 경력도 없는 나에게 세상은 단단히 닫혀 있었다. 남은 건 아르바이트뿐이었다. 생계를 위한 일, 그러나 미래를 위한 일은 아니었다.



결국 결론을 내렸다. 안정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기술이 있거나, 대학을 나와야 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그래도 뭔가를 시작해야 했다. 그래서 무작정 수능시험에 도전했다. 따로 준비한 것도 없이 본 시험이었지만, 운이 따랐는지 서울에 있는 전문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선택한 전공은 일본어과. 이유는 분명했다. 어릴 적 일본에서 몇 년 살았고, 고등학교 때도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웠다. 당장 쓸 수 있는 무기, 나에게 남은 것은 그것뿐이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일본어 회화가 능숙했던 나는 졸업하자마자 벤처기업에 취업했다. 비록 작은 회사였지만 일을 하면서 배우는 재미가 있었고, 무엇보다 첫 월급을 온전히 받았을 때의 기쁨은 잊을 수 없다. '이제야 나도 사회에서 내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작고 확실한 성취감. 그 감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회사는 2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다시 길 위에 서야 했다.


한 번의 무너짐으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마음을 다잡았다. 이번에는 더 튼튼한 회사, 더 안정된 곳으로 가자고 결심했다. '일본어 능통자'를 찾는 중견기업이라면 어디든 지원했다. 이력서는 공들여 썼고, 자기소개서는 회사 홈페이지를 분석하며 정성껏 작성했다. 그렇게 분당에 위치한 한 중견기업에 최종 합격했다. 회사는 작지만 조직은 안정되어 있었고, 월급도 정시에 들어왔다. 내 삶도 이제 조금씩 나아지는 듯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다른 현실이 보였다. 3년이 지나도 급여는 별반 다르지 않았고, 학력에 따라 임금 차이가 확연했다. 전문대와 4년제, 그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아무리 성실하게 일해도, 출발선이 다르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결국 고민 끝에 방송통신대학교 일본학과에 편입하기로 했다. 회사를 다니며 공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야근을 하고 돌아와 강의를 듣고, 주말은 과제로 채웠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중도에 포기하는 곳에서, 나는 제때에, 그것도 성적 우수자로 졸업했다.



나는 분명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묵묵히 걸어온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 모든 과정 속에서도, 마음 한 켠의 허전함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아무리 달려도, 늘 부족하다는 감정.

아무리 해도, 어딘가 뒤처진 것 같은 기분.


우리 집의 사정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부모님은 여전히 무너진 삶의 무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엄마는 집을 잃은 충격 이후 마음의 병을 앓기 시작했고, 아빠는 대기업 부장이었던 과거를 내려놓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가족 전체가 균형을 잃었고, 나는 그 흔들림 속에서 홀로 버텨야 했다.


모든 걸 해낸 듯 보여도, 여전히 불안했다. 멈추면 더 뒤처질까 두려워하며 또 하루를 살아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이토록 불안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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