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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지마요

나는 흔들리고 있었다.

by wonderfulharu

결혼을 하고 두 딸의 엄마가 되었다. 어느날, 목이 아파 이비인후과에 갔다. 환절기라더니 병원은 이미 대기중인 환자로 앉을 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다.


역시나! 간호사가 대기시간이 1시간은 될 것이라며 친절하게 안내를 해준다. ‘그냥 약국이나 가서 종합 감기약 먹고 집안일을 빨리 끝내고 자는 게 나을까?’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주부로써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으려는 계산이 싹 지나간다. 결론은 병원 약이 약빨은 제일 좋기에 괜한 조바심을 누르고 얌전히 내 차례를 기다리기로 했다.


겨우겨우 의사선생님께 진찰을 받고 약국에서 약을 제조 받아 나왔다. 기운은 이미 바닥을 드러냈지만 마트에 들러 반찬거리를 양손 가득 사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집 현관 앞엔 택배가 산을 이루고 있었고 정리하고 빨래를 돌리고 나니 이젠 그냥 눕고 싶을 정도다. ‘약을 먹으려면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입맛도 없는데 야속하게 밥솥에 밥도 없다. 애들 밥, 남편 밥은 당연히 만들면서, 내 밥하는 건 왜 이리 귀찮은 건지.


‘나는 가족이 아프면 죽도 써주고 밤새 간호도 해주는데, 아플 때 난 혼자네...’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글픈 마음에 소파에 잠시 멍하니 앉아있었다. 가만히 있어봐야 우울하기만 하지 싶어 쓰레기도 버릴 겸 집을 나섰다. 그리고 편의점에 홀리듯 들어가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사서 나왔다.


나의 최애 조합. ‘참치김밥과 튀김우동.’


집에 돌아와 전기포트에 물을 올리고, 테이블에 놓인 삼각김밥 포장을 바라봤다.


참치마요가 참지마요로 읽혔다.


피식, 웃음이 났다.


생각해보니, 나는 늘 참아왔다. 아파도, 서러워도, 억울해도, 괜찮은 척하면서. 그러나 참는다고 사라지는 감정은 없었다. 쌓이고, 무거워지고, 결국은 나를 병들게 했다.


이제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힘들면 힘들다고 털어놓기로 했다. 누구보다 내가, 나를 먼저 돌보기로 했다.


조금씩, 천천히. 지금부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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