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엄마로, 어른으로 자라나는 중입니다
나는 첫사랑과 결혼했다. 대학 시절 만나 7년을 연애했고, 함께라면 어디든 좋다는 마음으로 결혼을 결심했다. 사랑이 라는 단어 하나로 충분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나는 유학 중이던 남편을 따라 일본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설렘과 낯섦이 뒤섞인 새로운 땅에서, 나는 첫 아이를 임신했다.
태명은 ‘보률’. 나와 남편의 이름에서 한 자씩 따 지은 소중한 이름이었다. 임신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다정한 엄마’가 되겠노라 다짐했다. 친정엄마가 다소 엄하셨던 터라, 나는 내 아이에겐 부드럽고 따뜻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드라마 속 임산부처럼 배를 쓰다듬으며 태담을 나누고, 클래식을 들으며 아름다운 태교를 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임신이란 상태 자체가 너무 어색했다. 실감도 나지 않았다. 게다가 입덧은 상상 이상으로 나를 괴롭혔다. 먹을 때는 맛있지만, 한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구역질이 올라왔다. 나는 구토 냄새가 덜한 음식을 골라가며 먹어야 했고, 일본의 달콤한 케이크는 입덧 앞에서는 괴물이 되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뱃속에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우리는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준비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냉장고도 커야겠지?” 새 냉장고도 들이기로 했다. 이삿짐을 한쪽에 쌓아두고 새 집에서의 삶을 그리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새 냉장고가 집에 도착한 날,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다. 처음엔 몰랐다. 그저 집이 이상하게 흔들릴 뿐이었다. 쌓아둔 이삿짐 상자들도 덩달아 흔들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진동에 공포가 밀려왔다. 머릿속에 떠오른 건 하나, ‘책상 밑으로 숨으라’는 학교 교육. 나는 급히 남편의 책상 아래로 몸을 숨겼다.
그러나 내 몸은 이미 평소의 몸이 아니었다. 배가 불룩하게 나온 임산부의 몸은 책상 밑에 완전히 숨을 수 없었다. 머리를 넣으면 배가 튀어나오고, 배를 넣으면 머리가 밖으로 삐져나왔다. 나는 당황했고, 뱃속 아이도 함께 긴장하는지 배가 단단하게 아파왔다.
그때, 정말 무의식처럼 말이 나왔다. “아가, 엄마가 지켜줄게. 걱정하지 마.” 떨리는 손으로 배를 감싸 안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이 내 심장에도, 아이에게도 전해지길 바랐다. 불안한 마음이 가라앉고 배가 조금씩 편안해졌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진짜 ‘엄마’가 된 기분을 느꼈다.
집 안은 여전히 흔들렸고, 핸드폰은 먹통이었다. 남편의 학교가 어딘지도 몰랐다. 남편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집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삿짐이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나는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른 채, 무작정 걸었다.
그날의 나는 평소의 내가 아니었다. 망설이지 않았고, 두려움 속에서도 판단은 냉정했다.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하나가 나를 움직이게 했다. 흔들리는 거리 위를 걷고 사람들 틈을 지나고 기적적으로 남편을 찾았다. 최악의 상황에서 우리 부부가 어떻게 만날 수 있었는지. 기적이란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지만, 그때의 나를 움직인 힘은 분명 ‘엄마’라는 본능이었다.
이 일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평범한 신혼부부였던 내가, 아이가 생기고 나서야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라는 걸실감했다. 이전의 나는 나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러나 그날 이후의 나는 누군가를 지켜야 하는 ‘엄마’가 되었다.
공포 속에서도 내가 엄마로서 한 걸음을 내디뎠던 그 순간. 그 기억은 나의 자존감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었다. 나에게 ‘엄마가 된 날’은 병원에서 아이를 낳던 날이 아니었다. 그보다 앞선, 지진이 일어난 날. 내가 내 몸 하나도 숨기지 못한채 책상 밑에서, 뱃속의 아이에게 “엄마가 지켜줄게”라고 말했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