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의 함정과 시스템 없는 성장
시스템 없는 속도는 우연이고, 시스템 위의 속도는 반복 가능한 경쟁력이다.
빠르게 가고 싶다면, 혼자 달려라.
멀리 가고 싶다면, 함께 달릴 시스템을 만들어라.
한 스타트업이 있다.
3년 만에 J커브를 그리며 매출 100억 이상을 넘겼고, VC의 러브콜도 쏟아졌으며 많은 투자금을 받았다.
하지만 구성원들은 말한다.
“우린 열심히 뛰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어요.”
이 조직은 빠르게 성장했지만, 그만큼 빠르게 흔들렸다.
의사결정은 중심을 잃었고, 일하는 방식은 팀마다 달랐다.
더 많은 사람이 들어올수록 혼란도 커졌다.
스타트업의 경쟁력은 속도다.
하지만 속도는 단순히 빠르다는 의미가 아니다.
일관된 방향으로 함께 달릴 수 있는 구조, 그게 진짜 속도다.
많은 창업자들이 시스템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스트타업에게 속도는 빠르게 성장해온 이미 증명된 성장 공식이며
시스템은 속도를 저하시키는 요소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시스템이 도입되면 복잡한 프로세스가 생기고 속도를 저하시키고
자율성과 창의성을 억누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스템은 자유를 억제하는 게 아니다.
시스템이 있어야 자율성이 작동한다.
시스템이란, ‘규칙’이 아니라 ‘기준’이다.
‘어떤 결정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내려야 하는가’에 대한 공통의 약속이다.
그 약속이 없으면 사람들은 멈추거나, 각자 다른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시스템 없이 성장하는 조직은 예외 없이 흔들린다.
특히 인원이 100명을 넘어서고 조직 구조의 복잡성이 생기게 되면 내부 곳곳에서 이상 신호가 나타난다.
① 의사결정 병목
결정권이 몇몇 리더에게 집중된다.
오히려 의사결정의 속도는 늦어지고, 책임은 불분명해진다.
② 같은 실수가 반복된다
회고는 있지만, 조직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 자체를 바꾸지만, 문제는 그대로다.
③ 중복된 일과 정보 단절
팀 간 협업보다 오해가 많고, 비슷한 일이 조직 곳곳에서 반복된다.
협업은 줄고 중복되고 비효율적인 병렬 처리가 늘어난다.
④ 사람은 늘었지만 속도는 느려진다
새로운 사람이 오게되면 일에 대한 ‘온보딩’이 아니라 속도 자체에 ‘적응’만을 강요한다.
결국 리더는 관리에 지치고, 구성원은 혼란에 지친다.
⑤ 혼란에 대한 내성이 약해진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각자 다르게 대응한다.
누군가는 과하게 보고하고, 누군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많은 조직이 위기를 겪고 나서야 시스템을 만든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다.
Barry Oshry는 『Seeing Systems』에서 이렇게 말한다.
“조직이 스스로 구조를 설계하지 않으면, 구조는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는데 그건 대부분 비효율이다.”
시스템은 위기 대응이 아니라 위기 예방 장치다.
모든 일을 매뉴얼로 만드는 게 시스템의 목표가 아니다.
다만 반복되는 업무, 판단, 협업의 기준만큼은
구성원 모두가 같은 맥락에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빠른 속도 위에 지속 가능성을 더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자율과 시스템은 충돌하지 않는다.
시스템이 있어야 자율성이 가능하다.
시스템이 없다면, 자율성은 곧 방임이 된다.
구성원은 자신의 결정에 책임지기를 두려워한다.
실패를 피하기 위해 보고는 늘어나고, 실행은 느려진다.
조직의 속도는 사람의 역량이 아니라,
그 역량이 오작동하지 않도록 잡아주는 구조에 달려 있다.
1. 사용자 중심
시스템은 경영진이 아니라, 실제 일하는 구성원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조직에 뿌리내린다.
2. 반복 가능성
좋은 시스템은 두 번째 실행이 더 쉬워야 한다.
누구나 예측 가능하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3. 정답보다 일관성
시스템의 목적은 ‘최선의 답’이 아니라 ‘일관된 판단’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4. 살아 있는 구조
시스템은 업데이트되어야 한다.
실행→회고→개선의 루프가 없으면, 시스템은 곧 장애물이 된다.
좋은 시스템은 티가 나지 않는다.
회의가 줄고, 오해가 줄고, 질문이 줄고, 실행이 자연스러워진다.
• 문제 해결이 빠른 팀은 시스템이 있기에 가능하고
• 온보딩이 짧은 조직은 시스템으로 문화를 설명하며
• 자율성이 높은 팀은 시스템 위에서 움직인다
시스템은 사람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더 잘 움직일 수 있도록 바닥을 평평하게 만들어주는 구조다.
스타트업은 속도를 믿는다.
하지만 속도만으로는 조직을 지탱할 수 없다.
속도는 시스템이 있을 때만 전략이 된다.
시스템 없는 속도는 우연이고,
시스템 위의 속도는 반복 가능한 경쟁력이다.
빠르게 가고 싶다면, 혼자 달려라.
멀리 가고 싶다면, 함께 달릴 시스템을 만들어라.
Reference
• Edmondson, A. C. (2019). The Fearless Organization. Wiley.
• Oshry, B. (2007). Seeing Systems: Unlocking the Mysteries of Organizational Life. Berrett-Koehler Publish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