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없는 조직은 멀리 가지 못한다
모든 조직은 실수를 한다.
실수는 관리의 대상이 아니다.
실수는 학습의 시작이다.
실패 없는 조직은 안전하지만, 성장이 정체되고 결코 멀리 가지 못한다.
한 스타트업 CEO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저희 조직은 실수가 거의 없어요. 안정적이고, 다들 계획대로만 움직이죠.”
그는 조직이 성장했고 성숙해졌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걱정스러웠다.
실수가 없다는 것은 ‘모든 걸 잘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아무도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수는 언제나 불편하다.
성과와 리스크 사이에서 우리는 언제나 “안전하게 했던대로 해내자”는 유혹에 빠진다.
하지만 실수를 피하다 보면 우리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게 된다.
질문하지 않는 조직은 도전하지 않고,
도전하지 않는 조직은 학습을 멈춘다.
많은 리더가 실수를 줄이는 것을 ‘관리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질문은 그 반대에 있다.
“우리 조직은 어떤 실수를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 실수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줄 수 있는가?”
어떤 조직은 “실수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실수가 일어났을 때 팀원들은 불편한 눈치를 본다.
회고가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실수를 지적하기보다는 ‘다음엔 잘하자’는 말로 넘어간다.
실수는 곧잘 ‘누구의 책임인가’를 찾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조직은 점점 실수를 감추는 법만 더 잘 알게 된다.
이런 문화에서는 구성원이 새로운 시도를 하려 하지 않는다.
문제를 회피하고, 피드백은 방어적으로 바뀌며,
팀은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집단이 된다.
실수에 대한 문화는 실수해도 괜찮다는 말이 아니라
실수가 발생한 결과에 대한 구조와 행동 그리고 평가로 드러난다.
실수를 이야기해도 불이익이 없고,
실수로부터 배운 점을 명확히 공유하며,
그 실수가 다음 실험에 적용될 수 있을 때,
그 조직은 진짜로 실수에 관대하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실수가 성장을 이끌지는 않는다.
실수는 그 실수의 ‘질’과 ‘타이밍’, ‘해석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든다.
성장으로 이어지는 실수는 잘 설계된 도전에서 발생한다.
반면, 반복되는 실수는 구조적 결함 혹은 습관적 미숙함에서 비롯된다.
실수의 본질을 구분할 수 없는 조직은
도전과 부주의, 혁신과 태만을 구분하지 못하고,
결국 실수를 두려워하거나 방임하게 된다.
4. 세 가지 실수: 엉성한 실수, 깨달음의 실수, 확장 실수
실수를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이 단순한 분류는 조직이 실수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준점이 된다.
4-1. 엉성한 실수 (Sloppy Mistake)
– 이미 할 수 있는 일을 놓쳤을 때 발생하는 실수
엉성한 실수는 개인의 태도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직 구조와 일하는 방식의 문제일 수 있다.
이 실수는 보통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발생한다.
• 우선순위가 명확하지 않고
• 동시에 여러 업무를 병렬적으로 진행하며
• 반복되는 루틴 업무가 집중력을 떨어뜨릴 때
엉성한 실수는 재미없는 실수다.
조직을 성장시키지도 않고, 교훈도 크게 남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 실수가 반복된다면,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조직이 피로하고 혼란스러운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따라서 이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단순한 교육보다
일의 설계 방식, 업무의 흐름, 기대 명확성을 먼저 점검해야 한다.
4-2. 깨달음의 실수 (Aha-Moment Mistake)
– 실수를 통해 관점을 바꾸는 경험
깨달음의 실수는 예상하지 못한 오류나 실패를 통해
기존의 생각이 바뀌거나, 새로운 전략적 통찰이 생기는 경우다.
예를 들어:
• 한 소비자 대상 마케팅 기획에서 ‘우리가 타겟이라고 생각한 고객층’이 전혀 반응하지 않았고
• 그 실패를 통해 우리는 진짜 고객이 누구인지를 다시 정의하게 된다
이런 실수는 ‘실패했기 때문에 나쁜 것’이 아니라,
실패 덕분에 더 정확한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의미 있는 실수다.
이 실수를 조직이 잘 활용하려면, 다음과 같은 구조가 필요하다:
• 실수 이후의 팀 회고(After Action Review)가 존재하고
• 실수의 원인보다 배운 지점에 집중하는 피드백 문화가 있으며
• 실수가 다음 실행에 구체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조직적 메모리 시스템이 존재할 것
깨달음의 실수는 실수를 ‘결과’가 아니라 ‘통찰의 기회’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시작된다.
4-3. 확장 실수 (Stretch Mistake)
– 한계에 도전하는 실수, 우리가 의도해야 할 실수
확장 실수는 우리가 아직 해본 적 없는 어려운 과제에 도전하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실패다.
예를 들어, 새로운 시장 진입 전략을 설계했지만
기대했던 반응이 없었고, 실행 과정에서 중요한 변수 하나를 간과했다.
이 실수는 의도된 도전 안에서만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실수는 ‘해봤더니 안 됐다’가 아니라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경험하고, 그 한계를 학습하는 실수’다.
Stretch mistake는 다음 조건이 갖춰졌을 때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 실패 가능성을 조직이 사전에 알고 있고
• 실패했을 때 비난보다 학습이 일어날 수 있는 문화가 있으며
• 실패를 해석하고 기록하고 다시 실험할 수 있는 여유가 존재할 때
이 실수는 조직을 성숙하게 만들고, 구성원을 리더로 성장시킨다.
많은 리더가 실수가 일어났을 때 “왜 그랬는가?“를 먼저 묻는다.
하지만 더 좋은 질문은 이것이다.
“이 실수는 어떤 종류의 실수였는가?”
“그리고 이 실수를 통해 무엇을 배웠는가?”
리더는 실수를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다.
실수를 해석하고, 실패를 경험으로 바꾸는 프로세스를 설계하는 사람이다.
• 엉성한 실수에는 기준을 명확히 하고, 리듬을 정리해야 한다
• 깨달음의 실수에는 토론과 문서화가 필요하다
• 확장 실수에는 심리적 안전감과 피드백 루프가 필요하다
리더가 실수의 프레임을 바꿀 때, 구성원은 실수를 ‘두려워할 대상’이 아닌
‘학습과 도약의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실수를 조직 내에서 학습 가능하게 만드는 데는 몇 가지 구조적 조건이 필요하다.
6-1. 실수를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
• 회의에서 ‘문제를 발견한 사람’을 칭찬하는 문화
• 실수 공유가 평가와 연결되지 않는 구조
• 리더 역시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먼저 말할 수 있는 안전지대
6-2. 실수 이후의 ‘해석 시스템’
• 실수는 무조건 회고되고 문서화된다
• 실수는 사건이 아니라 문제 해결의 조건으로 다뤄진다
• 실수 이후의 의사결정이 기록되고 반영된다
6-3. 실수로부터 ‘다음 실행으로 이어지는 구조’
• 실패한 프로젝트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도의 출발점
• ‘배운 점’을 다음 실험에서 반드시 검증하도록 루프 설계
• 실수에 대한 회고가 퍼포먼스 리뷰보다 빠르게 돌아온다
이 세 가지가 갖춰지면, 조직은 실수에 관대해지는 것이 아니라
실수에 정교해지고, 실수로부터 빨라지는 조직이 된다.
실수는 전략적이다.
그리고 그 전략은 실수를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설계하고 해석하며 다음 실행으로 연결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실수를 줄이는 조직은 단기 성과를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실수를 설계하는 조직만이 장기적인 학습과 민첩성, 성장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