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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혜숙 Jan 18. 2023

카렐 차페크 정원가의 열 두달


정원 한쪽에 오이, 상추, 부추 씨를 뿌렸다. 콩, 감자, 마늘, 당근, 토마토를 심었다. 내내 기다린다. 잔 자갈이 툭 불거지고 파삭하게 마른 땅에서 무럭 무럭 자라길을 바라면서. 상추는 싹이 나오자 달팽이가 제 정원에서 뜯어먹듯 싹 먹어 치웠고 부추 싹은 감감 무소식. 당근은 좁다란 게 새끼손가락보다 더 가늘다. 다시 심어놓으면 클까 엉성하게 다시 쑤셔 넣었다. 마늘은 겨우 늘씬하게 올라가더니 마늘 쫑만 굵어져서 하늘하늘한다. 거친 환경에서 감자와 콩은 자랑스럽게 자라더니 풍성한 과실을 맺었다.


긴 여행을 마치고 내 집에서 부모님이 쉬던 날, 사돈 어른과 아버지는 정원에 나갔다. 어떻게 가지 치기를 하는지 몰라 내버려둔 자두 나무 가지치기를 하신다고 여든 아버지가 사다리에 올랐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썩은 가지를 잘라내고 걷어냈다. 아래에서 사돈 어른은 사다리를 잡고 작게 가지들을 정원가위로 토막냈다.  

“나무를 아예 베려놨어.”

“나무를 방치했죠.”

“이거, 밑에 거름도 주고, 버섯도 없애고 해야 해. 봄에 가지가 나면 죽은 건 더 치고, 또 과일도 열리면 몇 개는 따주고.”

평생 농부로 산 아버지는 나무를 본 순간 어떤 상태인줄 진단하고 처방전을 내렸다.


카렐 차페크 식으로 아버지는 농부의 품성을 가졌다. 마을 갓길에 거름 무덤은 콤콤한 냄새를 풍기고, 비가 오면 누런 물이 고이어 빗물에 묽어지며, 길 이곳 저곳을 웅덩이로 만들었다. 그 거름에는 소마구에서 푼 질퍽한 소 똥과 1년 묵은 짚이 잘 섞였다. 땅이 녹는 봄이 되면 아버지는 그것들을 경운기로 실어날라 부지런히 밭과 논에 거름을 줬다. 거기다 화학 비료도 듬뿍 뿌린다. 비가 안 오면 물도 주고, 작물에 따라 가지 치기도 하고, 잡초도 뽑고, 한 번씩 시간 날 때마다 들과 논을 둘러본다.



아버지는 작물을 잘 가꾸려면 노동이 근간임을 그것이 자기 자식의 입과 몸을 풍성하게 함을 체득했다.  

나는 심어만 놓고 가꿀 줄 몰랐다. 거름도 주지 않고 물도 제때 뿌리지 않아 땅이 쩍쩍 갈라 붙게 하고 거기에 달린 과실에만 눈독을 들이는 게으른 정원사. 토마토는 비에 약하고, 오이는 작대기로 줄기를 받쳐줘야 하고 감자는 두둑을 높이 만들어야 한다는 작목별 특별관리를 알아가지만 한창 부족한 정원사. 달린 과일을 먹기만 하고 꽃이 피면 그것으로 잘 살아있구나 생각했던 무심한 정원사.



부모님은 나 대신 청소하고 밥하고 나무 가지를 쳤다. 자식에게 더 주되 부담은 덜려는 부모 마음을 느꼈다. 그들의 사랑에서, 흙에는 좋은 퇴비가 필요하고 과실에는 햇빛과 물이 충분해야 하듯, 나 자신에게도, 가족과 친구에게도, 거름 같은 사랑을 주고 마음을 보듬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워간다.



표면적인 의미보다 사물의 이면이나 측면, 그것과 연결된 다른 것까지 연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 편협한 관점을 넓혀주고, 무엇보다 자잘한 것에 대한 우리 집착과 욕망을 누그러뜨려서 내가 무시했던 세상, 생각해보지 않은 세상을 보여주는 그런 책을 좋아한다.


<정원가의 열두달>은 이렇듯 자신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정원가의 열 두번의 달 중에서 12월, 준비 한달이 대미를 장식한다.  


식물들의 배관시설, 뿌리가 11월부터 아래로 옆으로 힘차게 뻗어나가고 딱딱한 땅 속에 싹을 피운다는 이론은 카렐 차페크가 관찰한 주관적인 이론에 불과해도 쉽게 설득 당했다. 과연 그렇구나. 그리고 가을과 겨울이 잠자는 것이 아니라. 3월을 위한 준비라는 것. 뭐야, 자연은 쉬지도 않나? 그런 생각 대신, 쉼없이 준비를 하는…불꺼진 간판 뒤, 가게의 모습이 얼마나 살아있는가. 자연은 생동적이어야 하고, 그 쉼은 짧아도 상관없다.(아무래도 쉬는 기간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접하기 전에 읽었던 발췌문이 독서 후 카렐 차페크가 그린 전체 그림에서 마지막 중요한 조각, 화룡정점 같다.


“우리가 무엇을 딛고 있는지 알기 위해선 작은 화단 하나는 가꾸며 살아야 한다.”<정원가의 열 두달>


우리가 딛고 있는 것을 카렐 차페크는 땅, 흙, 대지라고 한다. 기계로 작물을 가꾸는 대농이 될 필요는 없고, 단 한 평의 혹은 작은 화분이라도 가꿔야 생명이 주는 기쁨, 그것이 뿌리내리고 있는 기본, 땅에 대한 신성함을 느낀다. 우리라는 주체가 아니라, 그 아래의 땅, 우리의 근본, 삶을 지탱하는 다른 모든 것에 대한 시선 돌림. 그것이 이 책의 의미이다.



<대지>와 <야생초 편지>와 닮았다. 현대인은 지나치게 이기적이지 않는가. 그것도 나와 너가 아닌, 좁고 좁은 한 평도 안 되는 화분 안에서 나, 라는 존재의 이익만을 바라보지 않는가. 동양 철학에서는 나부터 시작해서,,, 라고 시작해서 그 다음 타인과 다른 존재에 대한 사랑을 말한다. 나에서 끝나지 않고 너로 그리고 내가 디딘 땅까지로 사유를 확장한다면 우리는 좀더 관용적이고 사랑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높은 산에 오르고, 너른 바다를 보고, 일몰과 일출을 보고, 깊은 동굴 속에 들어가면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에 입이 저절로 벌어진다. 그 감탄에서 우리는 우리 일개의 인간의 작음을 느낀다. 우리가 뿌리내린 일상은 자연의 웅장함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작고 의미 없고 허무해지기까지 한다. 그때 우리 마음 속에서 작은 변화가 일어난다. 화내지 말고, 좋게 살아야지. 나 말고 타인도 이 세계를 위해 일을 해야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시멘트 건물 틈 사이에서 풀 한포기가 살아나듯 척박한 마음에 ‘자연’을 넣어야지.

정원가의 다른 열 두달 중에서도 정원가의 8월, 정원가의 11월, 준비가 재밌다.

재밌고 교훈적인 부분이 많지만, 한 쪽을 인용해본다.

“시계가 고장 나면 우선 뜯어보고, 그래도 안 되면 시계 수리공을 찾으면 된다. 차가 먹통이면 엔진 덮개를 열고 각종 부속품을 만지작대다 안 되면 정비소로 향한다 이처럼 세상 모든 일은 어떤 식으로든 손쓸 방도가 있건만 날씨만은 우리가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 그 어떤 열정, 야망, 획기적인 기술, 참견, 협밥과 욕설도 통하지 않는다.

때가 되면 싹이 틀 것이요 봉오리가 터질 것이니,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인간의 무력함을 겸허히 인정할 수밖에. 머지않아 인내는 지혜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정원가의 열두달>정원가의 3월 中


카렐 차페크의 재치 가득한 입담, 풍자에다 인생 진리까지 줄줄이 이어지는 논리구조는 잘 늙은 옆 집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순풍같은 이야기다. 간지럽고 듣기 좋다.

 

정원의 열 두달. 그의 열 두달은 스무 네 달이면 좋겠다.

그의 정원을 더 들여다보고 정원가의 궁시렁거림을 더 들어보고 싶다.

그의 다른 책을 읽어볼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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