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더혜숙 Feb 19. 2024

아무튼, 떡볶이

비 오는 날에는  튀김이 생각났다. 그럼 떡볶이를 먹어야 목이 덜 막히지 않으니깐, 순대는 없으면 섭섭하니깐. 우리는 공부하려던 계획을 덮고 대학교 정문 앞 포장마차에 달려갔다. 떡볶이가 그렇게 특별한 음식이 아닌 게 된 것은 아마도 대학생이 되기부터였을 거다. 학교 앞에는 매일 떡볶이 포장마차가 있었고 어느 날에는 튀김을 또 다른 날에는 순대를 떠올리다 떡볶이까지 먹게 되었다. 그 떡볶이는 튀김과 순대의 부속물처럼 느껴졌다. 

시간을 거슬러 오르면 떡볶이 자체만을 즐겼던 적이 있었다. 그 시골 여고 앞에 무슨 핫한 곳이 있을까 하지만, 그런 시골에도 소문나고 잘 하는 집들이 하나씩 있게 마련이었다. 그곳이 바로 김가네 분식. 지금은 흔해 빠진 집 가 자에 지붕을 그린, 베이지색 바탕에 검정 글자의 간판이었다. 문학소녀 유진이와 보경이, 친했던 애라와 조용한 영이와도 가끔씩 갔던 곳이다. 

 

점심시간에 가면 줄을 서야 했다. 테이블 네 개는 언제나 여고생들로 가득 차 있었으니, 그때의 소문난 맛집이었다. 그 집은 김밥도 맛있었지만 떡볶이가 메인 메뉴였다. 떡볶이에 라면 사리를 올리고 삶은 계란이 올려져 있었다. 큰 도시에는 이미 있었을 법한 그런 조합을 처음 경험했던 여고생은 거기에 열광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어쩔 때는 두 번씩도 거길 갔다.  

그 집 떡볶이는 이제는 백화점 푸드 코드에서 보통 쓰는 쟁반 크기의 접시에 떡볶이 국물이 흘러내릴 만큼 듬뿍 담겨 나왔다. 나는 떡볶이 떡보다, 내 입에 익숙한 라면 사리와 녹색 노른자가 김이 모락 나는 흰자 표면에 투명하게 비칠 때면, 침이 꼴깍 넘어갔다. 포크를 먼저 잡고, 앞 접시를 대령한 후에 탁자에 접시를 내려놓기 무섭게 포크질을 하는 것이다. 

아, 그 위에 올려진 깨! 가 빠지면 곤란하다. 라면 사리를 다 덜어 먹고 나면 한쪽에 빠져 있던 떡볶이 국물에 졸인 라면을 먹는 맛도 좋았지만, 항상 라면 사리가 먼저 동이 나고, 그다음이 계란, 떡볶이 순이었다. 떡과 계란 반 쪽, 노란 단무지 하나를 한 입에 넣고 나면, 그날 모의고사에서 수학 문제 한 장만 풀었다는 사실을 잊었다. 또 며칠 후에 볼 기말고사는 그냥 저 기억 너머로 사라졌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치매처럼 잊는다. 

그것에 비하면 대학 정문 앞에서 먹는 그 떡볶이는 참 초라했다. 가격은 쌌지만 서서, 누추한 빨간 플라스틱 포장마차에서 빗물이 바닥에 톡톡 떨어졌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떡볶이 옆에 빈 사각 냄비에 아주머니가 물을 채워 넣고 다시마 고추장을 넣고 떡을 둥둥 띄웠다. 포장마차 뒤로는 4차선 도로, 길에는 차들이 쌩쌩 달렸다. 포장마차 좌우로는 자전거가 줄줄이 세워져 있고, 정차한 좌석 버스에서 대학생들이 무더기로 내렸다.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자, 학생들이 서둘러 큰 길을 건넜다. 어떤 이는 뛰고 어떤 이는 걸었다. 빵빵 거리는 소리, 사람들의 말소리가 섞여 들었다. 

대구 은행의 파란 간판이 비스듬하게 보이고, 학교 정문을 통해서 압량벌의 찬 바람이 바지 밑으로 들어왔다. 봄이었다. 봄비였는데도 봄비가 나를 촉촉이 적셔 주기보다는 그렇게 처량한 날씨에 그냥 그저 그런 감정에 똘똘 포장되었다. 플라스틱 흰 포장 용기에 벌건 떡볶이 국물이 성의 없이 썬 내장과 간이 포장된 것처럼. 나는 어느 배고픈 대학생의 손끝 비닐봉지에 덜렁거리면서 어디론가 갔다. 당면만 들어간 도시 순대, 물 건너왔을 고춧가루로 만든 고추장, 제조 공장을 알 수 없는 도시의 떡볶이 떡은 찰기가 없었다. 그걸로 내 영혼을 채울 수 없었다. 그 찬 강의실 바닥에 앉아서, 나는 그것도 음식이라고 뜨거운 것이 입에 들어간다고 내장이 흥분하는 소리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시골에서는 소박하지만 속이지 않는, 속여도 내가 아는 영역에서는 그 좁은 것이었다. 도시에는 내가 모르는 낯선 세계의 덩어리였다. 나는 그 짐승 같은 예민한 촉기로  미지의 세계를 시종 두려워하고 있었다. 음식에도 영혼이 비었지만, 사람들 사이도 비었다. 누구도 자기 진실을 내어주지 않으려는 그 이기들의 다툼 속에서 나는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경험했다. 그것은 비만 오면, 축축하게 내 마음을 적셨고, 나는 그 국물 많은 떡볶이 국물과 흐물흐물한 떡, 동물의 내장으로 내 진짜 내장을 달래지 않을 수 없었다. 내장부터 진실한 것이 익숙한 내게 도시는 빈 것을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빈 것들 중에서 찬 것이라는 막대한 도시의 개념은 내게 컸다. 그래도, 비밀 봉지에 담긴 것을 꺼내 먹고 나면, 또 친구 혁이와 연지와 수다를 떨고 나면 나아졌다. 빈 속에 들어가는 약간의 따뜻함과 빈 마음에 들어온 진실한 마음이 조금씩 나를 그 낯선 세계에서도 살아갈 힘을 주었다.

작가의 이전글 가을 조깅 복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