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에 대한 기억
그는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보다는 개, 미친놈, 학교체벌의 신이라고 불러야 마땅했다. 그러나 누구도 그 진실을 감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학생들은 너무 무서워 벌벌 떨고, 자신에게만 그 폭력이 미치지 않기를 바랐다. 음악 시간에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조용히 넘어가기를 기도하는 여리박빙 같은 시간을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겪었다.
나는 상아색 리코더를 불고 있었다. 음악 선생님이 지난주에 내준 숙제였다. 양선영, 남순이가 옆에 앉고 주희는 앞 줄에 앉아 있었다. 음악실은 시골 학교에서 보기 드문 멋진 신식의 건물이었다. 음악 선생님이 공개 채용이 없이 중학교에 들어온 것을 보면, 돈이 좀 있는 집안의 자손일 게라는 게 소문의 핵이었다. 학교 본채에서 신발을 신고 1분이지만, 양지바른 빈터에 세운 그 건물은 그 당시 최신식의 벽돌을 써서 지어졌다. 핑크 소시지 색의 벽돌과 줄 눈은 흰색으로 마감했다. 현관에 오르기 전에 선생님이 유리 현관 문을 열기를 기다렸다. 반질반질한 화강석 바닥과 계단에서 쭈그려 기다리다 들어갔다.
교회처럼 기스 칠을 한 갈색 길다란 벤치가 병렬로 진열되어 있고 앞에는 무대가 있었다. 학교 관혁악단이 무대에서 연습을 했다. 악기를 연주하지 않은 내가 거기에 오를 일은 없었지만, 수업마다 음악 선생님은 거기 서서 무섭게 우리를 내려봤다.
며칠 후 리코더 기능 평가가 있었다. 중간 평가에 앞서 모두들 긴장하며 연습을 하고 있었다. 재용이는 우리 학년에서 소문난 장난꾸러기였다. 교실에서 테니스 공을 던지다가 튀어서 그만하라는 여자애들에게 혀를 내밀고 더 심하게 장난을 쳤다. 재용이는 숙제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은 관현악단에서 클라리넷을 불던 정지훈과 공부를 못하던 성훈이도 숙제를 해 오지 않았다. 보통은 그런 사소한 일이었다. 수업 중에 약간 떠든다든지 숙제를 하지 않아서 남자아이들은 불려나갔다. 그게 큰 실수이거나 그런 후과로 이어질 것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알았지만, 그걸 예측할 수 없었다. 그게 가장 두렵고 무서웠다.
“야, 또 시작이다.”
선영이가 속삭였다.
“오늘, 너거들이 또 내가 움직이게 만들제.”
음악 선생님, 조경래였다. 그는 키가 작았다. 검은 안경테를 썼다. 눈이 서글서글하게 컸다. 작은 코가 검은 안경테 아래에 눌렸고, 간혹 그 안경테를 올리면 두터운 빨간 입술만 보였다. 그 말을 할 때 그의 불평스러운 볼이 처지고 두꺼운 입술이 소시지 포장지를 열면 나오듯 튀어나왔다. 그는 그의 큰 눈을 사천왕상처럼 부라렸다.
조경래는 작은 체구에 늘 양복을 입었다. 때로는 고동색을 때로는 회색을. 그날은 간혹 아이보리 점이 보이는 고동색 양복을 입었다. 우리의 눈이 무대의 악역 선생님에게 집중될 때 그는 양복 재킷을 벗었고, 와이셔츠 단추를 끄르고 소매를 접어 올렸다. 그의 입이 더 튀어 나와 있었다.
우리는 그런 일에 익숙했다. 어느 반에 누가 얻어맞았다. 밀대가 두 개나 부러졌다. 북 채가 부러졌다는 소문이 전교에 무성했기 때문이다. 반에서도 특히 공부를 못하고 음악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는 성훈이나, 종훈이 같은 애들이 그의 희생자가 되었다. 그날은 재용이와 지훈, 성훈이었다. 그들은 숙제를 해오지 않은 일로 선생님에게 끌려갔다.
“너희들은 여기서 연습하고 있어.”라고 말하고 걸어가면서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뭔가를 찾는 것 같았다. “아 씨, 쓰려고 하니 안 보이네. 야, 성훈이 너, 밀대 찾아와. 없으면 다른 반에 가서 빌려 와. 그게 교육을 받을 사람의 바른 자세가 아니겠니?”
남학생들은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고 선생님을 뒤따라 갔다.
성훈이는 밀대를 가지고 음악 건물 뒤꼍으로 선생님의 실루엣을 밟지 않으며 다가갔다.
먼저, “엎드려 받쳐.” 조경래는 걸레를 뺀 걸대로 학생들의 엉덩이를 내리쳤다. “으악.” 하는 소리가 음악실에까지 들려왔다. 우리는 리코더를 불고 있었다. 우당탕하는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러 갈 용기는 없었다. 보러 나갔다면 우리 반 전체가 기합을 당할 게 뻔했다.
십 분 후, 선생님과 남자 애들은 똑같이 얼굴이 벌게져서 음악실에 돌아왔다. 아이들은 엉덩이를 문지르고 얼굴을 찡그렸다. 조경래는 운동을 하고 온 것처럼 땀을 흘렸고, 그 오묘한 기분에 들었는지 눈이 반짝거렸다.
조경래가 대학에서 어떤 음악을 전공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는 시골 중학교에서 관현악단을 꾸리고 연습시키고 군을 돌아다니며 연주회까지 하는 집념이 있었다. 그는 열정적으로 관현악단을 지휘했다. 그런 집념이 아이들을 때리는 일에 쓰일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이, 그의 오락가락하는 기분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특히 그가 걸대를 휘두르고, 다시 용수철처럼 튕겨서 부러진 밀대를 주워 남자 애들의 엉덩이에 가격할 때 쓰는 것일지도 전혀 몰랐다.
그런 일은 거의 매주 한번 있었다. 우리는 그걸 누군가에게 알릴 수도 없었다. 그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서 숙제를 했다. 선생님이 알려 준 것을 잘 하는 것, 그것만이 그 악마의 손을 벗어나는 길이었다.
조경래는 그렇게 애들을 패고도 해고되지 않았다. 그런 소문이 나고도 정직 명령은 없었다. 그 배후에는 누군가가, 아니면 돈이 있었을 거라고 학생들은 뒷말을 했다. 그런 일이 시골에는 있었다. 우리는 그게 너무 두려워, 지금까지 그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어린 우리는 선생님이라는 어른들과 그 권력의 그림자를 진 존재에 대한 공포를 그때부터 알고 있었다.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당했다. 묵묵히 참았다. 힘이 없었으므로, 그게 당연한 줄 알았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