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눈물
무슨 일이 있어도 여자는 눈물을 보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건 연약한 여자나 하는 짓이라고 창피한 짓이라고. 그러나 어제도 여자는 남자와 말다툼을 하고 울었다. 그런 자신이 싫었다. 눈물을 닦으면서 이번만은 눈물을 참거나 감추지 않았다. 어릴 때 혼자 이불속에서 서러움에 받쳐 울었던 그 감정으로 울었다. 흐르는 눈물을 그대로 두었다. 이번만은 스스로 약하다는 걸 인정하기로 다.
여자는 오란처럼 과묵하다. 자신을 욕구를 참고 내어주며 자기 차례가 오기 기다리다 그래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으면 억울해서 서러워서 눈물이 되었다. 여자는 억하 심정이 꽉 차기 전에 풀면 좋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 역부족. 여자는 좌표를 자주 잃었고 그래서 또 울었다. 아직도 코끝에 슬픔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여자는 남자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다. 남자가 거실에 들어서기 전에 컴퓨터에서 손을 뗄까 잠시 고민했다.
여자는 며칠째 남자의 시선이 신경이 쓰였다.
“너는 네 세계에만 있는 것 같아. 아이들 좀 신경 써.”
남자는 그날 아팠고 진심이었다.
남자는 거실로 들어와 여자를 보자마자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또 거기 앉아 있네.”
남자는 컨디션을 회복했고 농담조로 말했지만, 여자는 그의 진심과 그것에 대한 며칠 간의 심리적 부담을 떨치고 싶었다. 여자는 있는 시간 전부를 투자해 뭔가를 이뤄내고 싶은데, 뭔가 조금만 더 하면 뿌듯하고 좋을 것 같은데, 그런 의욕이 갔다 돌아오는데, 그런 날은 온통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싶다.
“당신은 회사에 가서 일하니 내 눈에 안 보이지만 나는 여기서 일을 하니 계속 이것만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아예 3층으로 올라갔어야 했어.”
“아니, 그러면 당신이 아예 우리랑 같이 있는 게 아니니깐 싫어.”
남자는 일만 하는 여자를 보는 게 싫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는 어떻게든 여자가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 그 자리에 있으면 좋겠다. 반면, 여자는 남자가 그 자리에 없었을 때를 생각한다. 처음에는 그렇게 남자를 비난하고 함께 있어 달라고 애원했다. 이제 여자는 그럴 필요가 없다. 자기에게만 시간을 투자하기에도 바쁘다. 하루 일과를 전부를 자신의 일로 채우고 싶다. 요리도 마지못해 한다. 아이들이 오기 전에 라비올리를 사서 샐러드도 없이 대충 주고, 숙제를 봐줄 때도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청소나 빨래도 끝까지 미뤄서 했다. 그런 것까지 상관하는 남자가 아니니 여자는 그게 고마웠다.
남자는 왕룽처럼 성실하다. 여섯 시에 나가서 저녁 여섯 시에 온다. 주말에는 조만간 방문할 부모님을 위해서 3층 방 벽지를 떼어내고 페인칠을 하고, 아이들과 놀아줄 수 있으면 놀아준다. 점심을 먹고 반 시간 낮잠을 잔다. 그것만으로 달갑고 감사하는 그가 여자는 고마웠다. 그런 남자가 여자를 웃는 얼굴로 비판했다.
-당신은 컴퓨터로 글 쓰는 거 아니면 책을 읽거나 아님 핸드폰을 보고 있어.
-당신이 오면, 아이들을 좀 봐줄 거고, 낮 동안 못 끝낸 글 쓰고 책을 읽는 것도 안돼?
-평일에는 우리가 볼 시간이 없고, 주말만 보면 내게는 토요일에 아이들이랑 저글링 갔다 오면 글 쓰고 있고 일요일 내가 3층 보수할 때도 글 쓰는 건 지나치지 않아?
-내가 직장이 있었으면 좋았을 걸. 그럼 내가 일하는 걸 당신이 안 봤을 거 아니야. 돈도 벌었을 테고….
-내가 만약에 주말에도 일을 한다고 하면? 당신도 내가 일을 너무 많이 한다고 생각하겠지.
-실제로도 당신, 토요일 근무도 하지만 그래서 내가 불평한 적 없지. 당신 일이 많아서 내가 당신에게 도와달라고 그릇 좀 치워달라고 한 적도 없고. 그저 힘들까 봐, 당신 생각해서 일을 바꾸면 어떻겠냐고 물었지. 그건 나를 위해서가 아니야.
-그런데 당신은 프리랜서 아니야. 시간 조율이 가능해. 주말만은 쉬어도 되고.
남자는 며칠 전에 감기로 집에서 쉬었다. 그가 하루 종일 핸드폰을 하든, 티브이를 보던 여자는 잔소리하지 않았다. 불쌍한 당신, 이라 하며 그의 마음이 편하게 해 주며 필요한 걸 물었다. 여자는 그가 아프면 마치 그의 잘못인양 짜증 냈던 옛날 자신을 생각하며 마음이 가벼운 걸 느꼈다. 그날도 여자는 남자가 지켜보더라도 평소대로 쓸 수 있는 대로 글을 쓰고 조깅을 하고 책을 읽었다.
-당신이 그렇게 나를 몰아세우는 게 싫어.
여자는 자유롭게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싶다. 남자는 여자가 자기만의 세계에만 있는 것 같다. 남자는 여자를 현실로 돌려놓고 싶다. 여자가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길 바랐다.
여자는 남자를 비난하거나, 그가 핸드폰을 많이 한다고 그가 빨래를 하지 않는다고 비난한 적이 없다. 옛날 적어도 2년 전에는 그랬겠지만 최근에는 전무하다. 남자는 그런 사실이 이제 소록소록 떠오르나 보다.
-나는 당신이 가끔 나를 지적해주면 좋아. 나한테 관심 있다는 뜻이니깐. 내가 현실로 돌아오게 하니깐.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니까.
여자는 남자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토요일은 저글링 공연으로 도시락 챙기기, 장보기 등 남자의 요구를 아무 불평 없이 들어줬다. 그가 일찍 오겠다는 말을 지키지 않아도 추궁 않았다. 그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그동안의 그런 행동들이 이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까지 못하게 방해라는 화살로 돌아온 것 같다.
-가족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방해인 것처럼 보이잖아. 우리는 귀찮고 그냥 제쳐 두는.
여자는 수긍했다. 여자는 남자와 아이들이 자신에게 해준 것을 생각한다. 그들은 여자의 도움만 필요로 하지. 작은 일도 도와주지 않았다. 오히려 이유 없이 짜증내고 화를 낸다. 관심 주지 않는다고 화내고 이해 못 한다고 소리 지른다. 더 많은 관심을 필요로 한다.
-당신은 부분을 보는 거야. 아이들 체육복과 도시락, 방과 후 수업, 수업료 내기, 친구 생일 선물과 파티, 물건 갖다 주기 빨래, 숙제 봐주기. 그런 일들이 아무 일이 아닌 것 같지만 그게 전체야. 당신은 페이를 받기나 하지. 나는 안 받잖아. 그렇다고 내 이런 공을 치하하기나 했어?
-우리 통장은 공동명의야 다 당신 꺼라고, 우리 둘에게 그게 보상이 돌아가는데 그걸 몰라서 그래?
여자는 돈이 중요하지 않다. 열심히 일하는데 그걸 몰라준데에 대한 원망과 출산과 육아로 잃어버린 시간, 외국인 여성이 독일에서 겪는 정체성의 문제 그리고 일을 하지 않는다는 그런 자격지심까지 남자가 알아주지 않아서 애석하다. 이제는 겨우 좋아하는 일을 찾은 여자에게 남자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나에게 관심 좀 가져 주세요.’ 여자는 남자의 마음을 들었다. 그런데 여자가 가족 구성원으로서 하는 희생을 치하하지 못할 망정 여자가 좀 이기적으로 행동했다고 지적하고 훼방한다. 그것도 여자가 가장 좋아하는 일, 열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일을. 여자는 남자가 되려 솔직하게 ‘당신 내게 관심 좀 가져줘’라고 말했다면 더 잘 통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매일 매주 우리에게 얼마의 시간이 있는 것 같아?
-없어. 당신 피곤해서 나는 건들지도 않는다고 편안하게 해 주잖아. 내가 나 좀 봐 달라고, 애걸했어? 물론 그 전에야 그랬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데.. 아니면 내가 그냥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할까? 내가 무엇을 해도 당신들은 불만이겠지.
-나는 엄마, 아내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으로서 존재하고 싶다고.
남자는 할 말이 없어져 눈물 흘리는 여자를 지켜본다.
여자는 눈물을 흘렀다. 며칠 동안 이어진 아이의 이유 없는 짜증과 반발, 불평 그리고 남편의 이기적인 발언까지 억울해서 눈물이 자꾸 나왔다.
여자는 사과하고, 여자를 지지하겠다는 남자의 말을 들으면서 지금까지 용서한 모든 죄들을 생각한다. 한껏 부풀어올라 터져 버려서 그 조각들을 서둘러서 모아 다시 엮어야 하지만… 여자는 고개를 들어 남편의 얼굴을 보지 않고, 그의 키스에 답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