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너울
흘러 간 물고기
바다 깊이 유영(遊泳)하다
여름 너울에 밀려 밀리어
온 겨울,
가슴에 빗살 무늬가 생기었다
뱉어낼 수 없어 탁 걸리어
가시처럼
까칠한 자국
설진(屑塵) 하나 일지 않는 회색 공기 사이
조용히 빗살이 스며들었다
그제 잘린 가느다란 밑동
버드나무
싹 피워낼 갈라진 틈
이제 찾는다
이틀 늦은 기차
느린 귀갓길,
파삭하게 마른 꽃을 꼭 쥔다
헤엄친다
지느러미 곧추 세워
먼 여름으로,
너울 깊숙이 거슬러
첫 인사말과 끝 인사가 어렵다. 그동안 잘 지냈냐고, 라고 물으면 그나마 잘 응대한 편이다. 그런 말조차 못하고 현실 감각으로 그들은 맞이하기엔 한템포 느리다. 정신을 차리고 그들을 마주하는 순간, 그들은 이미 내안을 휘집고 다닌다. 모든 걸 내어놓고 그들과 섞이면 헤어질 시간.
만나서 반가웠다고, 잘 지내라는 말이라도 꺼내면 그래도 만족스럽다. 대개, 전형적이고 앞뒤 다 생략한 짧은 말이 나와 민망해진다. 좀 더 멋진 말, 좀 더 그 사람에게 맞은 작별 인사를 하고 싶지만 그럴러면 그들은 이미 내 앞에서 손을 흔들고 차를 타고 사라진다. 아직도 무슨 인삿말을 했어야 할까 생각하는 도중.
다 떠나고 난 후 우리 만남을 되새긴다. 좋은 건만 그러하랴. 사건이 다 일어난 후, 불시간에 그때 그 감정이 엄습한다. 한참 지나간 걸 이제야 문득 깨닫는다. 그때가 좋았지. 그때 내가 잘못했다고 말할 걸. 어쩌면 누구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고. 그냥 그런 일이 일어났던 거다. 이미 지나버렸다고 추궁하면 일언반구도 꺼낼 수 없지만 나는 뒤늦게 그걸 상기한 느린 거북이. 이해해달라고 말하기에도 머쓱한. 너무 늦은.
태양 가득한 여름이었다. 모든 게 아름답게 보였다. 내 마음에도 꽃들이 만발하는. 여름은 불시간에 물너울이 일고 흘러 흘러 차디찬 겨울 바람을 몰고 왔다. 그리고 그게 내 마음에 빗살무늬처럼, 내리는 밧살처럼 마음을 무겁게 했다.
잘린 버드나무 밑동이 아스팔트를 뚫고 나온다. 생명력을 보라. 지연된 기차 때문에 귀갓길이 늦어졌지만 아늑한 그 공간으로 돌아갈 것은 분명하다. 마음이 아직도 파삭하게 말라 용기가 안 나지만, 그래도 꽃을 놓을 수 없다. 그 여름 바다 밑에서 유영하던 그 시간과 자유, 행복을잊지 않았으니. 마음에 생긴 주름일랑 잊고 다시, 그 여름 절정으로 헤엄이라도 쳐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