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니면서 관광지에서 상인들과 싸우려면 말이 틀려도 가능한 목소리를 높여야 했다. 중국 어느 시골에서 수레를 탔다. 한 구간을 타고 두 명이 5원을 지불했다. 가만 보니 다른 손님들은 한 사람 앞에 1원을 냈다. 두 배반을 더 받아먹은 셈이다. 돈을 돌려받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래도 따져야 마땅하다. '아저씨 저 사람은 1원 내던데, 우리는 왜 5원 내라고 한 거죠? 둘이면 2원이지요.' 아저씨가 모른척한다. ‘우리 외국인이라도 해도 더 받은 거죠? 어떻게 그렇게 속여요?’ 하다 보니 막말도 뱉었다. ‘도덕성이 없네.’ 아저씨는 미안하다, 돈 돌려주겠다는 말을 끝까지 하지 않았다. 중국 여행에서는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작은 돈이지만 뒤통수를 친다.
중국에서는 놀러 가면 도착한 날 돌아갈 기차표를 예매해야 한다. 자주 매진되고, 땅덩어리 큰 나라라서 보통 기차를 타도 오래 걸린다. 게다가 청도에서 우한까지는 빠른 기차라도 아홉 시간은 족히 걸리는데, 짐을 들고 서서 갈 재간이 없어서 좌석도 구해야 했다. 청도에 도착해서 가방을 치렁치렁 걸치고 기차표를 예매하려고 줄을 섰다. 여행가방을 내려놓았다가 들어서 앞으로 옮기고를 여러 번 반복, 30분이 지나고 내 차례가 되었다.
‘우한으로 가는 표 여섯 장 주세요.’ ‘없어!’ ’왜요?’ 대답은 못 들었다.
아니, 30분이나 줄을 섰는데 어쩜 그럴 수가 있을까. 뒷 사람이 내가 당황한 순간을 치고 들어왔다. ‘장사 가는 표 있어요?’ 비키지 않고 몸을 약간만 틀었다. 중국어가 물이 오를 때였다. 성조만큼은 자신 있어서 기차에서 만난 지방 사람들에게 지적할 정도였다. 관광지에서 상인들과 싸우면서 쌈닭으로 변했다. 역무원한테 그걸 드러냈나? 고개를 숙였다. 내가 바라는 것은 우리 모두 집에 무사히 도착하는 거다. 오래 머물면 비용 부담도 커진다. 비굴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거기서 물러날 수 없다. 비키면 다시 30분을 기다려야 한다. 잠시 생각했다. 그래 굽히자. ‘나, 사실 외국인이에요. 우리 이번주에 우한으로 꼭 가야 하니깐 그날 아니면 다음날에 그 시간대에 기차표가 있는지 검색해 줘요. 내가 이렇게 빌게요.’ 간절하게 말했다. 최대한 공손하게 물었다. ‘왜 없어요?’라고 물어봤을 때와 역무원 태도는 달랐다. 마침내 다음날 기차표를 살 수가 있었다.
중국어가 발음이 억세더라도 뉘앙스라는 게 있고, 공손한 말투와 기분 좋은 미소는 어디든 통용되는 게 아닐까. 중국어에는 恐怕 (아마-일 것이다.라는 뜻으로 나오는데, 부정적인 예측을 나타내며 애석하다는 의미까지 포함하는 의미로 이해한다.)가, 독일어에는 leider(유감스럽게도) 가, 영어에는 unfortunately(불행하게도)라는 말이 있다. 어감을 누그러뜨리고,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는 듯한 거절과 부정을 할 때 쓴다. 실제로 중국어로 아마-일 것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손가락으로 꼽지만, 이런 말을 넣으면 상냥한 말투가 된다. 독일어도 강하지만 이런 단어로 충분히 어감을 누그러뜨릴 수가 있다. 상대의 기분을 해치지 않고도 부정과 거절을 할 수 있다. 없어! 아니(不 ), 어감이 참으로 강하고 억센 말도 부드럽게 해 준다.
중국에서는 단번에 거절당하는 경우가 많다. 외국인 사무실에 가더라도, 경찰서에 가더라도. 그냥 안 된다는 말을 한다. 서류 하나가 모자라서 서류접수가 안 될 때는, 어김없이 ‘안돼(不行)’라는 말이 떨어졌다. 한참 기다리게 해 놓고, 그런 단호박(단호한 사람 또는 상황을 일컬음.)을 주면, 놀란다. 한국처럼 ‘어떻게요 .서류가 모자라네요. 한 걸음 더 하셔야겠어요.’ 이렇게 들으면 기분이 나쁘지 않고, 당혹스럽지도 않다. 중국어는 짧고, 어감을 부드럽게 해주는 꾸밈말이 다른 언어에 비해서 적다. 경상도 사람인 내가 들어도 단호하다. 이런 거절의 말을 들으면 이성적으로는 벌써 서류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에 대한 결론을 내지만, 금방 할 말을 못 찾겠다. 그럴 때 할 수 있는 반응은 왜였다. ‘왜(为什么 )?’ 왜 그런 거야?’다. 물론 안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설명을 들어도 결국엔 노다. 상황을 바꿀 수 없다. 그 이후로는 왜 대신, ‘어떻게 하면 되요?(전머빤怎么办)’으로 질문을 했다. 덕분에 방법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유용했다. 비록 현실에서 부드러운 중국어를 접하기는 어려웠지만, 역무원에게 빌 듯이 표를 구하고는, ‘이 나라에서 공자 님의 인(仁)이 나왔지.’라며 인류 공통의 가치를 떠올렸다.
바네사 집에서 놀다가 집에 갈 시간이었다.
‘우리 이제 집에 가야 해. 10분 안에 집에 갈 거야. 알았지 아들?’
바네사 아들 아드리안이 ‘가지 마. 더 있어.’했다.
두 살배기 올리는 '아쉽게도 우리 가야 해' 예의를 갖추고 말했다.
꼬맹이 내 아들도 해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꼭 있어야 하는, 사랑이라고도 하고, 예의라고도 하고, 작은 배려라고도 할 수 있는 인이다. 남이 다칠 것을 염려해서 말을 둘러서 하는 역지사지도 여기서 나왔다. 같은 말이라도 예쁘게 한다. 진실된 눈과 부드러운 말투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기본적인 태도다. 우리는 말로 타인을 아프게도 감쌀 수도 있다. 아직 잘 못하지만, 거절을 할 때도 부정을 할 때도 상대방 기분을 이해하려는 태도는 어느 민족도 위로할 수 있다고 믿는다. 仁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