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의 첫 장소 자취방

by 원더혜숙

17살 고1 때부터 소도시에서 자취를 시작했어요. 주말에 한 번씩 집에 갔지만, 일요일 아침에 돌아오기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죠. 독립한 후 제일 먼저 한 것은 고등학교 첫 등교날 아침 6시부터 일어나서 계란에 파와 당근을 다져서 넣고 부치고, 식빵을 살짝 구워 케첩을 뿌렸죠. 혼밥, 고등학교 등교 첫날, 첫 끼, 내가 만든 첫 샌드위치를 먹었어요. 즐거워서 노래까지 흥얼거렸어요.

옆 방에 살았던 아이를 며칠 후에 알게 되었는데 그러더군요.
'나는 엄마 보고 싶어서 질질 짜고 있었는데, 너는 아침부터 일어나서 파 써는 소리도 내고 고소하게 뭔가를 부쳐서 아침을 챙겨 먹더라.' 자취방 사이에는 합판 하나로 가려져 있기 때문에 방음이 전혀 안 되고 공기도 공유할 수 없거든요.
머쓱하게 대답했죠. '나는 내 방을 가진 게 행복해. 혼자되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이라고.'
아마 그 친구는 집에 자기 방이 있었을 거예요. 내게는 처음 생기는 공간이었거든요. 그 공간을 멋지게 꾸미지는 않았지만, 아무것도 없어도 그 적막감이 좋았어요. 내 공간이니깐요. 일요일에 음식을 싸가지고 자취방에 돌아오면 고요해요. 책상 하나, 밥솥 하나 이부자리 하나 필 공간이고, 현관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 수도꼭지가 있고 그 옆에 소형 냉장고가 있거든요. 그 위에 선반에는 참치, 김과 냄비가 올려져 있고, 냉장고에는 엄마가 싸준 밑반찬과 김치가 들어있었죠. 몸을 약간 왼쪽으로 틀면 시멘트 바닥에 파란색 버너가 놓여 있어서 거기가 하루 두 끼를 해 먹는 부엌이에요.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용으로 있었고요.
고등학교는 가로 세로 40센티 창문 위로 난 언덕길을 올라가면 바로 있는 곳이죠. 아침에 새소리와 함께 이른 등굣길을 오른 여고생의 발자국 소리가 깨웠어요.



내 독립의 첫 장소, 자취방에서 가장 먼저 한 것이 깨끗하게 쓸고 닦고, 매일 아침밥을 해 먹은 것이었죠. 친구들은 이 공간을 가끔씩 자기들의 아지트로 생각하기도 했어요. 문학을 좋아하는 무리의 친구가 놀러 와서 감수성을 나누기도 했고, 퇴학을 생각하는 고민 많은 여고생의 고해성사를 하는 교회가 되기도 했으며, 뉴톤 과학 잡지를 들고 와서 원자가 어떠니 미립자는 어쩌니 토론하는 곳이기도 했어요.

그래도 무엇보다 그곳은 어린 제가 '나는 무엇일까?'윤리에서 처음 배운 자아정체성을 찾는 질문을 하고, 기도를 하고, 누구의 방해도 없이 고요히 잠들 수 있는 안식처 같은 곳이었죠.

어느 날 새벽이었어요.
누군가 창문 철장을 돌멩이로 치는 소리가 들렸어요.
톡톡톡. 뭐지?? 은숙아.. 은숙아...
요 며칠 자취촌에 변태가 출현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 자식인가 하고 죽은 척하고 가만히 누워 있었어요.
내 이름은 은숙이가 아닌데...
드르륵 옆방 언니가 창문을 열더니, '웬일이야? 기다려봐 나갈게.'
다행이죠. 나쁜 놈은 아닌가 봐요. 그런데 새벽 두 시에 무슨 일이길래 은숙이를 불러내는 걸까?

수능을 무사히 마치고, 짐을 싸가지고 자취방을 나왔지만, 꿈에서 자주 그곳으로 돌아간답니다. 그 집에서 햇빛이 가장 많이 들어오고 넓은 방으로 다시 들어가요. 가만 보니 그 큰 방이 내 방보다 좋지 않다는 걸 느끼는 그런 꿈이에요.

나를 사랑하자!라고 크게 써 붙여 놓고, 기도를 올린 그곳. 아무리 사랑하려고 해도 그게 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고, 아무리 자신을 찾으려고 해도 알 수가 없었던 그 나이에 딱 한 가지 한 것이 있어요. 그 일은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요. 나를 사랑하지는 못했어도 나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게 만들어진 장소가 자취방이에요. 그런 곳 여러분들에게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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