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학원에서는 자물쇠 잠그는 것부터 원장님의 규칙을 따라야 했다. 원장님이 아이들을 부르는 방식, 학부모를 대하는 태도, 또 가르치는 방침 모든 것이 그렇다. 당구장에서는 내가 그 시간에 정확하게 가서 청소를 하고 손님을 기다리는 일로 돈을 받는다. 고깃집은 불판을 닦고 마늘을 까고, 멍하게 손님을 기다리는 것으로 돈을 번다. 사모의 기분을 살피는 것도 노동 방식이었다. 지금은 거의 손목을 못 쓸 정도로 만든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는 쥐꼬리만 한 시급에 매니저의 술 동무까지 되어야 했다. 편의점은 일이 지루하다. 가만히 앉아서 계산을 한다. 삼각김밥을 많이 먹는다. 부모님 농사는 사계절 쉼이 없다. 쪼그리고 앉아서 수박 모종을 밭에 옮기고, 고추를 딴다. 양파를 캐고 모를 심고, 풀을 베고 타작을 하여 어렵게 돈을 번다. 추운 겨울에도 아버지는 산에 가서 나무를 벴다. 한국어 과외 알바 고액이었지만 잘 못 가르쳐 주는 것은 아닐까 하고 늘 불안하다. 매번 학생들 앞에 서는 게 두렵다. 사무실 일은 데이터를 다루는 임무가 까다로웠지만 전체적으로 무난하다. 인천공항에서는 일과 동료가 좋았고, 면세점 구역에서 일하는 게 특별했고, 스타를 보러 가는 일도 신난다.
기자 면접을 가면서 자신 있었다. 취재를 가면 설렜다. 인터뷰를 하고 글을 쓰고 편집을 했다. 알아주는 신문은 아니었지만 하고 싶은 일이었다. 토요일 신문 발행 때문에 금요일 밤 12시까지 남아서 편집을 해도 피곤하지 않았으며 글을 쓴다는 자체가 좋았다. 공모전에 글쓰기로 용돈을 번 적이 있으니 운이 나쁜 편도 아니었다. 가끔 상을 받은 걸 보면 말이다. 결국 내가 생각을 표현하는 데 그렇게 서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돈 벌기는 힘들다. 대부분의 일은 돈에 자유와 영혼을 팔아서 멍했다. 시간 맞게 출퇴근, 손님이 없으면 무작정 기다려야 하고, 일을 배우기 시작하면 바보가 되어야 한다. 긴장을 하고 눈치를 봐야 했다. 그것은 단순노동이었다. <모던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처럼 기계 부품이다. 그래도 열정을 가지고 응했다면 다른 방향으로 갔겠지. 편의점 주인이 됐을 수도 있고, 고깃집 사장님이 됐을 거다. 한국어 가르치는 것에 열정이 있어 교사의 길을 갔을 수도 있다. 학교에 계속 남아있을 수도 있었다.
과거를 돌아본 후, 노동에 대한 좋지 못한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노동은 힘든 것만은 아니었다. 노동을 하더라도 좋아하는 것을 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 인천공항에서도 사람들이 좋았고 일이 좋았다. 기자를 할 때는 같은 노동이었지만 기뻤다. 일이 좋았고 글쓰기가 좋았다. 거기에 열정이 있었던 거다. 언어를 좋아해서 계속 그 길로 갔다면 다른 길에 서있겠지. 그러나 나는 여기, 글을 쓰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내 열정이 여기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할 거다. 재미있는 일을 할 거다. 벌써 시작했다. 완벽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 못해도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래서 한다.
직업 코칭에 가서 사무직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컴퓨터 활용 능력과 독일어에 자신이 없었다. 그러면 일을 배우기 전에 저자세를 취해야 한다. 시간을 맞춰 출퇴근을 하고, 먼 통근을 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시간에 쫓겨 출근하는 압박감도 싫다. 재현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일을 하겠다고 간 것이다. 코치는 꿰뚫어 봤다. ‘너 일할 마음 없지?’ ‘너 블로그로 글 써.’
소속되어 있으면 벗어나고 싶었고, 벗어나 있으면 비 소속인 게 불안하다. 소속감은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구였다. 굳이 회사에 들어가지 않아도 소통은 가능하고 인정은 받을 수 있다. 내 실수로 혹은 재능으로 회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매일 하는 일들이 회사보다 내 미래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 결정적으로 남의 인정을 받든 안 받든, 내게는 사명감이 있다. 아웃사이더가 오히려 편하고, 아웃사이더로서 발전도 가능하다.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프로젝트를 고르고 책과 인터넷에서 정보를 접하고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아이들이 아프면 눈치 안 봐도 된다. 긴장감은 없지만, 성취감은 있다. 시간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 내 페이스로 뭔가를 배울 수 있다. 취미생활을 정도껏 할 수 있다. 마음이 기운다.
취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상 취직 포기다. ‘하기 싫은 일을 참으면서 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일로 돈을 벌고 싶다.’ 소속되지 않고, 대신 돈을 벌 거다. 글쓰기를 꾸준히 하고, 남편의 아이디어가 현실화되도록 내조하며, 동화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 아이디어로 돈을 번다. 공모전에 작품을 응모한다. 공모전이 많다. 서평단도 있다. 해 보자. 소설도 쓰고, 시도 읽는다. 내 자유로 활동하면서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다. 가슴 뛰는 일이 아니라면 안 할 거다. 이번엔 심사숙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