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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배우는 중

by 원더혜숙

삼 일 전,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시어머니가 두 달 전부터 척추암으로 병상에 누워서 고개만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남편과 나의 충격은 컸다. 충격은 두 달 사이 서서히 일상이 되었다. 일주일 전, 시어머니가 폐렴으로 병원에 입웠하셨다. 무거운 기분이 들었다. 그전에도 혈액 순환 때문에 약을 복용했고, 통증과 피로감을 호소했다. 남편은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는 게 아닌가. 가끔 의심이 된다고 했다.


작년에 이탈리아에 시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갔다. 그때, 여름 날씨가 덥긴 했지만, 시어머니는 5미터 앞의 수영장에도 못 가겠다고. 차를 오래 타면 걷는 게 너무 힘들다고 울먹이던 게 기억난다. 그때는 그녀가 2년 전의 유방암을 극복하고 난 후에 체력이 위축했다는 걸 의미했다. 그때부터 그런 기미가 보이긴 했지만 나의 예감은 그저 느낌에 불과하다. 그저 몇 년에 한 번씩 지켜보는 내가 뭘 알겠는가.


남편은 삼 일 전 시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예약해 둔 항공권을 바꿨다. 그렇게 하루를 기다리던 사이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남편은 눈물을 흘렸다.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내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눈물이 날까.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가끔 이렇게 무감각해진다. 냉정한 사람, 무정한 사람이 된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우리도 브라질에 가야 하느냐고 묻자, 시아버지가 아니라고 했다. 브라질에 가족이라고는 남편 형 내외, 그리고 누나, 아버지뿐이었다. 소박한 장례식을 치를 거라고 기회가 되면 독일에 한번 더 오시겠다고 했다.


시아버지와 화상전화로 괜찮냐고 물을까. 아니면 어떻게 돌아가셨냐고 물을까. 아니면 정말 슬프다고 해야 할까. 내 머릿속이 뒤죽박죽 했다. 그런데, 그런 복잡한 심정에서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조가비처럼 입을 다물었다.


남편의 엄마, 하이디.

쿨해서 화를 내도 금방 웃는 뒤끝 없는 여자.

뭘 먹어도 맛있게 먹고 가리는 게 없는 관용적인 사람.

그녀의 말에 따르면 문학적 소양이 대단했다고 함.

그러나 그 커리어를 끝까지 이어가지는 않았던.

가족한테 만큼은 사랑받았던 사람.

자기감정에 솔직해서 내게는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했던 사람.


그런 남편의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나는 그렇게 한마디도 할 수 없었고. 그냥 남편을 안아줬다.

그날 저녁 애꿎게도 <반지의 제왕>을 보면서 아라곤이 한 동료가 죽자 애꿎은 눈물이 나왔다.

난 왜 이렇게, 영화르 보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시어머니의 죽음에는 슬퍼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마음은 무척 무거웠다.


아직도 그녀가 내게 대했던 일들 때문에 원망하는 것인가. 내 도리를 다 하지 않은 걸 후회하는지. 나는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 했고, 더 이상 척하지 않는 게 맞아서 그렇게 했고, 그들이 여기 있을 때만큼은 편하게 해주려고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렇게 눈물을 흘리지 않는 내가 속정이 없는 사람 같아서, 냉혈한 같아서 싫다.


그런 복잡한 마음에서 남편에게 양초를 사 오라고 했다. 마음속으로는 아이들과 그 초를 밝히면서 시어머니를 위해 기도하고 싶었다. 쿨하게 끝까지 자기 자신으로 잘 살다가, 가족들 품에서 잘 가신 시어머니, 그녀를 위해 눈을 감고 기리고 싶었는데 웬걸 남편이 이미 초에 불을 붙였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복잡한 생각이 결국엔 말로 되지 못하고, 묻혔다. “어머니가 이제 편안히 쉬실 수 있길 바라.”그 말 밖에 못했는데, 우연히도 양초 색이 어머니가 늘 좋아하던 그런 짙은 보랏빛이었다. 그녀를 너무 닮았다.


그리고 남편은 마지막으로 엄마를 보러 브라질에 갔다. 남편이 가자마자 나는 마음이 풀렸다. 그가 내 옆에 있으면, 시어머니의 죽음도 같이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묵직했다. 오늘은 남편과 화상 통화를 하는데, 시아버지와 시누가 옆에 있었다. 통화를 하면 내 마음이 불편했다. 마음 같아서는 마지막으로 무슨 말을 남기셨니? 시아버지와 시누는 어때? 다들 어떻게 받아들이니, 괜찮은 거지. 등등을 물어보고 싶은데, 그렇게 물어보면 뭔가 불똥이 튈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든다.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이들 이야기만 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이렇게 가족의 죽음에 있어서 서툰 이유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를 두둔해 본다. 할머니는 내가 중학교 때 돌아가셨고, 나는 할머니를 안 좋아했다. 오랫동안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셨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고 나서 그 소식을 들었다. 그 후 나는 할머니 방에도 안방에서도 쫓겨나 아랫채에서 잤다. 할머니의 상여가 나가는 걸 보고 그 이후의 모든 절차를 다 보았지만, 나는 어린 막내로서 그 장례의 참여자이기보다는 관찰자였다. 내 역할이 하나도 없는 그 장면에서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외국에 오래 살아서 조문하러 갈 기회가 없었다. 어쩌면 내 전생애가 그걸 피해 온 것 같다. 이번에 시어머니의 죽음도 관찰자의 입장이다. 그런데, 그렇게 가만히 멀찍이 있는 내가 너무 싫다. 나도 뭔가를 말해서 위로하고 싶지만, 거기서 움직일 수가 없다. 죽음이 나를 따라오기라도 할 것처럼 꿈쩍 못 한다. 아마도 나는 아직도 중학생이던 나에서 성장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이 감정을 털어놓고 싶다. 누구라도 만나서 내가 이런 감정에 허덕인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사람을 만나기도 꺼려지고... 마음만 무겁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슬프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슬프다. 마음속 깊이 슬픈데, 그 위층의 마음이 나를 자꾸 막아선다. 거기 있으라고, 아니면 다친다고.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한발 나아가지 못해 너무 답답하다. 남편에게 조금 더 도움이 되고 싶은데… 그리고 이 무거운 마음을 덜어내고 싶은데. 이런 감정적 무게 때문에 나는 우울하다.

보랏빛 양초가 타들어가는 걸 보면서 나는 시어머니를 생각한다. 그녀의 삶, 이야기하던 모습도, 통쾌하게 웃던 모습도. 이제 그녀가 이 세상에 없다는 걸 생각한다. 한 사람이 사라진다는 건, 어쩌면 별일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겨진 사람에게는, 아무렇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아무렇지 않다는 걸 표현하는 게 서툴다. 슬픔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도 되는 걸까.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늘 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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