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기엔 약간 늦은 시간이다. ‘나 산책 다녀올게.’ 하고 1초 만에 의자를 박차고, 등산화를 신었다. 늘 돌아가는 골목길 왼쪽 집은 공사 중이다. 차고로 들어가는 마당 보도블록을 1미터 깊이로 해자(垓子)를 만들었다. 집으로 들어가는 파이프가 드러났다. 6년 전부터 줄곧 빈집이었다. 옆에 빵 공장이 있어서 새벽 4시부터 배달 차며 직원의 말소리나 기계 돌아가는 소리로 시끄러울 텐데, 집주인이 집을 단장해서 살 모양인가 보다.
울타리 토대에 세워 둔 담배꽁초를 담는 깡통에는 빗물이 고였다가 줄었다 했다. 어두컴컴하고 좁지만, 한적한 빵 공장 뒷길이 좋다. 독일은 정원마다 코너에 퇴비상자가 있다. 음식물 찌꺼기나 잔디를 버리면 거름을 만들어내는 상자에는 잔디가 수북했다. 이틀 전쯤 깎았겠지. 정원에 노랗게 민들레 꽃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시기에는 너도나도 잔디 깎는 기계를 돌린다. 아흔 넘은 옆집 할머니 정원의 잔디를 손질해 주고, 아이들은 10유로씩을 받았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주는 것을 알면서도 받기 송구스럽다.
저녁을 먹고 트램펄린에서 노는 아이들, 이 집 프렌치 불도그는 호기심이 많다. 귀를 쫑긋 세우고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본다. 귀엽고도 우울하게 생긴 이 녀석을 만져주고 싶지만, 이 집 아이들처럼 낯설다. 정원에 검은 튤립도 피었다. 첫 봄이 지나고 두 번째 봄이 온 듯 집집마다 흰 핑크 사과꽃, 마냥 흰 체리 꽃이 들어섰다.
양로원 앞 나무는 꽃을 떨어뜨리고, 자주색 잎을 드러냈다. 싱그러운 신록은 새 잎, 청록은 푸른 잎, 적록은 물든, 낙엽은 진 잎이다.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을 수 있느냐. 줏대 없다고 하지만, 하나만 고르라는 잔인한 선택을 하지 않아도 자연은 내가 맞이하러 갈 때마다 선물을 준다. 살아있어서,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음이 자연이 내리는 축복이다.
오늘은 누구도 이기고 싶지 않다. 천천히 걸어보자. 오르막길에 봄이 올랐다. 그저께, 땅끝에서부터 전해진 봄의 기운이 발목까지 나왔었다. 오늘은 1미터 높이까지 닿았다. 풀과 들꽃, 키 작은 나무에 잎이 새로 나오고, 햇빛을 잘 받는 나무는 이미 온몸이 푸르다. 신록은 불투명한 민트색이다. 잎망울을 자세히 보니, 알 속에 웅크리고 있는 병아리 같다. 햇빛에 젖어 털빛도 제대로 못 낸 이파리는 내일을 기다리고 있는 거지. 갓 태어난 강아지의 발처럼 오므리고 있다가 내일이면 스트레칭을 하겠지. 땅에 찼던 봄의 기운이 천천히 생명들을 타고 올라 나무 꼭대기에 닿으면 신록의 계절이 시작된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여린 잎이 좋다. 은빛 나뭇가지에 점점이 완두콩 연둣빛 이파리가 촘촘히 채웠다. 바람이 몸으로 살랑거린다. 카디건을 살짝 걸칠 때 꼭 만나는 바람이다. ‘나 여기 있어.’ 안녕. 두 팔을 벌려 안았다. '안녕' 한 번 더 안겼다.
지금이 꽃머리다. 겨울이 지나자마자, 뿌리잎을 보여준 들꽃들이 부썩 자란 야생초에게 햇빛을 빼앗겼다. 이틀 만에 이렇게 쑥쑥 자랄 수 있다니. 비약적인 성장 전에 긴 기다림이 있었겠지.
왼쪽으로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길가에 풀을 밟았다. 바스락. 바짝 마른 볏단 밟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따라서 오르막길을 오른다. 새로 보이는 풀과 꽃이 많다. 이름은 모르지만, 반가워. 다음에 오면 또 다른 얼굴을 선보이겠지. 몸통이 잘려 나간 나무 밑동 옆으로 나뭇가지가 세 가닥이 살아나고 있다. 너네도 잎을 펴겠다고 노력하는구나.
관목이 절벽에 매달리는 모습을 유심히 보고 있을 때였다. 멀리서 강아지 한 마리가 쌓아 놓은 나무탑을 오르락 내리며 킁킁거리고, 소녀 두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른쪽 산속에, 사람이 있다. 검은 머리 중년 여자와 딸로 보이는 여자애가 쭈그리고 앉아서 뭔가를 찾고 있었다. 눈이 침침해서 그저 주시하다가 눈이 마주치기 전에 고개를 돌렸다. 산책하다가 만난 중국 친구가 이 근처에 산마늘이 있다고 했다. 어디 집 뒤라고 했는데, 설마 여기?
‘할로’, 고개를 돌리면서 소녀들과 눈이 마주쳤다. 검고 붉은 갈색을 가진 핀셔다. 몸짓을 보고 털을 보니 어리다. 산책으로 강아지와 어린 소녀들의 우정이 깊어질 거다.
왼쪽으로 들어선 숲에 흰색 플라스틱 끈으로 이마를 쥐어 싼 나무들이 있다. 왜 그런 거지? 묶어 놓은 끈이 바람에 흔들렸다. 간밤에 강풍이 분 것도 아닌데, 군데군데 나무가 뿌리가 뽑힌 채 쓰러져 있다. 허약한 밑줄기를 가진 나무들이 듬성듬성 한데, 그 사이에 트랙터 바큇자국이 보였다. 몇 미터 간격으로 트랙터 길을 만들고, 될 성싶은 나무들만 남겨두고 나무를 솎는다. 이마에 끈 맨 놈들만 살아남는 거다.
아버지는 농사꾼이자 나무꾼이었다. 농한기에 접어들면, 새벽부터 보온 통에 따뜻한 쌀밥과 국물을 싸가지고 눈 오는 산을 누비면서 나무를 벴다. 아버지는 회색 연기를 내뿜으며, 딸. 딸. 딸. 소리를 내는, 산길을 무적처럼 오르는 개조 트럭을 가지고 있었다.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벌금을 내기까지 아버지는 그 요란한 트럭을 여러 번 업그레이드하면서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 사장 아저씨가 우리 집에 와서 소주잔을 비우면서 초록색 돈다발가 든 검은 비닐봉지를 툭하고 내려놓을 때면 내 마음도 들떴다. 왠지 밥을 많이 먹어도 될 것 같았다. 학교를 다녀오면, 아버지가 딸딸이 바퀴 밑에서 흰 런닝구에 까만 기름얼룩을 묻히고 나오면서 ‘어 왔나’하고 웃었다.
멀리서 검은 머리의 젊은 여자가 힘든 듯 달리기를 멈추고 숨을 고르며 걸어왔다. 레깅스를 입고, 가벼운 흰색 조끼를 걸친 게 영락없는 러너다. 눈이 마주쳤다. 내가 아시아 사람인 게 반가운 듯, 그 애가 할로 했다. 나도 그러면 ‘할로’. 얼굴에 통통하게 살이 올라 눈이 작게 보였고, 까무스러운 얼굴은 앳되었다. 한 번 멈추면 뛰고 싶지 않아. ‘힘내!’라고 말을 건네면 놀랄까.
귀롱나무의 꽃을 땄다. 그제 숲을 가득 채운 향은 바람이 실어 가고, 햇빛만 남았다. 나무는 사람 키를 훌쩍 넘어 앞서 꽃과 잎이 흐드러져 그늘을 만들었다. 이제 쐐기풀도 조금씩 본색을 드러낼 터다. 멀리서 동양 여자 세 명이 길을 반쯤 차지하고 뛰어온다. 숲에서 채집을 한 모녀와 러닝을 하던 여자애가 함께다. 빈손인데? 명이나물은 어쩌고?
오르막길을 멀찍이 바라봤다. 빛의 향연이라는 모네의 그림보다 더 멋진 아름다운 연두와 초록빛의 축제가 시작됐다. 지금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하지.
이 언저리를 지날 때면, 검은지빠귀가 낙엽을 발로 걷으며 벌레를 찾는 거다. 여기가 노다지인 게야. 오르막길에 들어서자 바람길이 보인다. 들판에서 바람을 막아줄 것은 너네 밖에 없구나. 왼쪽 들판에 야생 사과나무가 꽃을 다 피우고, 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바람이 옆으로 스친다. 오른쪽으로 6미터가 넘는 전나무가 휘청거리며 들판에서 불어내는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씩씩거렸다. 짙은 핑크 꽃처럼 생긴 전나무 새끼 열매가 귀엽다.
지는 태양이 숲을 뚫고 내게 왔다. 키 큰 나무에서 작은 손톱만 한 연두 노란 꽃이 아무도 모르게 떨어져 있었다. 야생 벚꽃은 높은 키를 자랑하며 흰 꽃을 숲 여기저기로 뿌렸다. 아무도 없는 갈림길에 서서, 까마귀 소리를 들었다. 짐승들에게도 머물 곳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