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지향적 인간에서 나, 지금 여기로

by 원더혜숙


대충여사

엄마는 대충 여사다. 엄마는 ‘정식으로는 세 번 헹궈야 하지만 난 이렇게 해.’라고 딱딱한 밥풀이 그대로 남아 있는 설거지 신공을 보여줬다. 설거지를 정식으로 한 날이 거의 없다. 지금은 눈이 잘 안 보여서라고 하는데, 핑계인 것 같다. 좀 예쁘게 차려서 여유 있게 먹으면 좋지만 엄마는 뭐든지 급하게 대충 식사한다. 뭐가 없으면 없는 대로 얼렁뚱땅해서 밥을 준다. 음식 솜씨도 들쑥날쑥하다. 물을 벌컥 마시는 엄마는 ‘꺽....’트림을 하고, 입과 턱에 묻은 물을 손으로 훔쳤다. 루즈도 입술이 어딘지 안 보고 바르는지 선이 가지런하지 않다. 나는 설겅설겅 하는 대충 여사, 엄마를 닮았다. 선크림을 제대로 펴 바르지 않아서 친구들의 웃음을 산 적이 있다. 개의치 않는다.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니깐. 우리에겐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 엄마에게는 농사 일과 종교적 모임이 그랬다. 내게는 글쓰기다. 그렇다고 그걸 진득이 하는 것 같지도 않다. 중요한 일도 끝내기에 집착해 그럭저럭했다.


서두르는 습관

천천히 해도 될 걸 서두르는 것들이 있다. 셔츠를 널 때 옷걸이를 밑으로 넣기 귀찮아서 목을 늘린다. 안 늘어나면 다시 밑으로 넣는다. 결국엔 시간이 더 걸린다. 흰 것과 검은 것을 구분하기 귀찮아서 세탁기에 간혹 같이 돌리고 깨끗하지 않은 빨래를 보고 후회한다. 다시 빨면 노고가 두 배로 든다. 걸레를 빨 때도 도합 10번 비비고 끝낸다. 빨리 끝내고 싶어서다.

계단을 하나씩 오르기 마음이 급해서 두세 개씩 성큼 뛰어오른다. 소설도 결말이 궁금해서, 아래로 향하는 시선을 컨트롤하기 위해 꼭 손으로 가려야 한다. 끝을 일찍 보고 싶다. 할 일을 정해두고 그것을 마치자마자 엑스나 줄을 긋는다. 짜릿한 성취감이 좋다.


현실과 목표의 괴리

얼른 해치우려는 내 마음에서 조급증이 나온다. 끝이라는 것은 없는데, 있다면 짧은 순간인데, 그게 뭐라고 집착을 하고 완성된 순간을 위해서 달린다. 목표 지향적이다. 이런 습관은 현재에 자신은 버려두고, 저기 어딘가에 나를 갈망하고 좋아하는 것 같다. 이 둘의 격차가 크면 실망한다. 자신은 거기에 있어야 할 사람인데 여기에 있으니깐. 행복도 그에 따라 미룬다. 성취감에 중독되어서 목표 이외는 다른 것은 눈에 안 들어온다. 마음이 바쁘다. 점점 압박감이 목을 죄어 온다. 목표를 달성해도 다른 목표를 설정하고 싶다. 결국엔 번 아웃한다. 한순간, 끝을 위해 살 것인가. 지금 여기서 순간에 집중하면서 살 것인가.


버릇을 바꾸기 쉽지 않다

아티스트 웨이에서 줄리아 카메론은 아티스트가 되는 길을 베이비 스텝, 아기가 걷는 것처럼 작은 걸음(Small step)부터 시작하기를 권한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는 원자처럼(Atomic) 작은 습관의 힘으로 원하는 것을 성취하라고 제안한다. 목표보다 작은 실천이 큰 성과를 이루고, 목표를 이뤄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천하기 어렵다. 38년 동안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이 익숙해서다. 습관은 잠시만 한눈팔면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부엌으로 가서 앞에 있는 접시 하나에 찌꺼기를 닦고 식기세척기에 넣는다. 갤 빨래가 산더미이면 양말 하나 에 집중한다. 어느 순간 정리가 끝난다. 신기하다. 계단을 여러 개 내딛는 자신을 볼 때 한 개씩 걸어보자고 한다. 책도 중요한 부분은 한 번 더 읽고 사색한다. 얻는 것이 있다. 하프 마라톤은 길다. 1킬로에 집중한다. 한 걸음에 집중하면 하프 마라톤도 어렵지 않다. 원래 습관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자신을 잡아서, 현재로 끌어내리는 것은 명상과 비슷하다.

수행과 닮았다. 잘되지 않은 것을 이겨낸다. 조급한 마음을 잡고 한 가지에 집중한다. 지금 내가 속한 이곳에 내 몸과 마음이 함께 한다. 성취는 여기 있고, 여기서 모든 게 일어난다.

‘오븐 안에서 머핀이 부풀어 오르고 있다. 속이 잘 익었을지는 모르겠다. 과정을 하나씩 따랐으니 맛있는 머핀이 구워질 거다. 블루베리도 초콜릿도 넣었다. 그 위에 아몬드로 장식을 했다. 표면이 안 타게 온도를 낮췄다.’ 신중히 하나씩 차례대로 레시피대로 했으니 맛있게 구워졌다. 이렇듯 지금, 내가, 여기 있는 곳에 집중한다.

기다린다. 인내한다. 때로는 딴짓(케이크 굽기, 화장실 청소하기, 산책)을 하면서 신경을 다른 데로 돌린다.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안 되고, 모가 빨리 자라라고 뽑는 것은 죽이는 꼴이다(발묘조장拔錨助長). 결국엔 서두르는 마음을 늦추고 다잡아야 한다.


높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에 충실한다

<타이탄의 도구들>에 보면 “하루에 한 번 제대로 된 호흡을 하겠다고 약속할 경우, 이는 쉽게 지킬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수련을 위한 추진력이 보존된다. 나중에 그보다 더 많은 걸 할 수 있는 준비가 됐다고 느껴지면 더 차원 높은 수련을 시작할 수 있다."라고, 명상 입문법을 알려준다.

<아주 작은 사소한 습관>에서는 ‘2분 법칙’을 소개한다. “Start by mastering the first two minutes of the smallest version of the behavior. Then, advance to an intermediate step and repeat the process.” (처음 작은 2분의 행동을 마스터함으로써 시작한다. 그런 다음에 중급 단계로 진전하고, 그 과정을 반복한다.) 조깅을 하기 위해서 신발 끈을 매는 것, 책을 한 줄 읽는 것, 하루에 한 문장을 쓰는 것이 그것이다. 글을 천 자 쓰기 위해서는 한 문장부터 시작한다. 깃발을 저 멀리 꽂아 놓고 그곳을 향해 달리려면 많은 노력과 강한 의지가 필요하지만, 조깅 옷으로 갈아입고 신발 끈 매기는 간단하다. 2분 습관이 진전된 습관으로 인도해 주니 해 볼 만하지 않은가.


높은 목표를 세운다. 예를 들면 하루에 10페이지를 쓰고, 책 한 권을 읽겠다고 계획하면, 집중도 안 되고, 업무량이 많아서 목표치를 채우려고 대충 읽을 수밖에 없다.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하루에 한 페이지를 읽겠다고 하면 마음이 가볍다. 한 페이지를 쉽게 읽는다. 짧은 임무가 마음에 부담을 줄이고 긴장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목표점에 다 와 간다.


200개 포스팅하기가 목표라면, 목표는 잊자. 하나하나를 쓴다. 수북이 쌓인 설거지를 보면 가슴이 턱 막히고, 쌓여 있는 빨래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답답하다. 한 줄 쓰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포스팅은 한 줄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한 줄 글을 읽고, 한 줄의 글을 쓰겠다. 초심으로 돌아간다


결과야 어떻든 상관없다

과정에 충실하면 목표 달성이 그렇게 기쁜 것도 아니고, 어쩔 때는 결과가 상관없다.


“장학금이 누구의 것이 되던 조금도 상관이 없을 것 같은 기분이야. 나는 최선을 다했거든. 노력의 기쁨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 열심히 해서 이기는 것 다음으로 좋은 것은 열심히 하고 지는 거야.” <빨간 머리 앤>


그런 의미에서 세상에 중요하지 않는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다 중요하다. 물을 천천히 마시는 것도, 화장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글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누군가에게 답을 보내는 것도, 아이들의 눈을 보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그렇다. 오직 몸과 마음이 여기 있을 때 가능하다. 지금에 충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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